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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9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를 향한 엄중한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제목은

우리를 향한 엄중한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네이버에 이 영화의 제목을 치면 엉뚱하게도 ‘19이 뜨며 주민번호를 입력하라고 나옵니다. 아마 제목에서 풍기는 성인스러운느낌 때문인가 봅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최초의 토키 영화 [재즈 싱어]에서 여가수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고 무대 사회자가 지금까지 본 건 아무 것도 아니고 다음 무대가 더 죽이니 기대하시라라는 뜻으로 한 말이랍니다.

 

이 작품은 [히로시마 내사랑]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만든 알랭 레네 감독의 신작입니다. 이 분은 무려 아흔 살이 넘었다는데 아직도 이렇게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참 대단한 노익장이죠?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씨입니까? 앙뜨완 감독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의 유언대로 귀하를 * *일 저녁 고인의 저택으로 초대하는 바입니다…”라는 똑같은 내용의 부고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흥미롭게 시작합니다.

 

앙뜨완의 유언대로 배우들은 산꼭대기에 있는 저택으로 찾아오죠. 이 장면은 예전 헐리우드의 고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나 [바람에 쓰여진 편지]처럼 아주 고풍스럽고도 우아한 느낌으로 표현됩니다. 여기 모인 배우들은 모두 과거에 앙뜨완의 영화나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는 주연급들입니다. 며칠 전 사냥총으로 자살해 이미 화장까지 마쳤다는 감독 겸 극작가 앙뜨완은 죽기 전 오늘 모일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미리 찍어놨습니다. 최근 한 극단으로부터 자신의 옛날 작품 '에우리디스' 리허설 영상을 받았는데 과연 이 극단에게 공연을 허락해도 되는지 당신들이 한 번 보고 판단해달라는 거죠.

 

리허설 영상에서는 아주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의 무대를 배경으로 젊은 배우들이 '에우리디스'를 연기합니다. 그런데 불이 꺼진 거실에서 이 영상을 보던 배우들은 어느 순간부터 젊은 배우들의 대사를 함께 치고 들어갑니다. 자신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죠. 이 장면은 참으로 멋집니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입술을 달싹거리던 배우들은 어느새 필름 속의 주인공으로 변하고 자연스럽게 같은 시대에 공연을 했던 배우들과 짝을 이뤄 연극 속의 연인이 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영화의 신비로움은 여기까지입니다. 전 영화를 보기 전 이동진 기자의 [언제나 영화처럼]에서 읽은 리뷰 때문에(너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걸작입니다) 많은 기대를 하고 갔었지만, 이 장면 이후 반복되는 영상과 연극의 교차편집, 나아가 연극과 영화, 인생에 대한 본질적 외연 확대 등이 너무 뻔해서 그만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만듦새가 허술하다거나 연기의 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계속 반복되는 형식 실험이 좀 지겹다고나 할까요?

 

 

상영관도 별로 없고 해서 피곤을 무릅쓰고 밤 930분 영화를 억지로 보고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와 TV를 켰더니 박근혜 후보의 대선후보 TV 단독토론이 방송되고 있더군요. 국민면접관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아니, 화 안 나세요? 평소에 화를 어떻게 참으세요?”라는 아부성 질문을 던지지 제가 그 동안 참 별별 소릴 다 듣고 살았는데자꾸 듣다 보니까 내공이 쌓이더라구요그때마다 책을 읽었습니다. 명심보감, 정관정요뭐 이런 거근데 나중에 그게 다 제 게 되더라구요같은 차마 맨정신으론 하기 힘든 자화자찬을 듣고 있자니 그만 TV를 벽에서 떼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만약에, 절대 그러면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박후보가 12 19일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다면, 우린 그때부터 참으로 기가 막힌 말과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을 끊임없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굳이 그날 밤 이 영화를 찾아본 게 저 자신에게 보내는 무의식의 경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후보 'TV단독토론'이란 말이 웃긴다고? 아이고, 아직 멀었군.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거야!”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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