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투브에서 역대 공익광고 뽑아 놓은 걸 봤는데요, 맨 처음 나온 '기쁨도 고통도 우리의 몫입니다'라는 IMF 극복 광고와 맨 마지막에 이세돌이 나와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라 말하는 경쟁위주사회문화 광고가 제가 만든 것이더군요. 내가 이렇게 공익적인 인간이었나,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보는 월요일입니다. 하하. 



https://www.youtube.com/watch?v=ghKhZZ3CM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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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인줄 알고 갔는데 이중 삼중으로 설계된 교묘한 심리극에 홀딱 속았다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이자벨 위페르는 알고 보니 칼자루를 쥔 여자였고 가해자는 복수를 당하는 게 아니라 어이 없게도 일종의 '사고사'로 죽는다. 


예상했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을 관객들이 서서히 깨달을 때쯤 맨 마지막 묘지 장면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여자들은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의 엔딩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당당하고 얄밉다.  폴 버호벤의 연출은  그가 평생을 천착해 왔던 폭력과 욕망 사이에 유머까지 끼워넣는 여유를 부리면서도 전체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카메라 워크 역시 '폴 버호벤'이란 감탄을 하게 만든다. 


음악은 예전 [원초적 본능]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맛이 있고 설정이나 시점이 다소 애매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폴 버호벤스러운 점으로 느껴진다. 이 영화는 원래 미국에서 만들려고 했으나 니콜 키드만, 줄리안 무어, 샤론 스톤 등이 모두 출연을 고사하는 바람에 유럽으로 건너와 이자벨 위페르와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굳이 분류해 보자면 그의 흥행작들인 [로보캅]이나 [토탈 리콜], [스타쉽 투루퍼스]보다는 버호벤 초기작인 [The 4th Man]과 바로 전작인 [블랙북] 사이에 있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씨네21 평론가들 중엔 미카엘 하네케와 비교하면 뭔가 아쉬운 점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당치 않은 얘기다. 하네케 감독의 도저한 비관주의에 비하면 버호벤은 훨씬 낙관주의자에 가까우니까.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 최악의 영화들을 뽑는 ‘골든 래즈버리’ 식장에 가서 최악의 감독상도 받고 주최자들과 낄낄대고 온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 모두 보통 사람의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폴버호벤짱 #이자벨위페르짱짱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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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부산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벡스코역 근처에 있는 '면옥향천'에 가서 메밀소바를 먹는 것이었다. 이 메밀국수집의 주인인 요리사 김정영 씨는 아내가 취미로 마라톤을 하던 20년 전쯤 같은 클럽 멤버로 만났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아내는 그 후 마라톤을 그만 두었지만 정영 씨는 운동을 계속해 지금은 철인3종경기에 나갈 정도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저녁 여섯 시쯤 가게 앞에 도착하자 정영 씨가 나와 인사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랜만에 보는 아내보다 처음 보는 나를 더 반가워 하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형님, 조금 있다가 그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라고 말하는 정영 씨. 한창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26석의 좌석은 가족과 친구, 연인 등 각양각색의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생각보다 잠깐 기다린 후 우리도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나니 정영 씨가 와서 인사를 했다. 아내인 윤혜자야 예전 마라톤 클럽 멤버였으니까 잘 알지만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음주일기' 얘기가 나왔다. 예전에 내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50회 넘게 연재하던 음주일기라는 한심한 글을 우연히 읽고 이내 팬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나도 잊고 있던 음주일기인데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정영 씨는 그렇게 나와 윤혜자를 따로따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사귄다고 하더니 끝내 결혼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 참으로 알 도리가 없으니 그저 늘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며 깔깔깔 웃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채 조그만 접시에 담겨 나온 메밀소바를 먼저 맛보라고 했다. 쫄깃하고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 장국에 적셔 먹는 '모리소바'가 나왔고 일인 분을 두 그릇에 나누어 준 '순메밀 막국수'가 나왔다. 일 인분을 두 그릇에 나눠준 이유는 여기서 그 정도만 먹고 이 차 술집으로 가기 위해서란다.

모리소바의 장국은 짜지도 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밍밍한 것도 아니었다. 메밀면은 조금 전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방금 풀린 것 같은 탄력을 자랑하며 입안으로 들어와 한 번 더 꿈틀댄 뒤 치아 사이에서 잘게 끊어진 채 목 안으로 넘어갔다. 나의 짧은 식도락 경험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안정된' 맛이었다.

막국수의 국물이나 면도 정갈함을 잃지 않으면서 독특한 맛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 요리들과 함께 돈까스와 카레 고로케가 조금씩 딸려 나왔다. 보통은 막국수와 함께 수육을 내는데 이 집은 돈까스로 바꾸었고 그 결정은 '신의 한 수'로 불릴 정도로 손님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돈까스는 고기 육질이 부드러워서 어른은 물론 아이들이 먹기에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면옥향천이라는 상호 위에는 '김정영분식'이라는 마더 브랜드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이곳에서 직접 면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 이 층에 있는 제면소에 가서 메밀면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구경을 했다. 이 식당은 전국에 있는 메밀밭 몇 군데와 계약을 맺어 지역별 품종별로 메밀을 받고 그 식재료들을 잘 조합해서 막국수와 소바를 만든다고 한다. 대단한 포부와 정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정영 씨가 우리를 '해운대 하얀 오징어집'으로 데려갔다. 이 집은 오징어를 잘게 채썰듯 내놓는 곳이었다. 썩 마음에 드는 안주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대선' 소주를 시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영 씨가 15년 전 사이판에 있는 식당에서 일 할 때 아내가 여행 가서 만나고 처음이라니 참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그동안 정영 씨는 우동에 전념하다가 어느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메밀면으로 방향을 돌렸고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단골손님들에게 그 맛과 품질을 인정 받기에 이른 것이었다.

매출이 안정되고 매일 만석을 기록한 이후로 툭하면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 같이 사업을 하자고 권하지만 김정영 씨는 결코 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는 '왜 이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같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만 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당신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일단은 일이 재미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 자체가 재미 있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멀리 본다고 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함께 만들어 가는 좋은 미래,가 자신의 목적이라 말한다. 하나 같이 평범한 음식점 주인을 넘어서는 멘트들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 연장선이다. 그 동안 TV에 자주 출연을 했지만 가게 안에는 그런 홍보 액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만 걸어 놓았다고 하며 웃었다. 일요일은 칼 같이 쉬는 것도 종업원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다. 26석의 가게에 11명의 종업원이 일하는데 인원을 줄이지 않는 것도 종업원들의 좋은 삶이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맛있는 횟집에는 별다른 '스끼다시'가 필요 없듯이 좋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생활이 필수라는 것이다. 꾸준한 운동을 통한 체력 관리, 그리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는 떳떳함. 얘기를 나눌수록 식당 주인이 아니라 철학자와 술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책에서 배운 철학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혀 깨달은 생활철학이다.

어떤 분야든 정점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만의 통찰과 철학을 느낄 수 있는데 김정영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조금 특이한 점도 있다. 그의 마라톤 풀코스 기록은 2시간38분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음식점 주인이, 무슨 철학자가 이렇게 지구력이 좋단 말인가.

마지막 술자리 '붉은 수염'에서 술을 마시던 그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계산을 했으니 술을 더 드시다가 가시라'고 말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일요일인 내일 새벽 자전거 200Km를 달리려면 지금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철인 3종경기에 나가는 메밀국수집 주인을 목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소주를 한 잔 더 마셔 보았다. 새벽 한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면옥향천 #김정영분식 #메밀소바 #부산맛집 #면식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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