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혜자 2017. 8. 16. 18:05



< 커피 한 잔>

오래 전 이병주의 [행복어사전]을 읽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인공들이 점심 먹고 회사에 들어가기 전 다방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지금처럼 스타벅스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밀로 옛날식' 70년대 다방이다.

한숨 돌리는 커피 한 잔.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게 어른들의 세계인 것만 같아서 참 부러웠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한숨 돌리러 커피숍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얘기를 하러, 누군가를 만나러, 아니면 테이크 아웃 커피를 사러 가긴 해도(아니면 혼자 아이데이션을 하러 가거나) 그냥 한숨 돌리러 커피숍에 가는 일은 좀처럼 없는 것이다.

이젠 적어도 그 정도의 사치는 좀 누리면서 살아도 되는 게 아닐까.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픈 아내가 몸 상태를 회복하면 동네 커피숍에 같이 가서 싫컷 노닥거려야겠다. 다행히 우리 동네엔 '성북동 콩집'이라는 아주 맛있는 커피를 파는 집이 하나 있으니.

'혜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  (0) 2018.03.24
남편이라는 직업  (2) 2017.09.02
1분  (0) 2017.05.13
휴일 오전의 여유  (0) 2017.05.05
초췌 버전  (1) 2017.03.13
Posted by 망망디
,



광주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라고 불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항쟁’이라는 명예를 회복했는데 아직도 '그건 불순세력의 폭동이었다'고 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518기념일에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바로 얼마 전까지 논란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그만큼 상흔이 짙은 역사적 사건이었고, 그 강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참살극이었으며, 37년이 지난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나는 518계엄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박정희가 믿었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서울의 봄’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듣다가 몇 달 후 갑자기 MBC뉴스데스크에서 이득렬 앵커가 “지금 이 시각, 광화문에선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입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를 들을 때도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 해에 존 레논이 암살당했고, 그래서 그의 유작 앨범 [Starting Over>를 라디오에서 매일 들었다든지 하는 건 잘 기억나도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라 나처럼 어린 놈은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518의 참상을 사진이나 필름으로 목격하고 뒤늦게 치를 떨어야 했다.

대학 1학년 5월 축제기간에 학생회관에서 틀어준 광주 관련 기록물들은 대부분 독일 방송국에서 온 것들이라 해서 약간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 의문이 풀린 셈이다. 이 영화는 518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어떻게 화자를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한 점이 가장 큰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인 기자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광주까지 태워다주면 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얼떨결에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 택시기사 만섭. 평범한 속물이었던 그가 뜻하지 않게 독일 기자 피터와 동행하면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은 송강호라는 괴물 연기자의 대사와 눈빛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아니,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마음과 목소리였기에 관객들을 그대로 1980년 광주 현장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뒤덮었던 [군함도]의 흥행을 [택시운전사]가 꺾었다고 한다. 만약 거창한 역사의식이나 직업의식에 불타는 주인공이 열변을 토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 송강호.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그러나 송강호의 위대함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연기만 잘 하는 기계'들은 많다. 케빈 코스트너처럼 자유롭고 진보적인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가 알고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송강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셀럽이다. 비록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민주 투사요’ 하는 오버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묵묵히 신념을 지켜내면서 예술적인 성과까지 이루어 내는 것. 이건 정말 어렵고 소중한 능력이다. 그래서 난 송강호라는 배우를 이 시대의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hhan21&logNo=221069131204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나 방송인 노홍철은 왜 책방을 냈을까. 아내나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서 가끔 서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그들은 정말 책의 미래를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책을, 또는 책방을 이용해서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높이려는 것일까(물론 그러면서 책도 잘 팔리면 더 좋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좀 더 잘 살거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책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읽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먹고 사는 일에, 공부니 취직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 그리고도 남는 시간이 생기면 TV에, 인터넷에, 모바일에 또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긴다. 일이나 공부에 치여, 구직이나 스펙쌓기에 지쳐 널부러져 있다가 잠깐 정신이 나면 리모콘을 들어 '효리네 민박' 같은 프로그램을 틀어 건성으로 본다. 건성으로 보다가 효리가 요가를 하는 걸 보고 나도 요가나 배워볼까, 생각한다. 이상순이 다기에 뜨거운 차를 붓는 것을 보고는 나도 차를 시작해 볼까, 생각한다. 실제로 요가학원이 늘어나고 다기나 보이차가 잘 팔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 책이 끼어들 틈은 없다. 가끔 드라마나 <무한도전>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책이 한 권 노출되면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투기 현장의 떳다방보다도 못한 '반짝 상품'일 뿐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나도 회사 일이 바빠서 지지난 주에 산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출퇴근 시간과 잠자기 직전에 조금씩 읽었는데도 아직 2권 중간이다. 물론 출퇴근 시간에도 기습적으로 울리는 업무전화나 카톡 때문에 온전히 소설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남들보다 조금은 더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렇게 책을 읽기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한기호 소장의 칼럼 ' 대한민국에는 서점이 없다. 그러니 출판 경기가 최악일 수밖에 없다' 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들도 책을 팔아 생활할 수 없으니까 강연으로 돈을 번다. 사람들은 '세바시' 같은 강연엔 열광하며 박수를 치지만 그 강사가 얘기하는 책을 사서 읽진 않는다. 그러니 서점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리고 어쩌다가 서점에 가도 서점에서 제안하는 매대 위의 책을 사서 읽을 수밖에 없다. 


책의 유통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책도 서점도 상품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말에도 동의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 본질적인 문제일까. 비꿔야 하는 것은 쓸 데 없이 분주하고 걱정만 하며 사는 우리의 삶이 아닐까. 정말 내가 옛날에 다니던 구파발 전철역 앞의 '진양서점'이나 맥 라이언이 책방 주인으로 나오던 <유브 갓 메일> 같은 정겹고 소소한 일상 속의 서점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이렇게 -까, 로 끝나는 의문문만 잔뜩 늘어놓고 끝내는 글을 쓰는 건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내가 뭐라고 뽀족한 수를 낼 수가 있을까. 아, 그런데 참. 그들은 왜 책방을 냈을까?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