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1243.html



김훈이 쓰면 '추석 에세이'도 이렇게 다르다. 뭐 꼭 이 글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엔 기자들의 의무감과 클리쉐가 만들어내는 한가위의 풍성함이나 가족애에 대한 기대따위는 없다. 서울이 고향인 김훈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향수 대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으로 생각의 물꼬를 튼다. 임금이 도망가자 격분하여 경복궁을 불태웠던 백성들, 그리고 돌아와서 전소된 성터를 끼고 앉아 그냥 살았던 당시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던 김훈은 어린 시절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자신의 동네를 회상한다. 박완서의 <그남자네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였고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고단했던 고향의 모습이다. 뼛속까지 리얼리스트인 그는 "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읽을 때마다 내 고향의 저 더러운 하천을 생각한다."라고 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눈은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로까지 이어져 머문다.


한가위라고 갑자기 고향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냉랭하던 가족관계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게 아니듯이. 이래저래 난 명절이 싫다. 일년에 큰 명절이 두 번 있고 내 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50세니 평생 백 번 가까이 명절을 싫어하면서 살아왔구나. 올 명절도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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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주식은 심심하다. 빵뿐 아니라 쌀밥, 감자, 옥수수가 그렇다. 매일,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심함이란 적당히 간을 하면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건 맛의 부재에 대한 서술이라기보다 맛의 풍부함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그건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심심해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심심해야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심심함은 인생의 맛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짜고 맵고 시고 달고 쓰기만 하다. 심심한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지난해 누적된 피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또 바빠질 한 해를 헤쳐 나가려면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자고 새해 결심을 한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며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자고 이를 악문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을 위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0720491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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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 읽을 시간이 어딨습니까. 다른 책 읽기도 바쁜걸요. 책깨나 읽는다는, 흔히 지식인입네 하는 이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세계적인 트렌드인 피케티니 지제크니 유명 석학들의 신작 쫓아가기도 바쁜데 한가롭게 문학책 뒤적일 시간이 어딨소 하는 뉘앙스들. 이런 반응에서 나는 묘한 ‘꼰대성’을 느낀다. 알다시피 유식과 삶의 지혜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반대이기도 해서 지식, 정보, 교양이 많을수록 그에 치여 오히려 삶에 대해선 수동적, 방어적, 보수적이 되는 아이러니도 흔히 발생한다.


시와 소설을 읽으며 감동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판검사가 되고 교수나 CEO가 되는 건 무서운 일이다. 그 사람들도 스스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다 '이해'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 너무나 일에 관계된 글자나 영상만 쳐다보고 산다. 이러다 망가지겠다. 



http://www.hani.co.kr/arti/SERIES/572/6669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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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는 없을까? 비슷한 시기인 2001년 10월3일에 방영된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은, 새 시즌이 시작되는 날 정규 에피소드 대신 급하게 제작해서 만든 외전 격 에피소드인 ‘이삭과 이슈마엘’을 방영했다. 원래 내용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독립 에피소드였던 ‘이삭과 이슈마엘’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오랜 반목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슬람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이슬람 신도와 이슬람 근본주의자 사이의 간극은, 평범한 기독교 신도와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집단 케이케이케이(KKK) 사이의 간극과 같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고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탈레반이 지목되면서 전미에 이슬람 신도들에 대한 증오가 들불처럼 번지던 시점에, <웨스트윙>은 무분별한 증오를 멈추자는 제법 용감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프닝에 출연자들이 등장해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로하며, 평소와는 달리 배우들의 크레디트 대신 생존자 및 구조자들을 위한 모금 번호를 안내하는 것은 덤이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634565.html



지상파 방송이 예능프로그램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인양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벌써 TV 속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폭력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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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읽는 게 점점 귀찮고 싫어지시죠? 요즘은 페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로 거의 모든 소식들이 실시간으로 오니까요. 그래도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에 대한 심층 보도는 신문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래서 오늘치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의 사설을 모두 찾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어제 발표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이 도대체 무슨 소린지 궁금해서요.



조선일보는 “통진당은 '진보 정당'임을 내세워 왔지만 사실은 북한 노동당의 대남 적화(赤化) 전략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위장(僞裝) 정당일 뿐이다”라며 “그런 세력까지 그대로 두면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이번 통진당 위헌 심판을 통해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라고 합니다. 해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군요. 


중앙일보는 “통진당처럼 국가안보에 위험한 정당에 1년에 27억원의 국고보조금을 계속 주는 게 옳으냐?”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정치권과 사회는 공방을 자제하고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라는 의견을 냈군요. 중앙일보가 웬일이죠? 


동아일보는 “통진당 해산 심판 맡은 헌재의 역사적 책무 무겁다”라고 헌재에게 공을 넘기는 척 하면서도 결국 “이석기 의원의 RO(혁명 조직)는 일당(一黨) 일인(一人) 독재국가인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여기에 가담해 우리나라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짰다. 이 정도면 통진당을 헌법의 테두리 안에 놓아둘지, 축출할지를 심판해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 줍니다. 아울러 “통진당이 2011년 12월 창당 이후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정당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챙긴 돈이 100억여 원이다”라는 주장도 합니다. 맞는 얘기인지 아니지를 떠나 굳이 왜 이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겨레는 “정당 및 정치세력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며, 정당 존립 여부는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표로 결정한다”라는 당연한 기분 입장 위에서 논지를 펼칩니다. 겨우 종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정당해산 심판 청구의 주요 근거로 삼는 건 한심한 일이라고 일갈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찌질하죠.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보당 해산에는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자가당착이다”라고 꼬집습니다. 더불어 정부의 이번 조처가 “대선 기간 이정희 진보당 후보의 날선 공격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라고 걱정합니다. 동감입니다. 뭐, 그분들은 아니라고 펄쩍 뛰시겠지만. 


경향신문은 “정권이 자의적으로 특정 정당을 해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활동의 자유를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행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며 철회돼야 한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한 주장도 근거가 매우 부실하며 청구 사유도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납득이 가지 않는 것투성이라고 견해를 밝힙니다. 그러니 심판 청구를 기정사실화한 뒤 이를 전제로 청구 사유를 짜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당연하죠. 그리고 경향신문 역시 한게례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두고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라고 하며 그 이중잣대를 지적합니다. 



이석기, 통진당, 조중동...참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골치가 아픈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 나라의 정당이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는 걸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예전에 독일에서도  그런 적이 있다지만, 도대체 그게 언젯적 일입니까. 통진당이 이뻐서가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돈과 밥과 일자리에 관계된 거니까 이 모든 과정을 좀 더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자는 것이지요.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갔습니다. 과연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정부의 권력 남용과 헌법 무시 행위를 제어해야 한다’는 쪽일까요, 아니면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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