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광고는 참 만들기 힘듭니다. 이것저것 제약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면 너무나 쉬워 보입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방향지시등 캠페인 : 깜빡하지 말고 깜빡깜빡하세요] 편을 보았습니다. 역시 이해하기 쉽고 내용이 참 단순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칭찬을 하기 보다는 “에이, 기왕이면 좀 더 잘 찍지....연기도 쫌 더 잘 하면 좋잖아...”하고 어느새 트집을 잡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한 편 내는 게 얼마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남이 해놓은 건 다 쉬워 보입니다. 세상은 늘 ‘컬럼부스의 달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보니 방향지시를 ‘윙크’로 치환한 아이디어, 참 훌륭하군요. ‘깜빡하지 말고 깜빡깜빡하세요“라는 메인 카피도 참 좋구요. 잠깐 반성해보는 아침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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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마침 오늘은 존 F 케네디가 서거한 날이네요. [11/22/63]은 지난 봄인가 사서 읽은 소설인데 케네디가 암살당한 날을 제목으로 삼았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건 세계적인 스토리텔러 스티븐 킹의 최신작입니다. 


우연히 과거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 주인공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만약 케네디가 죽지 않았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발한 설정이지요. 1963년으로 간 주인공은 암살범 오스왈드에게 접근해 케네디의 암살을 막으려 합니다. 참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네디 서거 50주년을 맞아 추모열기가 뜨겁고 암살 배후에 대한 추리가 새삼 활발해지고 있다고 하죠? 아마 이 소설도 덩달아 다시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소설 뒤쪽에 후기를 보면 이 소설을 위해 스티븐 킹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섭렵했는지, 그리고 당시 상황들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료들을 얻고 연구했는지 알게 됩니다. 흔히 소설을 쓴다고 하면 소설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정말 작업하는 방식부터 다르죠?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1972년도에 처음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뚝심있게 아이디어를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대단한 작가 스티븐 킹이 쓴 이 소설, 한 마디로 재밌습니다. 상,하권으로 길지만 단숨에 읽힙니다. ‘황금가지’에서 나와서 번역 문장도 깔끔하니 좋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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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가 카피라이팅 실습 강의를 하는 한림대 학생들과 함께 하이쿠를 지어본 적이 있다고 했었죠? 하이쿠는 일본에서 생겨난 문학의 한 형태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표현이 제일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시의 형식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특히 유럽에는 하이쿠 시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도 매년 영어로 쓰여진 하이쿠 시집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즈는 어느 해 일 년 동안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교통과 계절을 주제로 한 하이쿠 공모전을 실시해 날마다 신문 한구석에 싣기도 했다고 하고요.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아마 하이쿠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시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시커멓게 타버린 숯을 보고도 흰 눈이 얹힌 푸른 나뭇가지였던 시절을 상상하는 시인의 눈은 위대합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이싸 



시도 굉장합니다. 하이쿠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방랑시인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건강도 좋지 않았을 테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들이었겠죠. 여름에 모기한테 한 방 물리고 “아, 올해도 안 죽고 또 한 계절을 맞는구나” 라고 기뻐하는 것에서 소탈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시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하이쿠는 이것입니다. 



‘난 혼자요’라고 말하자 

여인숙 주인이 숙박부에 그렇게 적었다 

이 추운 겨울밤


이싸




정말 쓸쓸하지요? 몇 글자 안 되는데도 순식간에 북풍한설처럼 쓸쓸한 정조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멋진 시입니다. 


말이 길어졌군요. 우리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하이쿠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되도록 짧게 세 줄 안에 내용을 담고 자연이나 계절, 시간적 요소를 집어넣으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들이 쓴  작품들을 몇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밖에 풀벌레 운다 

이 새벽, 

나만 잠들지 못하는 게 아니로구나 


조유X




흘러가는 시간아 

저 물처럼 

좀 얼어봐라 


장유X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잤더니 

모기가 발만 무네 

양말도 신고 자라고 


박진X




과제가 너무 많다 

이불 뒤집어쓰고 무한도전 보면서 

귤이나 까먹고 싶다 


방슬X




집에서 보내준 김치가 

딱 맛있게 익었다  

엄마 보고싶다 


방슬X




눈이 오는 날엔 

경춘선 끝칸으로 간다 

혹시라도 너가 있을까  


안기X




전우여 기억하오? 

이 눈을 쓰레기라 부르며 

넉가래 행진을 하던 날들을   


안기X





가을 정취에 이끌려 

홀린 듯이 한참을 떠돌았다 

아이고 옷을 거꾸로 입고 다녔네   


이은X





잔여 무료통화 350분 

잔여 무료문자 220건 

안 생겨요  


강지X





작년 겨울 내내 입었던 코트에 

무심코 손을 넣었다가 

네가 준 감기약을 발견했다   


강지X





잉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샤프심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쓸 말이 없다   


김선X





매일 밤마다 

심장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김선X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고민하다 볶음밥을 시켰다 

짬짜면 시킬 걸    


손아X




다들 잘 하지요? 미친 감성들이 춤을 춥니다. 

수업시간에 저도 몇 편을 써보았습니다. 




저녁 내내 화난 척을 했는데 

사실은 

술을 마시고 싶어서였다 


편성X



신호등이 바뀌어도 

급할 것이 없다 

갈 곳이 없기에


편성X



TV를 끄고 

책을 펼치니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구나


편성X




신문을 펼치니 

마음이 어지럽구나 

예전엔 밑씻개로 썼는데 


편성X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또 쳐다본다 

눈이 오는 날 아침에 


편성X




길고양이가 

자동차 밑으로 들어간다 

서리 내린 이 아침에 


편성X




거꾸로 타는 

보일러도 있는데 

인생은 왜 


편성X




형광등이 깜빡인다 

요즘 나도 그렇다 

나이가 들었다


편성X





저도 처음 써보는 거라 마음대로 잘 안 되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하이쿠가 제일 마음에 드시나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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