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거기 수련 한포기가 살고 있습니다. 
나는 수련에게 왜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흙이야말로 존재의 바탕이요 수련의 현실이요 운명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왜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느냐고 묻습니다. 
진흙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현실 아닐까요.
아비규환의 현실, 고통과 절규와 슬픔과 궁핍과 몸부림의 현실. 

그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찍으려면 몸에 흙이 묻습니다. 집을 고쳐 지으려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지난 사년간 온몸에 흑을 묻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 시들을 썼습니다. 

구도의 길과 세속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을 통해 가고자 하는 길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도종환


오늘 점심시간에 서점에서 집어든 도종환의 새 시집 [사월 바다]에 실린 '시인의 말' 전문이다. 도종환은 그 옛날 [접시꽃 당신]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낸 시인이기도 하지만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 현재 재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었던 그가 왜 뒤늦게 국회의원이 되어 시정잡배들과 어울릴까. 왜 스스로 문체부장관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가며 답답한 현안들을 붙들고 시장바닥보다 지저분한 곳에서 나딩구는 걸까.
 
브레히트는 나치 이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했지만 도종환은 이미 브레히트의 절망도 아도르노의 엄살도 아랑곳하지 않을 결심이 선 모양이다. 그래서 기꺼이 아이들이 수장된 사월의 바다로 들어가고 중상모략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진흙탕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세상과 역린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이런 서정시들을 손바닥에 쓴다. 

나는 그런 그가 든든하다. 이런 강철 같은 정신력의 서정시인이 우리 옆에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사무실에 들어와 급하게 휘리릭 들춰본 시집 중 '해장국'이라는 시가 눈에 띈다. 우리 시대의 서정시는 이런 것이라는 듯, 시에서 김이 난다. 따뜻하다 못해 이내 뜨거워진다. 일단 그 시를 여기에 남기며 짧은 메모를 접는다. 



해장국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가 여기 있다
밤새도록 벌겋게 달아오르던 목청은 쉬고
이기지 못하는 것들을 안고 용쓰던 시간도 가고
분노를 대신 감당하느라 지쳐 쓰러진 살들을
다독이고 쓰다듬어줄 손길은 멀어진 지 오래
어서 오라는 말 안녕히 가라는 말
이런 말밖에 하지 않는
주방장이면서 주인인 그 남자가 힐끗 내다보고는
큰 손으로 나무 식탁에 옮겨다놓은
콩나물해장국 뚝배기에 찬 손을 대고 있으면
콧잔틍이 시큰해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랴
떨어진 잎들이 정처를 찾지 못해 몰려다니는
창밖은 가을도 다 자나가는데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는 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 
매 맞은 듯 얼얼한 몸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한숟갈의 떨림에 가만히 눈을 감는 
늦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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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은 후배인 혜원을 좋아한다. 그런데 혜원은 동욱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과 사귀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늘도 동욱이 조르고 졸라서 겨우 만든 둘만의 술자리이지만 얘기는 겉돌기만 한다. 테이블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새로 옮긴 혜원의 직장 얘기를 하다가 혜원이 육 개월 전부터 동욱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일하는 임창수 대리와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옆자리 직장 동료와 몰래 사귀고 있다는 사실에 격분한 동욱은 일방적으로 혜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동욱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이 술집의 주인이자 선배 영식은 혼자 남은 동욱을 위로하고자 중국에서 가져 왔다는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그런데 동욱이 이 술을 한 잔 마시고 고개를 든 순간 영식은 사라지고 눈앞에 사라졌던 혜원이 다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시점은 둘이 새로 옮긴 직장 얘기를 하던 불과 몇 분 전 상황이다. 동욱은 이미 알고 있지만 혜원은 자신이 임창수 대리와 사귄다고 고백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다시 얘기를 이어가다가 임창수 대리와 그의 전 애인 은나가 사귄 기간 얘기를 하며 싸우는 두 사람. 이번엔 동욱이 나가고 술집 주인 영식이 중국술을 마시게 된다.그리고 또 타임슬립.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비밀은 술이다. 이 술은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의 약이었던 것이다.

흔히 단편영화라고 하면 웬지 예술적이라 뭐가 뭔지 모르는 알쏭달쏭한 내용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흥행과는 담을 쌓은 듯 어렵게만 만든 단편영화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일반론을 가볍게 뒤집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정말 좋았건 이유는 타입 슬립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능력으로 지구를 구한다거나 복권을 산다거나 하는 거창한 게 아니라 동생이 훔쳐먹은 푸딩을 다시 차지한다거나 너무나 갑작스러운 첫사랑의 고백을 되돌린다는 사소함에 쓰이는 게 더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도 그렇다. 타임 슬립을 일으키는 중국술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하이컨셉이지만 여기서는 각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도구 이상으로 쓰이지 않는다. 대신에 연애나 질투 같은 사소한(?) 감정들이 개연성 있는 플롯 속에서 대활약을 한다. 장소 한 번 바꾸지 않은 술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임창수 대리는 얼굴 한 번 나오는 일 없는데도 신기하게도 영화 내내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건 감독의 뛰아난 각본 감각과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30분남짓 되는 이 단편은 나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백영욱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얼마 전 이 작품이 외국의 어떤 영화제에서 뒤늦게 상을 또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림으로써 알게 되었다. 우리 회사의 김건익 실장님에게 영화 [한 잔] 얘기를 했더니 자신은 시사회 때 후배인 백영욱 감독은 물론 그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고 자랑을 하셨다. 맨 마지막에 혜원이 중국술을 한 잔 마시고 처음의 설전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은 아주 어릴 적 읽었던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라는 동화가 생각나서 더욱 반가웠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이런 멋진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안 그래도 어렴풋이 술 약속을 해놓긴 했는데 11월이 가기 전에 백영욱 감독님하고 만나 이 영화 얘기 하면서 소주 '한 잔'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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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떤 평론가가 작가 이병주를 평하면서 그가 일제시대와 815해방, 625사변, 419혁명, 516쿠데타 등등 파란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라 그만큼 할 이야기도 많은 작가라고 쓴 걸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에게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은 일단 축복일 것이나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몸에 저장하기 위해 그가 살아내야 했던 힘겹고 유난한 세월 또한 그에겐 축복이었을까. 


김이정의 소설 [유령의 시간]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할 정도로 똑똑하던 이섭은 독립운동을 하던 실천적 지식인인 숙부의 영향으로 인해 사회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한때 '이마가 아름다운 여인' 진을 만나 아이 셋을 둔 행복한 가장이었으나 자신이 수배되어 도망 다니는 동안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남과 북으로 갈린 생이별을 하게 된다. 실의에 젖어 살던 이섭에게 미자라는 여자가 왔다. 그녀 또한 전쟁이 터지던 날 폭발사고로 남편을 잃은 불운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네 아이를 더 낳게 된다. 작가의 분신인 ‘지형’은 그들의 첫째 딸인 것이다.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기도 하고 서해안에 와서 새우를 키우기도 하던 이섭. 사람들은 신수가 번듯하고 배운티도 많이 나는 이섭이 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못하고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사업을 하며 전국을 떠돌아야 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이섭은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쓰게 웃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한 번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취직을 하기도 어디 한 군데 정착하며 살기도 힘든 것은 물론 오촌 친척의 해외 지사 발령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연좌제’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제주도 말 목장도 해안의 새우 양식장도 결국 예전 장인의 도움 없이는 차릴 수 없었던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던 이섭. 그는 새로운 가족들과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예전 아내와 아이들을 잊지 못한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자칫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내용일 수도 있는 이야기는 김이정의 물 흐르듯 유려한 필력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의 글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건너 온 이모 윤과 그녀의 딸 미희를 지형이 처음 만날 때의 느낌을 간단하게 묘사한 이런 글을 보라. 

“서울 사람들은 전부 얼굴이 하얗디야. 우리 언니가 서울 갔다 왔는디 거기 사람들은 수돗물을 먹어서 얼굴이 다 그렇게 하얀 거랴.” 
  지난봄, 숙자가 자랑처럼 한 말이었다. 숙자의 언니가 방직 공장에 취직하러 서울에 다녀 온 직후였다. 
  일본은 서울보다 수돗물이 더 잘 나오는지, 그들은 유난히 희었다. 몸 전체에 석회라도 발라 놓은 것 같았다. 미희는 밑단에 흰 수술이 달린 큰 꽃무늬 반팔 상의와 곧은 다리가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흰 에나멜 구두가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작가는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어느 날 아버지가 자기 형제들을 불러 앉혀놓고 이제부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리며 ‘유령의 시간’이라는 제목까지 그때 정해 두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김이정은 아버지가 시작한 글을 40년 만에 완성하게 된 셈이고 어차피 그 일은 오빠 대신 소설가가 된 자신의 몫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소설의 초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였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도서관에 나가 글을 쓰는 것 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 소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이 글이 그에게 구명보트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꼭 해야 할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게 김이정의 개인사처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의 질곡과 만나는 지점에 있을 경우에는 많은 독자들에게 더욱 묵직한 울림이 되는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 농단 등으로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시기에 허무를 견디는 심정으로 출퇴근 시간마다 전철 안에서 악착 같이 이 책을 읽었다. 책 뒷표지에 실린 소설가 김미월의 글 일부가 내 소감과 거의 똑같기에 이 글의 결론을 대신해 여기에 옮겨둔다.

모든 훌륭한 소설이 그러하듯이 [유령의 시간]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마침내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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