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넘게 서가 앞에서 서성이던 앳띤 고교생은 결국 ‘엠마누엘부인 시리즈 특집’ 이란 기사가 실린 [월간 스크린]을 내밀며 ‘누나, 이것 좀 싸주세요’ 라고 은밀하게 말했다.
 
막 사춘기에 들어섰던 나는 소문만 무성하던 그 영화 '엠마누엘 부인'의 스틸 컷 몇 장이 실린 잡지 표지에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던 것이다. 서점 주인 누나는 알았다는 듯 씽끗 웃으며 코팅 포장지와 스카치테이프로 정성껏 책을 싸주었다. 그게 재희 누나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
 

1982년 겨울, 그때 나는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시커먼 동네 구파발엔 서점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전철역 앞의 [진양서점]이었다. 기자촌 입구 쪽에 있는 헌책방 하나를 제외하면 도대체 책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언제나 용돈이 풍족하지 못했던 나는 그 후로도 가끔 서점에 들러 한 시간이 넘도록 이 책 저 책을 집적거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서너 번을 들러 야 겨우 소설책 한 권을 사는 게 고작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 누나가 한숨을 쉬며 차 한 잔을 타더니 난로가에 앉으라고 했다. 이젠 올 때마다 책을 안 사도 괜찮으니 언제든지 놀러 오라는 얘기였다.
 

누나의 이름은 재희였다. 서재희. 서른이 넘은 노처녀였으며 신춘문예 6수생. 그닥 예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선량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매일 서점에 가서 놀았다. 책 얘기를 많이 했고 광주사태, 김대중, 계훈제, 전두환, 장영자 사건 등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언니, 용이 아제가 죽었어. 흑흑…”
 
당시에 박경리의 <토지>를 열심히 읽던 동네 누나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며 애석해 하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진양서점엔 나 말고도 단골손님이 많았다. 당연히 우리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고 저녁이면 사랑방처럼 난로가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책 얘길 나누었다.
 
 
이외수의 <들개>, <훈장>, <장수하늘소>, 한수산의 <부초>, <해빙기의 아침>, 윤흥길의 <장마>,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내 마음의 풍차>, 김성동의 <만다라>, <기차길옆 오막살이>, 김홍신의 <난장판>, <인간시장>, 함석헌의 <씨알의 노래>, 황석영의 <객지>, <장길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 김주영의 <객주>, <아들의 겨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김지하의 <오적>, 최인훈의 <광장>, <회색인>, 이병주의 <지리산>, <행복어 사전>…
 
춘천 거지로 유명했던 이외수, 여자보다 더 여성적인 문체를 만들어내던 한수산, 술과 여자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던 이병주, 읽다 보면 정부 발표보다 훨씬 더 많은 광주 희생자의 숫자가 까발려짐으로써 당국의 미움을 샀던 황석영, 김지하와 박경리의 거룩한 관계 등 우리는 서로 앞다투어 읽은 책들과 그 주변에 얽힌 뒷얘기들을 나누었고 또 읽고 싶은 책들에 대해 듣고 말하고 감탄했다. 
 
당시에 한 문학월간지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막 연재를 시작했었는데 경상도 억양이 심한 재희 누나는 이 소설에서 쏟아지듯 펼쳐지는 전라도 사투리들을 그렇게 재밌어 했다.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이 주재소로 끌려가 빨치산인 남편에게서 연락이 오면 신고하란 말을 듣고 ‘고로코럼은 못하지라!’’ 라고 하는 대사를 억지로 흉내 내는 걸 보고 우리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난 염상구의 쫀득쫀득한 전라도 사투리들 - ‘서울말 고것이 워디 붕알 단 남자덜이 헐 말입디여? 밑구녕 째진 것덜이나 헐 말이제. 밥 먹었니이? 잘 잤니이? 고 간사시럽고 방정맞고 촐싹거리는 말이 워디가 좋다고 배우것습디여?’ - 이 단연 좋았다)
 
 
아직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정광태가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래를 부를 때였다. 어둡고 돈은 없었지만 또한 좋은 시절이었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담배를 피웠으며 연애를 했고 또 군대도 갔다. 이제는 그때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 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그리고 책은 거의 인터넷으로 산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초반을 진양서점과 함께 보냈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재희 누나는 잘 있을까.
 
빠알갛게 달아오르던 연탄난로에 모여있던 사람들. 어제는 무슨 책을 읽었으며 이번엔 또 무슨 책을 읽을까 얘기하던 사람들. 이젠 가물가물해져 추억의 책갈피도 되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토토가 어린 시절의 극장을 다시 찾아갔던 것처럼 나도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진양서점. (200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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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섹스를 두려워합니다. 물론 좋아하기는 하죠. 그런데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세상엔 그렇게 많은 성적 농담들이 존재하는 겁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자꾸 섹스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거죠. 자신이 바람둥이임을 자랑하거나(나 어제 걔 먹었다), 그 친구를 부러워하는 동성 친구 얘기가 반복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너 걔 먹었구나? 나쁜 새끼!) – 레드 제플린의 노래도 있습니다. [Dyer Maker] “너 걔 먹었냐?”(Do you make her?)라는 뜻이죠.

 


잘 생기고 번듯한 직장도 있는 뉴욕의 여피족 브랜든은 외모나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하루 종일 포르노를 보고 틈만 나면 자위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섹스중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명색이 섹스중독인데도 정작 여자랑은 섹스를 잘 못합니다. 클럽에 가서 놀 때도 보스가 껄떡이던 세련된 커리어 워먼은 술자리가 끝나고 결국 멋있고 매력적인 브랜든에게 옵니다. 하지만 그런 여자랑은 원나잇 스탠드로 끝내버리고 맙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니 회사든 집이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수많은 변태 포르노를 쌓아놓고 보는 게 일인 거죠. 그것도 즐기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경멸하면서 말이죠.

 

그런 브랜든에게 여동생 씨씨가 찾아옵니다. 처음에 전 씨씨가 브랜든의 옛 애인인줄 알았습니다.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와 레코드를 크게 틀어놓고 샤워를 하는 씨씨를 도둑으로 오해한 브랜든이 야구배트를 들고 욕실로 쳐들어갔을 때 그녀는 태연하게 음모까지 노출하면서 브랜든과 얘기를 나누거든요. 그 이후에도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구요. 그런데 알고 보니 여동생이더군요. 아무튼 씨씨는 빈티지 모자를 쓰고 다니며 뉴욕의 클럽에서 노래를 하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팔에는 자살하려다 실패한 면도칼 자국이 무수한 상 똘아이입니다.  

 

브랜든은 씨씨가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클럽에서 두 남매의 주제가나 다름없는 ‘뉴욕, 뉴욕’을 부른 뒤 그날 처음 만난 자신의 보스와 엉켜 집에 와서 같이 자지를 않나, 집에 있는 노트북을 켜서 브랜든이 평소에 음란채팅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내고 화를 내질 않나. 급기야 브랜든이 자위하는 장면까지 급습해서 훔쳐보고 마구 비웃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도 자기 마음이 약해지면 자고 있는 브랜드의 이불로 파고들어 무섭다고 춥다고 킹킹댑니다. 브랜든은 그런 씨씨가 미워서 냅다 소리를 질러 방에서 쫓아버리죠.

 


브랜든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 ‘설탕을 좋아하는군요’ 드립을 통해 급 친해진 지적인 여성 동료와 섹스를 전제로 한 데이트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데도 성공합니다. 브랜든은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멋있는 남자니까요.

그러나 역시. 섹스든 연애든 정말 잘 해보고 싶은 상대랑은 더 잘 안 되는 게 세상 이치인가 봅니다. 그녀와의 섹스에서 발기에 실패한 브랜든은 수치심에 떨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물론 이럴 때 괜찮다고 하는 그녀의 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간 뒤 곧바로 콜걸을 불러 격렬한 섹스를 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콜걸이 돌아간 뒤 모멸감이 두 배로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인 걸 알텐데 말이죠.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에서 주인공은 세상이 무서워서 계속 섹스 속으로만 도피하다가 결국 섹스 속에 파묻혀 죽어버리고 맙니다. 브랜든도 그런 전철을 밟아야 하는 걸까요? 부끄러운(쉐임!) 자신을 견딜 수 없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브랜든은 또다시 창녀 두 명과 난교 파티를 벌이고 게이 클럽을 찾아가 남색까지 감행합니다. 밤새도록 길거리를 돌아다닙니다. 또다른 클럽에 가서는 모르는 커플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 다음 그야말로 개처럼 얻어맞습니다. 뭘 해도 직성이 풀지 않습니다. 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지칠대로 지친 브랜든은 지하철 안에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 또다시 자살을 시도한 씨씨를 욕실에서 발견하고는 간신히 그녀의 목숨을 구해냅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깨어난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는 수십만 광년 떨어져 있는 별처럼 보입니다. 제대로 된 여자와의 관계는 물론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동생과도 제대로 마음을 주고받지 못하는 브랜든. 결국, 뛰쳐나가 오열합니다.

 

변하고 싶지만 변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생활. 지옥 같은 세상.

 

 

브랜든은 지하철 안에서 또다시 어떤 여자와 눈빛을 교환합니다. 약혼반지까지 끼고 있는 그 여자도 묘한 눈빛으로 브랜든을 끌어들입니다. 눈에 익은 장면이다 했더니 이 씬은 영화 첫 장면이랑 겹치는 부분이군요. 그 옛날 AFKN에서 봤던 앤소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 [콜렉터]의 마지막 장면 같기도 하구요. 이제 두 사람은 또 어딘가로 가서 미친듯이 섹스를 하겠지요. 당연히 그 누구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구요. 어떤 여자하고도 진지한 관계로는 4개월을 넘겨 본 적이 없다는 브랜든이니까요.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이미 비주얼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린 스티브 맥퀸은 이전 작 [헝거]와 [쉐임] 단 두 편으로 어떤 경지에 오른 듯 합니다. 브랜든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앤서링머신 소리를 듣는 첫 장면부터 시내에서 조깅을 하는 기나긴 쇼트까지 영화 곳곳에 그가 잡아놓은 차가우면서도 꽉찬 화면들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과 감성을 압도합니다. 상상의 여지를 한껏 열어놓고 사람의 몸에만 천착하는 척하는 역설적 스토리텔링 기법도 신선하구요. 어쨌든 이 영화에 쏟아진 화려한 찬사와 수상 경력들이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은 두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우량주’라고 생각합니다.

 

 

캐리 멀리건. 미국 영국 드리마 좀 보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예전부터 캐리 멀리건의 팬이었는데 말이야…”라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되는 묘한 매력의 배우죠. 이번 영화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그녀만의 압도적인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소화해 냅니다.

 

마이클 파스벤더가 이 영화의 수훈갑이라는 건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캐릭터를 이만큼 소화해낼 배우가 또 있을까싶게 그의 연기는 대단합니다. PR필름을 보면 파스벤더가 이 영화에 합류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주요 스텝들이 모두 기뻐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믿음이 가는 배우란 뜻이겠지요. 심지어 얼굴도 멋있게 생겼습니다. 저와 혜자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이클 파스벤더는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제러미 아이언스처럼 될 거 같지 않아?”라고 하며 좋아했습니다.

 


일찍이 시인 유하는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왜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고 했을까요? 거기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욕망과 이미지가 끓어넘치는 현대성의 블랙홀이었지만 정작 거기 가 보면 텅 빈 공허만이 있는 거니까요. 마치 ‘바다가 굉장한 건 거기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그런데도 우린 걸핏하면 지금도 압구정동으로, 바다로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슬슬 압구정동에 가도 소용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은데요. 이젠 차라리 이렇게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도 소용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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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동영상으로 자기소개서를 만들려고 마음먹었다면 난 그가 참고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하면서도 극단을 달리는 레퍼런스로 단연 윤성호 감독의 단편 [우익청년 윤성호]를 추천하고 싶다. 반어법으로 가득찬 내용도 참신하거니와 형식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패러디의 금자탑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라. 이렇게 찌질하고도 통렬한 자기 비하는 우디 앨런 이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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