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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25 초단편 3 - <타임머신 소년>


전생을 기억하는 소년이 있었다. 충남 논산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 박장오는 자신의 열다섯 번째 생일인 2018년 11월 1일 아침에 갑자기 지나온 모든 전생이 다 기억나는 바람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자신은 전생에 이집트의 왕자였다고 주장하는 소년의 황당한 이야기에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 모두가 이 아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걱정했지만 우연히 그 얘기를 전해듣고 흥미를 느낀 신문기자가 한 명 있었기에 갑작스럽게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기자 : 이름은? 
소년 : 박장오입니다. 

기자 : 생년월일은? 
소년 : 2003년 11월 1일입니다. 

기자 : 그럼 열여섯 살이네. 고향은 어디에요? 
소년 :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3XX. 개인주택입니다. 

기자 : 부모님은? 
소년 : 아버지가 고향에서 펜션 사업을 하십니다. 어머니도 함께. 외아들입니다.  

기자 : 지금 학교는 안 다니고 있나요? 
소년 : 전생이 기억난 뒤로 그만두었습니다. 

기자 : 자신이 이집트의 왕자였다고 주장하는데...
소년 :  투탕카멘이 제 동생이었습니다. 

기자 : 파라오의 저주로 유명한 그 투탕카멘 왕자? 
소년 : 네. 그 무덤은 사실 제가 임시 보물창고로 쓰던 곳이었구요. 

기자 : 잠깐, 잠깐. 다른 전생도 기억나는 게 있다면서요? 
소년 : 네. 하지만 다 얘기하면 아마 소설책 열 권도 넘을 거예요.  

허풍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 아이는 이런 얘기를 꾸며내게 됐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예상과 달리 3일에 걸쳐 열세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소년은 아무도 모르게 투탕카멘의 무덤에 자신의 보물들을 숨겨놓았는데 갑자기 왕비에게 독살을 당하는 바람에 그 왕관과 다이아몬드 등이 수천 년을 버티다 20세기 초에나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드 같았다. 역사, 철학, 문학까지 모르는 게 없는 청산유수. 명실상부한 스토리텔링의 대가였다. 다소 장난스런 마음으로 소년을 만났던 충남일보의 이명현 기자는 며칠 후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도 믿기 힘들지만, 소년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인 것 같다' 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소년은 이집트의 왕자이기도 했고 공자의 제자이기도 했으며 에도시대엔 무사들의 사회를 경험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이 기자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집에 가서 녹취록을 풀면서 걔가 말한 걸 인터넷으로 다 찾아봤어.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정확해. 어떤 건 인터넷보다 낫고." 

같이 술을 마시던 동료 기자 남선우는 소년이 [맨 프롬 어스(Man from Earth)]라는 영화를 보고 꾸며낸 얘기일 거라며 그만 정신 차리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를 했지만 이명현은 다음날 기어이 그 소년과의 인터뷰를 자신의 블로그와 SNS에 올렸다. 소년과 인터뷰를 하겠다는 아이템을 낼 때부터 반대했던 편집장 이철호가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고는 기겁을 하는 바람에 신문 기사로는 인터넷판으로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이었다.  

반응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타임머신학회'라는 곳에서 이 박장오의 인터뷰 기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협회는 '비밀리에 진행되던 타임머신 프로젝트가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있으며, 앞으로 4년 이내에 우리나라에서 타임머신이 발명될 것인데 마침 이런 이슈가 생겨 반갑다고 하면서 베타 버전이 출시되는 대로 협회 대원들과 지원자들이 팀을 구성해 소년이 거론한 연도로 거슬러 올라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며칠 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명현 기자의 인터뷰 기사 링크와 함께 '과거를 예약하세요. 전생을 기억하는 소년과 함께 떠나는 과거로의 답사여행, 런칭기념 할인!'라는 희한한 광고가 링크되었고 이는 호기심 많은 유저들에 의해 이틀만에 이천오백 번이 넘게 공유되기에 이르렀다. '음모임'(음모이론을 분쇄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명의로 당장 이 광고를 내리게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한 것은 물론 JTBC뉴스룸까지 한 꼭지를 할애해 '타임머신의 발명과는 상관없이 소년이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어쩌면 우리는 과거여행 패키지 상품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다소 시니컬한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명현은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다 어찌된 일인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리고 뭐 이런 자들이 다 있나. 남의 전생을 이용해서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타임머신 예약광고라니. 자신의 인터뷰가 진지한 토론을 만들어내는 대신 이렇게 상업주의와 연결되었다는 자괴감에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어야 했다. 

곧장 반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백 번 양보해 전생이라는 게 존재한다 해도, 어떻게 그렇게 너는 유명한 사람들만 거치는 전생일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년이 반박을 하고 나섰다. 가야국에 살 때는 노비였고 임진왜란 때는 평범한 병사로 싸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줄 근거로 이순신 장군의 얼굴 생김새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명량해전 때 자신이 바로 옆에서 싸웠기 때문에  그 얼굴을 상세하게 기억하는데  지금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상범 화백의 초상화는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초상화는 화가가 충무공이  활동한 지역을 답사하거나 초상화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신문 연재를 하던 소설가 이광수에게 충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상상으로 그린 것이었기에 소년의 얘기가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었다. 그러나 충남 아산 현충사에 소장돼 있는 장우성 화백의 정부 표준영정까지 실물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자 문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국가가 정식으로 인정한 초상화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자 이순신에 대한 소설을 썼던 어떤 소설가(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 요구했다)가 중립적인 입장을 약속하고 조용히 소년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홀로 논산에 가서 소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과 마주치자 '당장 밝히기 힘든 내밀한 얘기들을 많이 나눴다. 아마 어떤 내용은 이후 내 작품에 모티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소년은 같은 나이였을 때의 이창호 9단보다도 더 머리가 좋은 느낌이었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 

곧 소년의 아이큐가 검색어 1위로 등극했다. 중학교 때 학적부에 기재된 소년의 지능지수는 131로 평균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다. 그 정도 지능지수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꾸며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 정신과의들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신심리학협회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경우엔 당연히 그렇지만 이번 케이스처럼 한꺼번에 떠오른 전생들로 인해 얻은 엄청난 지식들이 소년의 아이큐를 단번에 높였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아이큐 이야기는 어느덧 소년이 한 전생 이야기들이 사실이냐 아니냐라는 원래의 이슈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소년의 아버지 박준철 씨가 실종신고를 낸 것은 이 모든 소동이 시들해진지 삼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소년이 편지를 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소년의 편지 내용은 담백했다. 자신은 이 곳에 잠시 머물뿐이며 미래를 향한 여행을 계속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자식이기 이전에 시간을 
거슬러 오가는 존재로 살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전생을 
기억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이번 시대에 
큰 소란을 피우고 가서 죄송합니다 미래의 
어느 시대이든 다시 만나 인사 드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 당신의 아들 박장오 올림





그 후로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한껏 달아오른 남북통일 이슈 등에 묻혀 다시 거론되지 않았고 그 소년을 본 사람도 없었다. 다만 타임머신협회에서 '소년이 미래에 가서 무슨 허풍을 쳐 혼란을 야기할지 모르니 그를 막기 위해서라도 협회는 타임머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이제 정말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간헐적으로 SNS에 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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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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