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책장을 정리하자고 한다. 올 8월이면 이 집으로 이사온 지 4년이 된다. 7층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한 눈에 보이고 거실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기 좋은 테이블도 있고 책꽂이도 양쪽으로 큰 게 있어서 더 살고 싶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 아내가 눈대중으로 세어보니 대략 1,500권 정도란다. 책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책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일까.


일단 무슨 책을 남기고 무슨 책을 없앨 것인가부터 정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 출근길에 아내와 한강변을 함께 걸으며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며칠 전 친구 표문송과 술을 마시다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십수 년 전에 홍명희의 <임꺽정> 열 권을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었다'고 했더니 그 책만큼은 절대 버리지 말고 나중에라도 꼭 읽으라고 한 게 기억난다. 그 책을 기준으로 남겨야 할 책과 없애야 할 책들을 생각해 보자.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중엔 아무래도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아리랑>은 읽으면 가슴이 너무 아리고 답답해져서(특히 정신대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부분) 다시 읽기 힘들 것 같고 <한강>은 두 책에 비하면 개인적으로 크게 당기지가 않았다. 그러니 <아리랑>과 <한강>을 다른 데로 보내고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도록 하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책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늘 잘 팔리는 작가의 책들은 초기 희귀본이 아니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모두 내보내자. <용은 잠들다>나 <방과 후> 같은 건 기념으로 한 권씩 남겨 놓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도 몽땅 내보내기로 하자. 이미 후배 윤보라가 내가 개포동 옥상 있는 집에 살 때 놀러와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고 <개미> 전집 다섯 권을 빌려가다가 그날 밤 택시 안에서 분실한 터라 이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창간호부터 절판될 때까지 읽었던 SF잡지 [판타스틱]은 놔두자. 거기서 배명훈의 소설들도 만났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저자 정세랑의 단편도 처음 접했으니까. 1983년도쯤 문학잡지 [현대문학]을 일 년치 구독한 것은 순전히 당시 대성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권희돈 선생님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 '벌레'인지 '벌레구멍'인지 하는 시를 칠판에 적어주셨는데 시 말미에 '현대문학 몇월호'라고 출처가 씌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분히 허영심에서 선택한 정기구독이었지만 나에게는 당시 몇 달치 용돈을 모아 저지른 작은 사건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 잡지에 막 연재를 시작했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제목으로나마 먼저 구경할 수 있었다. 현대문학 과월호도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이 분명하니 그냥 놔두기로 하자. 

김용 선생의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는 어떻게 할까. 난 <사조영웅전>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머지 중독성 때문에 <신조협려>까지 선뜻 손을 대지 못하다가 여태 못 읽은 케이스다. 엉뚱하게도 무협지를 좋아하는 뚜라미 동기이자 '오근네닭갈비'1,2호점의 사장님인 고한우가 빌려다가 며칠 밤 통독을 하고 다시 돌려줬다. 허멘 멜빌의 <모비딕>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 읽다가 만 책들은 그냥 놔둘 생각이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등은 너무 어렸을 때 읽었으므로 다시 읽으려고 일단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놨으나 아직 읽지는 못한 책이다. 일단 놔두자. 대신 아멜리 노통브나 무라카미 류, 마루야마 겐지, 야마다 에이미 등 한때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모두 내보내자. 아,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할까. 왠지 이 사람 책은 그냥 놔두고 싶어지는데. 그냥 무시하고 싶다가도 그 꾸준함이나 향상성 때문에 자꾸 생각나는 작가다. 최근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단편들만 읽어봐도 그렇다. 어쨌든 참 잘 쓴다. 

황석영의 소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무기의 그늘>과 <손님>만 남길까 한다. <손님>은 어쩌다보니 세 번이나 같은 책을 샀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없게 가까운>도 세 번째 산 책이다. 내보낼 순 없을 것 같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같은 책은 쉽게 절판될 것 같으니 놔둬야 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이나 <나라 없는 사람> 같은 책을 어찌 내보낼 수 있으랴. 밀란 쿤데라의 책들도 일단 다 품고 있어야 한다. 이런 책을 내보내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새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도 누군가 훔쳐가는 바람에 다시 샀던 책이다. <벨벳 애무하기>라면 혹시 몰라도 이 책은 안 된다.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은 인덕이한테 선물받은 책인데 아직 안 읽었고 <탄샹싱>은 정말 정말 어렵게 구했던, 애지중지하는 책이다. 그런데 바르가사 요사의 책들은 다 어디 간 걸까. 


김훈의 책들은 일단 모셔 두기로 한다. 윤대녕의 단편집들도 마찬가지다. 폴 오스터의 책 중 그래도 <뉴욕 통신>쯤은 남겨둘까. 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서 집에 가서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이러다가 몇 권이나 내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재 결혼시키기'보다 어려운 게 '서재 시집보내기' 인 것 같다. 이건 일단 거실 왼쪽에 있는 내가 산 책들 중심의 책장 이야기다. 오른쪽에 아내가 산 책들까지 생각하면 정신이 약간 아득해진다. 아내는 그 책들 중에서 또 어떤 걸 골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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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의 소설 <미인도>를 읽었다.

한 노인이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는데 몸을 뒤져보니 대학생 학생증이 나왔고,지문을 감식해 보니 놀랍게도 그 학생 본인이 맞더라는, 신기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중편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신동으로 유명했던 전아리는 예전에 박웅현 ECD와 함께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한 적도 있는 젊은 작가인데 우리집에도 <즐거운 장난>이나 <시계탑> 같은 단편집이 있다.

동양화과 다니는 박성우라는 남자애가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로 누군가의 별장을 지켜주러 갔다가 노골적인 춘화로 가득한 노인의 방에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어떤 섬이더라는 구운몽 같은 이야기다. '미인도'라 불리는 그 곳은 한복을 입고 옛말투를 쓰는 젊고 아름다운 미녀들로 그득한 섬이었는데, 여자들은 한결같이 새로 온 남자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어떻게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색정적인 기운이 넘쳐나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떤 남자든 누군가와 한 번 합방을 하면 그 순간 섬을 떠나야 하는 얄궃은 시스템이 문제였다. 그런데 웃기는 건 합방만 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연애나 섹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인터코스'만을 피해 그 상황을 오래오래 즐기려는 야리꾸리한 상황들이 속출한다. 성우는 그 곳에서 누군가의 정사를 훔쳐보다가 그림 잘 그리는 게 탄로나는 바람에 섬 여인들에 의해 돌아가며 '주문제작 춘화'를 그리며 살게 되는데... 풋풋한 야설 같은 이 이야기는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스피디한 글쓰기에 힘입어 너울너울 단숨에 읽힌다. 한여름 납량특집극을 시청한 것 같은 알싸한 느낌의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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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 있는 사람!” 

“반창고 있는 사람~!” 

“반.창.고.있.는.사.람.” 

“반창고 있는 사람!” 

“반창고~없어?” 

“반창코 있는 사람!” 

“반창고 내놔!” 

 

까진 뒤꿈치에 붙일 반창고를 찾는 여주인공의 새된 목소리를 싣고 스테디캠이 좁은 분장실 복도를 이리저리 누비는 첫 장면부터, 난 이 영화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중국 6세대 감독 중 대표주자인 지아장커의 <세계>를 몇 주 전 EBS에서 프리미어로 방영했다. 하지만 이 날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심하게 해야 하는 상황. 바쁜 카피를 대강 엉터리로 정리한 후  한상이가 옆에서 썸네일 스케치를 하는 동안 나는 밤 11시부터 TV속 영화에 코를 박고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고 일은 일이다. 한상이는 넋을 잃고 있는 나를 TV에서 떼어놓았고, 우리는 일요일에 출근을 안 하기 위해 TV를 끈 뒤 기를 쓰고 새벽 한시 반까지 일을 해야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영화를 못 봐 너무 아쉬워하는 나를 한상이가 안타깝고 한심하게 쳐다본다. 

 

일요일.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서울아트센터(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세계>를 상영 중이란다. 너무 반가워 망설일 틈도 없이 예매를 한 뒤 뿌듯한 마음으로 종로까지 달려간다. 

 

 

‘하룻동안에 세계일주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커다랗게 걸려있는 베이징의 세계공원. 타오와 타이쉥은 여기서 무용수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둘은 연인 사이다. 에펠탑, 런던브릿지, 피사의 사탑 등이 삼분의 일 사이즈로 오밀조밀 흩어져 있는 이 거짓말 같은 공간에서 타오는 춤을 추고 타이쉥은 관광객들을 돌본다. 타이쉥의 사촌동생 얼샤오도 여기서 일하는데 그 놈은 영 적응을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동료들과 함께 화려한 무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타오는 늘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보면 마음은 춥고 불안하다. 매일 쳇바퀴처럼 도는 공원 생활이 그렇고 아직 몸을 허락하지 않은 남자친구 타이쉥이 떠나갈까봐 안절부절 하기도 한다. 

 

어느 날, 고향에서 잠깐 사귀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인사차 찾아왔을 때 셋은 같이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은 뒤 작별을 고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타오의 옛 남자친구를 배웅한 타이쉥은 그 날 둘이 함께 가곤 하던 초라한 여관에서 타오에게 사랑을 나누자고 조르다 또 거절당하자 ‘우리 애인 사이 맞아?’라며 화를 낸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여관이 너무 지저분해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알아, 우비를 입고 잤다고 했잖아.” 

“내 아이디어, 좋지 않았어?” 

 

측은한 마음에 더 이상 요구를 하지 못한 타이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타오를 말 없이 꼭 껴안아주는 것뿐이다. 

 

잠깐 다녀 올 일이 있어 고향에 가게 된 타이쉥은 함께 길동무를 하게 된 유부녀 췬과 가까워진다. 췬은 노름과 여자 문제로 늘 사고를 치는 남동생에게 또 돈을 가져다 주기 위해 타이쉥과 함께 길을 떠난 것이다. 십 년이나 남편과 떨어져 사는 외로운 여자 췬은 어느덧 타이쉥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감정을 그대로 밀어붙인다. 세계공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애인 타오가 눈에 밟히는 타이쉥도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비밀스런 관계를 갖게 된다. 

 

타이쉥이 없는 공원에서 일을 마치고 쓸쓸하게 걸어오던 타오는 동료 무용수 하나가 나이 든 공원 사장과 사진을 찍으며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두 사람은 절대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타오는 벤처사업으로 갑부가 된 젊은 남자에게 청혼을 받지만 거절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러시아 출신 안나를 만나게 된다. 함께 일할 땐 같은 무용수였지만 지금은 호스티스가 된 안나를 보고 타오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고향 친구와 후배를 베이징으로 잠깐 데려 온 타이쉥은 공원 여기저기를 안내하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저건 런던브릿지, 저건 자유의 여신상, 저건 에펩탑이야. 모두 삼분의 일 사이즈로 제작됐지. 와, 에펠탑이랑 똑같이 생겼네. 진짜 에펠탑 가봤어? 아니… 고향 후배는 신이 나서 자기도 여기서 일할 수 없겠냐고 묻는다. 난감해진다. 어차피 가짜로 가득 찬 공원에서 혹시 자기 인생도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또 쓸쓸해진다. 

 

공원 생활에 잘 어울리지 못하던 사촌동생이 결국 팀원들의 물건을 훔치다 걸려 쫒겨난다. 심란한 마음에 타오와 함께 자기 고향으로 내려간 타이쉥은 전에 친구와 놀러 왔던 고향 후배가 공장에서 일하다 다쳐 죽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죽기 직전에 유서로 내민 쪽지엔 누구누구에게 꾼 돈과 어느어느 가게에 진 외상값들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산업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고향은 더 이상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흙먼지 섞인 바람이 황량하게 두 사람 사이를 훓고 지나간다. 

 

어느 날 공원 사장이 회의를 소집해 모두를 불러모으더니 예전 팀장을 해임하고 젊은 여자 무용수를 팀장으로 임명한다고 전격 선언한다. 새 팀장은 예전에 타오가 사장과 데이트하는 현장을 목격했던 바로 그 친구다. 

화려했던 불빛이 모두 꺼진 시간, 숙소로 돌아가다 그 친구와 마주친 타오는 팀장 된 걸 축하한다고 약간 비아냥거리지만 ‘그냥 직함만 달라진 것뿐인데 뭘.’ 이라고 하는 친구의 허탈한 대답에서 타인의 고단한 삶과 마주친 걸 깨닫고 당황한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자오타오는 실제로 세계공원에서 무용수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지아장커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탄 영화 <스틸라이프>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남자 주인공인 첸타이쉥도 베이징에서 연기과를 전공했지만 배우의 길이 막연해 ‘평생 불법DVD나 팔고 살아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인물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둘의 모습에서는 연기 이상의 깊이와 사실감이 절절이 묻어난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어요.” 

 

남자친구의 의처증 때문에 맨날 싸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또 다른 공원 커플이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던 날, 피로연장에서 즐겁게 건배를 하던 타오는 우연히 췬이 파리로 떠나면서 타이쉥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게 된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잠자리까지 가진 타이쉥이 자신을 배신을 한 것이다. 

 

숙소를 뛰쳐나온 타오는 돈을 아끼기 위해 값싼 여관으로 간다. 지저분한 여관에서 우비를 꺼내 입고 침대에 몸을 눕이는 타오. 우비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단추를 꼭꼭 여민 타오의 모습은 마치 누에고치 같다. 

 

몇날 며칠 타오를 찾아 헤메던 타이쉥은 결국 신혼여행 떠난 동료의 빈 숙소에서 타오를 발견한다. 문을 열어주지 않고 바닥에 앉아 타이쉥에게 욕을 해대는 타오와 문 밖에서 용서를 구하는 타이쉥. 

 

어느덧 날이 밝아 새벽이 되었고, 숙소에선 사람들의 요란한 비명과 고함이 다급한 발걸음과 뒤섞인다. 연탄 까스를 마신 사람이 있으니 빨리 119를 부르라는 소리와 함께 업혀 나온 남녀는 술을 마시고 잠들었던 타오와 타이쉥이다. 119는 아직 오지 않고 담요에 싸여 새벽 길바닥에 눕혀진 두 연인의 모습 위로 타오와 타이쉥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된다. 

 

“타이쉥, 우리 죽은 거야?”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마지막 대사는 왠지 낯이 익다. 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리턴>에서도 맨 끝에 이런 대사가 나오지.(형, 우린 끝난 건가요?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한 영화 기자는 <세계>를 보고 나서 ‘어떤 감독은 삼십대 중반에도 거장이 된다’ 라고 했다. 귀엽고 경쾌했던 <키즈리턴>에 비해 <세계>는 훨씬 남루하고 고통스러운데, 이상하게도 그게 더 좋다. 정말 가슴이 뻐근해진다.     2006.11.22 17:44

 


* 오늘 페이스북 댓글로 어떤 페친께서 지아장커의 <산하고인>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예전에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세계>의 영화일기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10년 전이군요. 다시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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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카피 고민을 할 때면 별 게 다 신경이 쓰인다. 필기구도 그 중 하나. 연필로 썼다가 볼펜으로 썼다가 괜히 만년필로 바꿨다가. 아내가 쓰던 몽블랑 볼펜도 있고 파버카스텔 만년필, 일본 츠타야서점에서 산 빠이롯트 만년필, 노란 파버카스텔 연필, 이마트에서 산 일본 우노4색볼펜, 그리고 얼마 전 교보에 갔다가 괜히 심을 구입한 워터맨 볼펜까지. 그런다고 잘 써지는 것도 아닌데. 책상 위 연필꽂이를 바라보니 실로 많은 펜들이 꽂혀 있다. 결국 자판으로 정리할 거면서도 이렇게 많은 펜들이 필요하다니. 나중에 죽어 염라대왕 앞에서 대질심문 할 때도 생각이 안 나 못썼지 필기구 없어서 못썼다는 말은 못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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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12117265&code=990303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반대말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니라 공유경제와 공유소비가 되었다는 글쓴이의 통찰, 경청할 만한 시론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유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만 집도 자동차도 책도 남의 것을 빌려 쓰거나 함께 쓰는 게 익숙치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다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공유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나의 삶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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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시를 쓰기로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어느날 한 기자가 그의 어려운 시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시 하나를 가리키며 도대체 무슨 의미로 이런 시를 썼느냐고 묻자 ‘이 시를 쓸 때는 나와 신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로지 신만이 아신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신도 무슨 뜻인지 까먹었다는 얘기다. 시계태엽오렌지라는 제목을 단 소설가 앤서니 버지스도 죽기 전까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시계태엽오렌지(A Clockwork Orange)는 대학 시절 '비짜 비디오'로 처름 본 이래 DVD로, 시네마테크에서, 그리고 또 얼마 전 '스탠리 큐브릭전'에서도 반복해서 보았던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 전편을 이토록 몰입된 환경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늘 오후 2시, 전날의 격한 음주로 인한 숙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매를 강행한 나는 압구정CGC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와 정식으로 조우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 제목의 의미가 궁금해져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버지스는 1972년 한 잡지와 인터뷰하며 “런던 동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괴상한’(as queer as a clockwork orange)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밝혔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레이어 ‘orang’을 이용한 말장난이라고 말했다. 또 얼마 뒤 그는 이 제목이 “즙이 많고 달콤하며 향이 좋은 한 유기적 독립체가 기계장치로 바뀌는 것”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언어유희에서 시작했든 은유효과를 노렸든 아무래도 버지스는 남들이 안 쓰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는 데 매혹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서 새로운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어했던 스탠리 큐브릭도 당연히 이 단어의 특별함에 단박에 매혹된 것이리라. 

1972년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매우 연극적이고 감각적인 미장센을 고집하는 이 영화는 미술은 말 할 것도 없고 특히 음악의 배치와 쓰임새가 놀랍다.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세련된 중산층 작가의 부인을 강간하는 장면은 너무도 매혹적으로 그려져 영국에서 청소년들이 이를 그대로 따라한 모방범죄가 발생했을 정도라고 한다. 덕분에 이 영화는 감독이 사망할 때까지 영국에서는 더 이상 상영을 하지 못했고. 

틴토 브라스 감독의 지상 최대 포르노 <칼리큘라>에서 네로 역을 맡았을 때도 굉장했는데 말콤 맥도웰은 이 영화에서 완전 미친놈 그 자체다. 당장이라도 상대의 얼굴을 쇠막대로 내려칠 것만 같은 위악적이고 불안한 미소와 눈빛. 도대체 이십대에 이런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배우가 몇이나 있었던가.

그리고 얼마 전 스탠리 큐브릭전에 다녀온 뒤 남긴 짧은 포스팅에 내 친구 표문송 씨가 큐브릭 예술의 핵심은 음악!!이라는 댓글을 달았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폭력장면들에 우아하게 흐르는 클래식이라니. 그것도 베토벤의 9번 교향곡. 그런데도 마치 그 장면을 위해 작곡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신선함이라니. 완벽주의자이자 천재였던 스탠리 큐브릭의 공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영화의 이미지와 테크닉에 압도당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새삼 거론하는 게 구차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긴, 천재의 작품에 뭐 이런저런 토를 달겠는가. 그냥 감탄하다 잠드는 것도 행복한 리뷰의 한 가지 방법 아니겠는가. 


(*영화를 보고 인터넷에서 찾은 평론가 김효선의 글을 많이 참조해서 썼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73101&cid=42621&categoryId=4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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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회의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혼자 들어간 논현동의 식당엔 채널A가 틀어져 있었다. 북한 김치와 남한 김치를 비교하는 쇼프로였다. 붐비던 손님들이 한 차례 나간 뒤라 식당은 지나치게 한산했다. 마침 리모콘이 내 테이블에 놓여 있길래 나는 혹시 뉴스를 틀어도 되겠냐고 서빙하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 재널을 YTN으로 바꿨다. 개성공단 중단에 관한 뉴스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식당 사장님께서 나이가 지긋한 남자 손님 두 분과 나누는 황당한 대화 때문이었다.


"거, 개성공단 창문마다 폭탄을 설치해서 나올 때 몽땅 폭파를 시켰어야 하는 건데. 그놈들 하나도 못 건지게. 아까워... 애초에 그거 지을 때 몰래 폭탄을 심어놓고 어제 같은 날 청와대에 앉아서 누루기만 하면 다 터지게! 어째 그 생각을 아무도 못했나..."


사장님과 손님 두 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셨다. 남한측에서 사업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관심 없고 오직 초가삼간 다 태우더라도 미운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너무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셔서 감히 끼어들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끔찍하고 무서웠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건 맨날 내 입으로 지껄이는 공자님 같은 소리였지만 막상 같은 땅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은 짐작보다 괴롭고 심란했다. 


문제는 이런 분들도 선거 때마다 우리와 똑같이 한 표씩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분들의 선택은 우리의 짐작대로일 것이며, 그 신념은 앞으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가 얼마나 심각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절망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더욱 더 이번 선거에 관심을 보이고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는 당장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 야권을 생각하면 푹푹 한숨만 나오지만, 그래도 남은 희망의 불씨를 찾아보자. 누구 좋으라고 포기하나. 정신 차리고 투표 하자. 지난 대선에도 우리가 '설마' 하고 있는 동안에 이 분들이 그토록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투표를 독려하며 막판에 그녀에게 몰표를 몰아줄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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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PT 준비로 한참 바쁠 인터넷 서점을 통해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 샀다. 그의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라고 쓰면 매우 폼나겠으나, 사실은 하권까지 읽다가 말았다). 바빠서 책을 읽다가 마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데 도중에 한 번 덮은 책은 다시 읽기가 참 힘들다. 그러면서 새 책에 대한 유혹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사는 게 다 이렇다. 이 책도 사실은 여기저기서 워낙 제목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오래 전부터 다짐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소설 시작 전에 작가가 25년만에 다시 쓴 서문이 나오는데 거기서 작가는 제목을 정할 때 ‘자정의 아이들(Children of Midnight)’은 너무 진부했고 ‘한밤의 아이들(Midnight’s Children)이 좋은 제목이었다,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글이 잘 써졌다고 고백한다. 나로서는 그 두 제목이 어떻게 진부하거나 그렇지 않은지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책을 완독한 후에 이유를 찾아봐야겠다. 지금 현재 110페이지를 조금 넘게 읽었다. 권당 500페이지에 가까우니 이제 한 십분의 일을 읽은 셈이다. 


젊은 시절 런던의 ‘오길비 앤 매더’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적도 있는 살만 루시디는 매력적인 작가다. 이 책 역시 [무어의 마지막 한숨처럼]처럼 거침없고 끈적끈적 유연한 말과 글의 향연이 ‘전설따라 삼천리’처럼 구비구비 펼쳐진다. 이야기의 시작은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는 날 자정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라는 남자애부터다. 일단은 그 이유로 ‘한밤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소설의 화자인 살림은 자기 얘기가 아니라 그 옛날 독일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인도로 돌아온 자신의 외할아버지 아담 아지즈 때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아담의 나이 많은 친구이자 수다장이인 뱃사공 타이를 등장시켜 시공간을 가르는 각종 ‘구라’들을 끝도 없이 펼치게 한다. 아담 할아버지가 구멍 뚫린 침대보를 사이에 두고 진찰(다 큰 여자가 남자에게 처녀가 함부로 몸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을 계속 하던 부잣집 처녀와 결혼하게 되는 얘기를 시작으로 영국의 식민과 독립을 향한 인도의 정치상황까지 별의 별 이전 얘기를 붙들고 국을 끓이고 있으니까 옆에서 보고 있던 그의 아내 파드마가 와서 “이런 속도로 가다간 당신 탄생에 대해 얘기하기도 전에 이백 살이 돼버리겠어요.”라고 투덜대기까지 한다. 마치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서 작자인 밀란 쿤데라가 나와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을 잘못 정했어. 사실은 이 책의 제목으로 썼어야 하는 건데.”라고 투덜대는 것만큼 재미있다. 



이 책을 사기 전에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라는 노르웨이의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인데 구성이 치밀하고 짧고 재빠른 대사들도 멋지다. 해리 홀레라는 연쇄살인 전문형사반장을 등장시켰는데 살인에 대한 묘사와 흥미로운 캐릭터 등등이 빛을 발하고 소설 곳곳에 영화나 음악에 대한 통찰력까지 번뜩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데니스 호퍼의 [뒤로가는 남과 여]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할 때는 너무 반가워 혼자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요네스 뵈는 노르웨이의 국민작가이자 뮤지션이고 저널리스트이며 경제학자란다. 도대체 잘난 놈들이 너무 많아서 살 수가 없다. 어쨌든 구정 시즌을 이용해 이 책에 대한 리뷰도 좀 써봐야겠다. 그러나 일단 살만 루시디의 책이 먼저다. 술과 TV, 잠, 영화 등등 여기저기 ‘치즈 인 더 트랩’처럼 유혹이 널려있는 연휴다. 과연 나는 이 역경을 딛고 [한밤의 아이들]이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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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별똥별을 

보면서 생각했다.


별은 아내를 주고 

똥은 내가 가져야지. 


그래도 별이 하나 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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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스타들이 출연하는 외국 라이선스의 대형 뮤지컬이 너무 거하거나 비싸다고(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국내의 우수한 창작 뮤지컬을 권해주고 싶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진짜 당대 우리 모습를 담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노래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 뮤지컬 [스페셜 딜리버리]를 관람했다. 왕년의 인기스타이지만 현재는 별 볼일 없는  행사가수로 전락한 정사랑과 가출 후 조건만남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열여덟 살 소녀 강하리가 우연히 병원에서 만나 서로의 영혼이 뒤바뀌는 얘기다.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이젠 흔한 레파토리가 되었지만 입장이 뒤바뀜으로써 서로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상대방의 모습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라는 얼개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쓴 장유정 작가 덕분에 한국 창작 뮤지컬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오미영 작가를 만나고 나서 창작 뮤지컬에 대한 믿음이 더 깊어졌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이 극을 쓰고 연출한 오미영 작가의 팬이다. 오 작가는 전작 [식구를 찾아서]에서도 그랬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연출하는 작가다. 오늘 본 작품에도 나오는 대사 결국엔 해피엔딩’처럼 그녀는 늘 어렵고 소박하지만 사람이 살아갈 만한 세상을 구한다.


오늘 첫 공연이라 그런지 조금 합이 안 맞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작들에서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었던 배우들이라 곧 기가 막힌 호흡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단 일곱 명이 쉬지 않고 백 분 내내 스물두 곡의 노래와 춤을 선보인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대본 공모를 통해 2015년 창작뮤지컬 우수작품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라 한다. 2월 14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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