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물을 한 잔 마셨는데 잠이 안 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처럼 모듬전에 소주를, 그러나 아주 조금, 아주 간단히 마시고 살짝 졸린 김에 얼른 쓰러져 잔 경우가 그렇다. 계속 자리에 누워있어 봤자 더 자기는 틀렸고 나아가 대한민국 창조경제나 동아시아 문제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여친이 깰까봐 조심조심 깨끔발을 하며 마루로 나왔다.

 

 

책장앞을 오래도록 서성이다 고른 게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잽싸게 자기 소설 제목으로 써먹는 바람에 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소설가 이기호의 단편집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들어했던 [원주통신]이나 [나쁜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을까 하다가 ‘그래도 표제작을 읽어줘야지, 이 새벽엔’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단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미 짐작은 했지만) 이 소설도 전에 내가 읽은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다시 읽어도 이렇게 재미가 있는 건지. 예전엔 별로 안 웃고 넘어갔던 대목까지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웃기네. 이거 이거. 아하하하. 어슴프레 밝아오는 여명을 배경삼아 미친놈처럼 낄낄거리며 책을 읽다 보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다행히 부엌엔 그저께 점심에 사다 놓은 유기농 모닝빵이 다섯 개나 남아 있었다.

 

 

커피를 끓일까 하다가(양에 맞춰 커피를 갈고, 비알레떼 주전자에 곱게 넣은 뒤 가스레인지에 얹어 끓이고, 에스프레소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붓기 전에 재빨리 뜨거운 주전자를 씼어 개수대 위에 널어 말리고 하는 과정을 상상하니, 모든 게 너무 귀찮았다. 더구나 이 새벽에!) 포기하고 씽크대를 뒤져보니 차가 있었다. 그래 우아하게 차를 한 잔 하는 거야. 무심코 손에 잡힌 ‘다미안’이란 차를(뭐가 다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 잔 마시며 책을 마저 읽었다.

 

 

이기호의 소설은 재밌다. 그리고 이기호는 소심하고 찌질하면서도 그 찌질함을 자양분 삼아 전혀 다른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는 젊은 소설가로서의 원대한 포부를 펼칠 줄 아는 멋진 사나이다. 그러니 이기호여, 빨리 새 책을 내라. 내 당신 책은 돈 아끼지 않고 엄벙덤벙 사줄테니.

 

 

여친은 자고, 나는 책을 읽고. 해도 뜨지 않은 신새벽부터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다시 자야지. 아, 시도때도 없이 즐거운 나는 아무래도 타고난 백수 체질인 모양이다. 백수체질…아냐, 뭐 다른 말이 없을까? 문화인. 그래, 문화인 체질이 훨씬 낫네. 새벽부터 문화인이 된 나는 이제 슬슬 다시 자러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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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에 벚꽃 구경을  가자고 약속을 했놨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그만 중요한 술약속을 깜빡했더라구요. 그래서 그날 약속을 못지킨 미안한 마음에 오늘이라도 벚꽃 구경을 가자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일단 남산에 가기 전에 버스를 타고 도산대로에서 열리는 소피 칼의 전시회에 들렀습니다. 

 

 

 

소피 칼은 자기 일상을 가지고 예술로 만드는 멋진 아티스트였습니다. 이번 전시회 [잘 지내길 바래요]도 자기가 사귀던 남자가 느닷없이 이별 통보로 보낸 이메일의 맨 마지막 문장을 자기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석하게 하고 그 결과물로 전시회까지 만든 거였죠. 한 마디로 '구라'가 센 여자입니다. 예술의 절반은 구라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전시회였습니다.

 

 

아침을 늦게 먹었는데도 또 배가 고프다고 제가 칭얼대서 신사동 강남시장 골목에 있는 칼국수집 [가로수길 생칼국수]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여긴 바지락칼국수와 들깨수제비가 맛있습니다). 제가 얼굴에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야, 또 시커멓게 나왔네!"라는 말만 반복하니까 여친도 짜증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긴 증 날 만도 하지요. 사진 배우는 속도가 이렇게 느려서야 어디. ㅎㅎㅎ 

 

 

그러나 기어코 예쁜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남산 산책로를 올라가며 벚꽃 구경을 싫컷 했습니다. 이미 활짝 피고 져버린 애들도 많지만 이렇게 천천히 피라면 정말 천천히 피는 순한 애들도 있습니다.

 

 

전기버스 충전하는 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버스도 맘마를 먹어야 힘을 내겠지? 그래서 지금 맘마 먹는 거야."라고 예쁘게 설명해 주시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이는 정말 열심히 듣고. 따사로운 장면이었습니다. ^^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 올드패션 모드로 한 번 찍어보자고 했더니 고맙게도 혜자 양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70년대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꽃보다 더 활짝 웃는 그녀. 그녀가 웃으면 세상이 따라 웃습니다.

 

 

남산도서관쪽엔 아직도 벚꽃 기세가 대단하더군요.

 

 

접사도 시도해 봤죠. 그런데'이름모를 꽃'이라고 하면 안 된다지요? 그래서 이름을 적어놓은 표지판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놨습니다. 이 꽃은 '오스테오스 펄멈'이랍니다. 어렵습니다.ㅜ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오늘 남산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야외무대에선 로이킴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내려오는 길에 회현시범아파트를 보았습니다. 문득 저기선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너무 낡은 아파트라서요.

 

 

시범아파트가 생길 때 같이 생긴 가게들이겠죠? 맞은편에 '시범부동산'도 있더군요.^^ 

 

 

명동길을 내려오다가 정말 머리털이 인형같은 뒷모습의 여자애들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빠가 앞에 안은 아이까지 셋이더군요. 모두 다 딸이었습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해서 찍었습니다.

 

 

명동신세계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며 책도 읽고(전시회장에서 소피 칼과 폴 오스터가 함께 작업한 책 [뉴욕 이야기]와 소피 칼이 쓴 책 [진실된 이야기]를 샀습니다) 노닥거리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집으로 돌아오기 전 혜자 양이 밥하기 귀찮다고 해서 동네 설렁탕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많이 걸어서 그런지 둘 다 생각보다 밥도 많이 먹고 소주도 한 병 나눠마시고 했더니 그만 또 배가 불러서 다시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결국 열시 반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젠 자야죠. 정말 꽉차게 보낸 일요일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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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호벤 감독은 대량 살육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어서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만들었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걸 화면에 담으면 누구에게나 끔찍하고 잔혹하게 보이지만 그 상대가 우주괴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지치도록 베고 쏘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중세의 ‘마녀사냥’에서 그런 비뚤어진 심리의 힌트를 얻은 바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죽이고 싶다. 방법은 간단하다. 마녀라고 밀고를 하면 된다. 본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을 하더라도 마녀의 변명일 뿐이므로 그건 거짓말이 된다. 그러다 모진 고문에 못이겨 거짓자백을 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마녀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은 1948년에 제주에서 정부와 미군들에게 마치 ‘마녀’처럼 몰려 떼죽음을 당했던 4•3항쟁 희생자들과 현재 강정마을에서 정부와 미국의 이해관계에 대항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한 줄 위에 놓고 바라보는 다큐멘터리영화다.

우리에게 제주란 무엇인가? 구름•돌•바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던 섬이었고, 최성원의 노래처럼 ‘신혼부부 몰려와 똑같은 사진 찍’던 관광지였다. 지금은 장선우 감독이나 예전 동아기획 식구들이 ‘이민’을 가서 사는 천혜의 휴양지, 그리고 올레길과 크고 작은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있는 이국적인 섬일 뿐이다. 적어도 4•3항쟁의 비극적 진실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임흥순은 제주 사람이 아니다. 그냥 제주에 놀러 오는 흔한 관광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같이 일하는 프로듀서의 할머니가 4•3때 남편을 잃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걸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굉장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이 작업은 당시의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기록자로서의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현재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폭파 현장을 지켜보면서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입체적인 역사의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1948년 11월 미군정하에 있던 남한정부는 제주해안선 5Km 바깥의 모든 주민들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소개령을 내렸다. 미녀사냥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폭도로 몰린 도민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군인들과 서북청년단들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한라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잡히지 않으면 대부분 굶어죽거나 얼어죽었다고 한다.

 

 

2007년 6월 강정마을 해군기지 조성 공사 후 주민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져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여태까지 잘 어울려 살던 이웃들은 물론 가족끼리도 원수가 되고 서로 말을 섞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는 공사방해금지 명목으로 주민과 종교단체 환경단체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감독은 64년 전 일이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강정마을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은 1948년 당시 제주의 모습을 재현하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등을 전공했던 임흥순 감독은 좀 색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보통 다큐멘터리처럼 인터뷰어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항상 인터뷰이의 얼굴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4•3사건에 대한 증언이 흘러나올 때 카메라는 제주의 풍경이나 하늘, 감귤나무 같은 고정된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 일쑤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어둡고 거친 밤길을 헤매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누군가 맨발로 눈길을 허정허정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비로소 감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의 도민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조금이라도 짐작하는 방법은 직접 그들처럼 밤길을 헤매보고 눈길을 헤치며 걸어보는 것뿐이라는 다소 무식한(?) 통찰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비념’이란 제주에서 행해지는 작은 규모의 굿을 뜻한다. 감독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애도의 행위야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본성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4•3때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굿을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엔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 뒤에는 피로 물든 4•3사건이 숨어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빼어난 자연경관 뒤에는 해군기지라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비념]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고 설명하기 보다는 스스로 볼 수 있도록 눈을 열게 해주는 영화다.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이는 영화고 알고 나서 다시 보면 더 깊어지는 영화다. 당신이 올해 블록버스터 영화를 세 편쯤 보았다면 이젠 이런 영화도 한 편 보시는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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