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파리 지하철공사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시란다. 짧은 단상이지만 그 상징성과 압축미가 너무 뛰어나 이 시를 소재로 쓴 이문재의 칼럼이 사족처럼 느껴진다. 시민 공모작인데도 수준이 이 정도라니, 어렸을 때부터 철학과 문학을 제대로 배우는 나라의 전통이 부러울 뿐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에 걸려있는 어이없는 시민 공모작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9211319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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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를 처음 봤던 건 [원더플 라이프]라는 작품이었다. 꽤 오래 전 광화문에 있는 극장에 예약을 했는데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혼자 전철역에서부터 미친듯이 달려 영화 시작 직전에 겨우 입장을 했고 뛰어오느라 너무 숨이 차서 몇 분간 민망할 정도로 숨을 헐떡거리며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림프계에 머물면서 일 주일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작은 단편 영화를 한 편씩 찍은 다음에 비로소 다음 세상으로 간다는 내용이 참 우화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을 묻는 질문에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서 놀았던 기억’을 대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 서글퍼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씨네21’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았고 [걸어도 걸어도]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다. 게으른 탓에 데뷰작 [환상의 빛]이나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오늘 본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좋았다. 정말 악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인데도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은 아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번 작품은 어렸을 때 가족을 버리고 다른 가정을 꾸몄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는 시건을 계기로 배다른 여동생과 살게 되는 세 자매의 이야기인데,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스토리텔링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 노인들 각각의 심리를 묘사하는 상황설정과 대사의 섬세함은 정말 최고다. 내친 김에 영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쓰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아무리 그 내용을 상세히 전달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아야세 하루카는 예전엔 그저 예쁘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젠 공력이 쌓여서 그 어려운 맏언니 역할도 참 똑부러지게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 가세 료가 어느새 저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 릴리 프랭키는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앞으로도 무조건 봐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 등을 짧게 메모해 놓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아내는 ‘릴리 프랭키 아저씨는 우리나라 김창완과 참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다. 맞는 얘기다. 소설도 쓰고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도 하는 릴리 프랭키는 여러 가지로 김창완과 많이 닮았다. 특히 둘 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유스러운 일상과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그렇다. 


일상이 바쁘고 단조로워서 밀린 영화들이 많다. 개봉한 지 꽤 지난 타란티노의 영화도 봐야 하는데. 어쨌든 오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한 편 보았으니 이 또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월요일. 또 다시 일상과의 전쟁이다. 뭐 어쩌겠는가. 오늘 본 영화의 좋은 에너지를  연료 삼아 내일 하루를 또 무사히 잘 버텨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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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건, '공부 빼고는 뭐든지 잘 해서' 맨날 꼴찌만 하던 덕선이가 딱 일 년 재수하고 너무 쉽게 스튜어디스가 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물론 누구든 실제로 덕선 역을 맡은 혜리 정도의 미모와 귀염성만 있다면 어떤 면접시험이라도 잘 통과했겠지만 말입니다. 근데 그때도 스튜어디스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네, 맞습니다. 응팔 애기입니다. 방금 응팔 마지막회를 보았습니다. 처음엔 지난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너무 ‘추억팔이’에만 매진한다는 반발심에 조금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드라마와 연기자들이 화제가 되고 회가 거듭할수록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저도 어느덧 ‘응팔’의 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가들의 치밀한 구성과 취재, 그리고 연기자들의 노력이나 드라마 자체가 가지는 개연성, 디테일 등이 정말 좋았거든요. 지난 시즌처럼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남편으로 등극하는 어릴 적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대형 낚시바늘도 큰 몫을 했구요. 오죽하면 제 주변에 공중파 드라마는 안 봐도 이 드라마만큼은 챙겨 본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어제 회의 시간에 들은 얘기지만 현재 ‘응팔’에 나오는 배우들이 최근에 찍은 CM이 무려 55개나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 리콜>처럼 한 때 ‘근미래'를 다뤘던 SF영화나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는데, 마친가지로이 드라마도 ‘근과거’를 다뤘기 때문에 유난히 더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는 우리들이 모두 기억하는 시대의 뻔한 모습이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면 새삼 감동하게 되는 단순한 구조가 숨어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아이폰을 썼다고 012나 015로 시작하는 플라스틱 삐삐 소품에 감동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도룡뇽이 차린 식당에 가서 위기철의 <논리야 반갑다>를 읽는다든지, 결혼 전날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있는 신부의 모습 등은 뻔하면서도 ‘맞아, 그땐 다들 저랬지’라는 묘한 반가움과 공범의식이 숨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거기에다 이 드라마 시리즈는 평범한 척 하면서도 모두 특별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덕선이나 도룡뇽 말고는 대부분 공부도 잘 하고 모범생에다 효자 효녀들입니다. 보라처럼 과외 한 번 안 하고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든지 택이처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프로기사가 다닥다닥 옆집에 붙어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그러그러한 이야기 끝에 ‘그래도 그땐 사람들이 순진하고 착한 맛이 있었어’라는 ‘분식회계’가 숨어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자칫 이런 심리가 '과거회귀'로 가지나 않을까 매우 염려됩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은 현실을 잘 모르거나 외면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도피처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나오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은 너무나 전염성이 강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과오가 많은 사람을 ‘열혈 애국자’로 포장할 수도 있고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기회주의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할 수도 있으니까요.


응팔을 지켜보면서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수록 지금 여기서 온몸으로 부딪히려는 굳은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무조건 과거만 추억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곧 총선이 있고 내년엔 대선이 있습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이라 했습니다. 현재만이 현금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사람들은 성보라도 택이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근미래를 책임질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안철수 씨, 문재인 씨, 박원순 씨, 딴 데 쳐다보지 말고 대답해 주십시오. 과연 답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 '응답하라 2016'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분명 당신들 얘기가 제일 먼저 나올 텐데. 제발 정신 차리고 우릴 쳐다보십시오. 싫지만 우리에겐 지금, 당신들이 그나마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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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집에서 쉬면서 느긋하게 TV를 보거나 멍때리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만의 은밀한 기쁨이다. 게으르게 일어난 우리는 오랜만에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게으른 오전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TV동물농장>을 보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조금 더 읽었고 11시가 넘어 브런치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고 성동구민체육센터 맞은편에 있는 비사벌콩나물국밥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방금 밥을 먹고 왔지만 이상하게 또 배가 고프네...나는 식충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커피를 내리고 방금 사 온 식빵을 가져오길래 또 마주 앉아서 따뜻한 빵을 뜯어먹었다. 마침 tvN에서 <치즈 인 더 트랩> 1.2회를 연속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서 TV속으로 빠져들었다. 워낙 tvN에서 자체 홍보를 많이 해서 ‘도대체 뭐길래 저래?’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 영화 <은교>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던(홍보 포인트를 엉뚱하게 잡아서 그렇지 영화 자체도 홀륭했다) 김고은의 연기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2회를 지켜보니 일단 박해진, 김고은의 매력이 대단했고 서강준, 이성경 등 조연들의 역할도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딱 맞을 것 같았다. 잠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제 겨우 2회 방송을 했을 뿐인데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원작 웹툰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 부담도 엄청났을 텐데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주연배우들의 연기. 별로 예쁘지 않은 배우 김고은은 오히려 그래서 전형적인 연기를 벗어나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지는 것 같다. 복학생 선배 역할을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박해진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의 흐름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했던 이윤정PD의 공력이 있다. ‘로맨스 +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웹툰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자칫 드라마 전개에 비약이 심할 수 있다. 그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은 연기자들의 노력도 있지만 플롯의 헛점을 탄탄하게 해주는 극본과 연출의 힘이 절대적이다. 호조의 출발을 보였다는 것은 이들이 젊은 연기자들의 힘만 믿지 않고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러가지 미덕들을 여기저기 잘 숨겨 놓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으면 아마 중국이나 동남아에선 더 난리가 날 것이다. 새로운 스타 탄생이요 한류 콘텐츠의 새로운 방향 제시일 수도 있다. 그냥 예쁘기만 한 드라마가 아니라 볼 때마다 다음 회가 기대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그 덫에 놓인 치즈'를 덥썩 물 수 있도록 계속 성실하게 끌고 가줬으면 하는 게 평범한 시청자로서의 바람이다. 이제 네 시부터는 <응답하라 1988> 재방송을 봐야겠다. 게으른 일요일,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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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인 박연준과 시인이자 인문학 저술가인  장석주는 이십오 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커플이다.  따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그냥 동거에 들어갔던 이 커플이 며칠 전인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결혼기념일로 정하고 결혼 서약 대신 냈다는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었다.


이 책은 작년에 호주 시드니에 사는 지인이 한 달 간 집을 비우게 되었으니 두 시람에게 와서 살아보라고 했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집이 한 달간 비니 그동안 와서 우리가 쓰던 집과 방과 이불과 숟가락 젓가락을 마음대로 써도 무방하다고 한 사람도 대단하지만, 지인이 살러 오랬다고 냅다 서교동 집을 한 달이나 비우고 날아갈 수 있는 두 남녀도 대단히 부러운 인생이다.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어 결혼 서약 대신 내게 한 기획자이자 시인인 김민정 역시 멋진 사람이다.


제목인 '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라는 문장은 박연준이 쓴 앞부분의 챕터 ‘첫날’이라는 글 속에 들어 있다. 이 책은 반쯤 나눠서 앞 부분은 박연준이 쓰고 뒷부분은 장석주가 쓰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지만 평이하고 살뜰한 문장을 구사하는 박연준의 글이 미셀러니에 가깝다면 보다 개념적이고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장석주의 글은 에세이스럽다. 



나는 두 주인공이 시드니에서 마주친 월요일의 운동장 모습에서 눈이 멈췄다. 장 본 물건들을 들고 걸어오던 두 사람은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 벤치에 짐을 부리고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운동장엔 한 남자가 부메랑을 던지며 놀고 있었고 그 옆엔 여자 아이가 혼자서 농구공을 튕기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부메랑을 던지며 놀던 남자는 타인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의심 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월요일인데 저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것일까?’ 라고 놀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바쁘게 살아야만 정당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애초에 장석주는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지 잠 깨고, 혼자 걸어다니는 '1인분의 고독'에 피가 길들여 있던  사람이었는데, 박연준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들어옴으로써 ‘2인분의 고독’을 덥썩 받아 품기로 한 사람이라 고백한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사는 과정을 '고독이라는 공통분모로 묶다니, 이는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더 게으르고 더 형이상학적인 취향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사람조차도 시드니 교외 주택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심심함을 품은 시간들'이라며 그 소중함을 다시 반추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심심함을 품은 시간들이라니. 베란다에 의자를 내놓고 햇볕을 쬐고 책을 읽으며 한가롭게 보낸 시간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바로 이 장면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결혼서약을 대신하는 의미로 두 남녀가 쓴 에세이라는 멋진 포장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한 달 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햇볕을 쬐고 포도주를 마시며 논 이야기다. 심심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뒤쳐짐에 대한 염려나 늙음에 대한 안달도 내려놓은 채 진짜 ‘심심하게’ 지낸 부러운 시간의 기록들. 에필로그에서 장석주는 그가 누렸던 심심함을 이렇게 찬양한다.


심심한 시간은 그냥 심심하기만 한 게 아니다. 심심함 속에서 잊었던 것들이 되살아나고, 사라진 것들이 부활한다. 심심한 시간들은 죽은 것들을 되살리고, 잃었던 것들을 다시 돌려주며 감미로운 감각들을 맛보도록 했다. 시드니의 유칼리투스 숲과 공원들, 푸르름에 물든 하늘과 바다, 청명한 날씨들, 롱블랙 커피, 달링 하버를 걷던 시간들, 우리를 환대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자.



나는 겨울이면 가끔 눈 쌓인 산장에 갖혀 지내는 상상을 한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에 나오는 그런 산장처럼 아무도 오지 못하는 그 곳. 거기서 무얼 할까. 핸드폰도 TV도 단절이다. 오늘 내일이 지나야 사람들이 쌓힌 눈을 뚫고 나타날 것이다. 긴긴 겨울밤. 밖엔 옅은 눈보라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벽난로 안의 장작불은 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다...아, 회의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여기는 회사. 화요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죄다 자리에 앉아 회의를 준비하거나 일을 하고 있다. 논현동에 눈내리는 산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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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에 통영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노 요코 여사의 <죽는 게 뭐라고>를 읽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붙어있는 서점 <봄날의 책방>에서 어제 산 책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자마자 재규어 매장에 가서 잉글리시 그린 컬러의 차를 가리키며 "저거 주세요"라고 외쳤다는 일흔 살의 할머니. 정말 귀엽지 않은가.

암투병기가 정말 싫다는 사노 요코. 택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법으로 금지되자 차를 사서 병원 가는 길마다 굴뚝처럼 담배를 피워댔다는 대찬 여자. 소파에 누워 TV나 비디오를 볼 때가 제일 좋다는,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다가 너무 행복해서 꽥꽥 소리를 지른다는 이 할머니 때문에 정말 많이 웃었다. 

사노 요코는 <100만 번 산 고양이> 등을 쓴 작가다. 글이 솔직담백하고 직선적이다. 읽으면서 속이 후련해지고 때론 애잔해지는 수필이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도 지겹다고 투덜대던 이 할머니, 2010년 72세에 미련 없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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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차라리 니가 나가 죽었으면 좋겠어>

어떤 여자분이 시집 오기 전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주인집 아들에 의해 저질러진 강간이었다. 그 과정은 계획적이었고 모질었으며 끔찍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힘이 없었다. 오래 전 일이었고 또 먹고 사느라 바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채 그냥 참고 살아야 했다. 남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인집이 두려워서인지 원래 자존심이 없어서인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십 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인가부터 그 여인은 가해자 집앞에 가서 사과를 요구하기로 했다. 쩨쩨하게 돈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네가 잘못했음을 동네 사람들 앞에서 깨끗이 인정하고 반성문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당시 돈을 벌고 싶어 자진해서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해 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라는 헛소리가 그 집안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왔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 여인은 그 후 매주 수요일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집 앞에 가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 여인의 사연은 곧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져 많은 공분을 사게 되었고 반상회에 안건으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조소과에 다니는 어떤 미대생은 그 여인이 강간을 당하던 당시 나이 즈음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그 놈 집앞에 세워놓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2월이 다 끝나갈 즈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여인의 아들이 그녀에게 말도 안하고 가해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지난 일은 다 잊기로 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 일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모친이 그게 무슨 미친 개소리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엄마, 이제 대승적 차원으로 생각하셔야 해요. 아세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한자로 쓰면 '비가역적'이 되거든요? 깔끔하게 합의를 다 끝냈는데 이제 와서 엄마가 이러시면 아들 입장이 뭐가 돼요." 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용돈으로 십만 엔 정도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놈 집앞에 세워놓은 소녀상도 이제 어디다 좀 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 엄마가 강간 당한 일을 왜 엄마한테는 알리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가서 합의랍시고 하고, 또 왜 그렇게 서둘렀냐는 질문엔 '앞으로는 그놈이랑 힘을 합쳐 사이 좋게 지내야 옆동네 중국집 배달하는 형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장 아저씨가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왔다는 뒷얘기를 털어놨다. 덕분에 주인집 아들은 '12월 28일에 모든 합의를 끝냈으므로 이제 앞으로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엔 그 여인과 그 집은 이 동네에서 끝'이라는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 눈에 피눈물이 흘렀다.
이런 걸 자식새끼라고.

슬프고 허무했다. 이제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그 여인은 아들이 받아온 돈다발을 풀어 지폐를 박박 찢어서 병신 같은 자식의 얼굴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난 차라리 나가 나가 죽었으면 좋겠다. 이 쓸개 빠진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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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에쁜고 젊은 얼굴과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이자 두 고등학생 아이의 엄마인 남부러울 게 없는 그녀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가자는 남편의 제안이 영 달갑지 않다.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벌어지는 가벼운 실랑이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이 둘 다 스키 캠프로 떠난 참이라 처음으로 둘 뿐인 사진 나들이인 것이다. 알 수 가 없다. 늘 자신을 사랑해주고 장모님까지 극진하게 모시는 ‘굿보이’지만 정작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 그녀의 가슴 속엔 이십 년 전 파리 유학시절에 잠깐 함께 살았던 남자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몽마르뜨 언덕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보잘 것 없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지나간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만 남는 법. 히사코는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사진 취미도 포기하고 사업에 매진했던 남편의 사랑이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그리고 자신을 렌즈에 담으려는 남편의 성의가 부담스럽다.


삼각대를 세운 남편이 무심코 마로니에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이미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 렌즈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히사코에게 “뒷모습도 괜찮지만”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어코 눈물을 터뜨린다. 지난 이십 년 간 단 한 번도 남편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거짓말로 살아온 자신이 미워서다. 히사코는 남편에게 말한다. 나 할 얘기가 있어요. 무슨 얘기라도 다 들어준다고 약속해 줄래요?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무슨 얘길 하든 어머니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또 내게도 변함없는 차코(히사코의 애칭)로 남는다고 약속해줘. 알았어요. 나 처녀 시절 파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신을 만났을 때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어요. 아이를 지우고 당신과 결혼했지만 그 후로도 이십 년 간 그 사람만을 그리워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바보처럼 모든 걸 이해하고 안타깝게만 받아들이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믿고 있는 이 남자를 믿는 것만큼 사랑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게 그런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그들이 접어든 초상화 거리에서 이십 년 전 그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얼굴이 변해도 화풍만은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는 예전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다. ‘초상화 오 분 완성’이라는 안내문을 사이에 두고 단박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커피를 사러 갔던 남편은 두 남녀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 이십 년 전 그 남자임을 직감하고 말한다. “와이프인데 잘 부탁해요. 오 분 이상 걸려도 좋으니까 젊게 그려주세요.”


신기하게도 그가 그린 초상화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가 아니라 스물세 살의 히사코다. 단박에 이십 년을 가로지르는 슬픈 만남이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나 가능한 이야기랄까. 남편은 남자에게 자기 아내와 식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신은 커피를 마시고 있겠다며. 눈물겹고 신파스러운 배려다. 그러나 그 부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자가 질척거리지 않고 그림값 이천 엔을 요구하더니 미련 없이 일어섰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라지고 다시 사진을 찍는 두 사람. 이번엔 히사코가 촬영에 아주 협조적이다. 히사코가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방금 받은 그림과 남편이 오늘 찍은 사진을 사무실에 나란히 걸어 달라고. 스물세 살의 히사코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를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며. 이젠 아무 것도 거리킬 것이 없다. 거리에서 남편의 입, 볼, 턱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입을 맞추는 히사코. 바보 같이 이십 년이나 걸려 남편에 대한 사랑을 찾았다. 마침 크리스마스의 일이다.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 이브는 매우 특별한 날이니까.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신파스럽고 복고적이지만 스토리텔링의 균형감각은 세계 최고다. 나는 세상이 가끔 살벌하게 느껴지거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 그의 단편을 하나씩 꺼내 읽는다. 그의 <수국꽃 정사>를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리면서도 좋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샐러리맨 같은 무사 이야기를 다룬 눈물나는 장편소설 <칼의 지다>를 읽은 뒤 완전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영화 <파이란>의 원작자도 아사다 지로다(원작은 <러브레터>). 그의 글은 어떤 소재를 다루든지 쉽게 읽힌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무시하지 말자. 스티븐 킹이 대중작가라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스티븐 킹에게 무릎을 끓었다. 서점에 나가 베스트셀러들을 잠깐 살펴면 이건 나도 쓰겠다, 싶은 어이 없을 정도로 쉽고 얄팍한 책들이 많을 것이다. 그걸 보고 한심한 세태니 인스턴트 시대라 그렇다느니 한숨 쉬며  탄식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쉽게 읽힌다고 아무 책이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다.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없으면 절대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모르면 쉽게 쓰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시, 결론은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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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ilRHLu6K4k


https://www.youtube.com/watch?v=wuz2ILq4UeA


https://www.youtube.com/watch?v=V6-0kYhqoRo


https://www.youtube.com/watch?v=hjBZoOs_dXg




올 해 본 크리스마스 광고는 'John Lewis'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구약성서를 패러디한 'Mulbery' 광고가 있었네요. 진지한 유머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Stevie Wonder와 Andra Day가 'Someday At Christmas' 부르는 아이폰 광고도 참 좋죠?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꾸며내고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EDEKA 광고는 개인적으로 좀 싫군요. 여러분은 어떤 광고가 마음에 드세요? 


어떤 힘든 일이 있든 가슴 아픈 사연이 있든 어쨌든,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이길 빕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길. 연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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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던 어제, 회의를 하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김건익 실장님과 함께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오늘 신문을 펼쳐보니 ‘조성진의 음악’을 위하여,라는 백승찬 기자의 칼럼이 나왔더군요. 


‘조성진이 국가의 영광을 위해 피아노치지 않길 바란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서 쿡 박혔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02048565&code=9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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