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스가 왕년의 스타 가수 린다 로스태트의 백밴드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일설에는 화끈한 성격의 린다 로스태트가 고마운 마음에 이글스 멤버 전원과 차례로 잠자리를 같이 해줬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확실한 것은 그 때에도 이미 이글스는 실력이 뛰어난 밴드였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임재범이 우리나라에서 리바이벌시킨 노래 'Desparado’도 원래 린다를 위해 그 때 돈 헨리가 만든 곡이었다. 이글스는 지금도 라이브 무대를 통해 미국에서 그 해 돈을 가장 많이 번 밴드로 이름을 올리곤 한다. 놀라운 그룹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역시 요절 가수 김현식의 백밴드로 시작했었다. 마치 오래 전에 이글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며칠 전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25주년 콘서트를 보았다. 요즘 결혼식을 앞두고 좀 쪼들리는 형편이긴 하지만 마침 여자친구가 페이스북 콘서트 할인 이벤트에 응모했던 게 덜컥 당첨되는 바람에 가게 된 것이다.

 

 

 벌써 25주년이라니.

 

 

하지만 무대 위로 튀어 올라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김종진의 모습은 흰 머리카락이 많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참 멋졌다. 나이가 들어 배가 나온 뮤지션을 보면 왠지 나태해 보이고 ‘가요무대스러워’ 보이기 마련인데 김종진은 적당히 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고 일렉기타를 잡은 모습도 아직 늠름했다. 그리고 전태관은 여전히 조용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경쾌한 율동과 함께 파워 있는 화음을 선보이던 세 명의 여자 코러스도 실력이 좋았다. 나는 요즘 잘 안 봐서 모르는데 코러스 멤버 중 하나가 요즘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나오는 이시몬이라고 한다.

 

예전에도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 때마다 들었던 연주곡 ‘거리의 악사’를 시작으로 ‘내가 걷는 길’, 그리고 늘 데뷔곡처럼 느껴진다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신인 시절 한영애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관객들이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따라 부르는 걸 보고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느꼈었노라고 김종진이 말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무대 위로 한영애가 나타났다. 오늘의 게스트인 셈이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한영애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건널 수 없는 강’과 ‘누구 없소’를 부르고 내려갔다.  

 

 

"저기서 지금 기타를 치는 저 친구는 1990년 12월 30일에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를 보고 '아, 나도 저런 음악가가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젠 저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가 되어 오늘 함께 무대 위에 선 기타리스트이자 음향회사 사장님이십니다"

 


김종진이 세컨 기타를 치는 뮤지션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아, 김종진과 전태관은 25년 전에 벌써 음악을 통해 '어떤 이의 꿈'을 만들어 주고 있었구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는 나의 청춘과 정확히 겹친다. 나의 청춘엔 ‘산울림’도 있었고 ‘사랑과 평화’도 있었고 ‘벗님들’도 ‘조용필’도 있었지만 나의 20대를 온전히 지배한 음악은 역시 ‘시인과 촌장’과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길래 하품을 하는 척했다. 많이 힘들 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냈다던 옛날 애인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 옆에 있는 여자친구 말고(여친이여, 용서하시라). 브라보, 브라보, 아름다운 나의 인생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시절 난 워크맨에 [봄여름가을겨울 1집] 테이프를 넣고 다니며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노래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특정 시간은 물론 그때의 장소 상황, 냄새까지 모두 기억나게 한다. 신기한 일이다.

 

 

 

 

눈물겨운 콘서트였다.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흐뭇한 시간이었다. 이것은 문화의 두께다. 이젠 우리에게도 25년 된, 그러나 전혀 늙지 않은 밴드가 있다. 우리는 기념 T셔츠도 챙기고 CD도 샀다. 싸인 이벤트에도 참석했다.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무대 위에서 마지막 앵콜송을 부를 때 가방에서 못쓰는 봉투를 꺼내 뒷면에 우리 이름과 사연을 메모해놨다. 좀 더 싸인을 빠르고 쉽게 받기 위해서였다. 친절하고 섬세한 종진 씨. 우리 뒤에 줄이 길게 서 있는데도 내 메모를 보고 “아유, 누구 글씨가 이렇게 이뻐요?” 라고 천천히 묻고 진심어린 결혼 축하도 해준다. 활짝 웃고 있는 내 여자친구에도 “그래서 그렇게 표정이 밝았군요.”라고 말을 건내며 CD에 한자로 ‘祝結婚’이라고 써주는 성의까지 보여줬다.

 

‘철없는 여친’ 덕분에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엔 푸르던 시절의 내 청춘이 있었고 가난하지만 풍요한 현재가 있었다. 그리고 25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대를 품을 수 있는 한 밴드의 미래가 있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이렇게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브라보 봄여름가을겨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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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CF에서 보기

 

 

 

이 광고 한 편을 보고 [SK이노베이션]이란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그러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회사인지는 대충 알 수 있습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 사람들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전엔 '이노베이션'이란 단어의 뜻을 살려 '대한민국에 필요한 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라고  살리더니 이번에 'SK'에 알파벳을 하나 더 붙여 'ASK'라는 가치를 찾아냈습니다. 사실 'SK'와 'Ask'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나 크리에이티브는 그런 것이라죠. 서로 상관 없는 점들을 이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소릴 한 거 같은데요. 아무튼 모든 크리에이티브는 콜럼버스의 달걀입니다. 남이 해놓은 거 보면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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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 그게, 다 희망사항대로 돠는 경우는 없잖아요?

 

곽수종 : 제가 말씀드린 것은 말씀하신대로 다 희망사항이구요.

            요새 뭐, 맛있는 복집이 행복복집이고 맛있는 전집이 패자부활전집이라면서요?

            그래서 드렸던 말씀입니다...

 

오늘 점심 먹으면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팟캐스트로 다시 듣고 있는데 '오감경제'라는 코너에서 우리 경제 전망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던 진행자 손석희 교수와 칼럼니스트 곽수종 교수가 지나가는 말로 "맛있는 국민행복집, 패자부활전집" 얘기를 하더군요.

 

비록 끝까지 제작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회사를 나오긴 했지만 제가 '패자부활전이란 이름의 전집' 아이디어를 냈고, 또 운 좋게 그 안이 경쟁PT에서 뽑혀  공익광고로 전파를 타게 된 이후 이렇게 다른 매체에서까지 언급되는 것을 들으니 기분이 참 좋더군요.^^ 역시 광고는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최고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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