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시에 

카메라를 들고

우리동네를 좀 돌아다녔더니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더군요.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던 할머니,

고물상 아저씨와 뭔가 한참 얘기를 나누시더니 금방 사라지셨습니다

 

 

 

 위치나 보나 자세로 보나 왼쪽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이 동네 짱인 거 같죠?

 

 

횟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엔 쉬는 분도 있고 운동을 하는 분도 있고

 

 

 24시간 언제나 아침뿐인 저의 단골, 모닝마트입니다

 

 

뚝도시장 입구에 있는 가게 아저씨. 오늘 팔 핸드백을 진열하시는 중

 

 

예전엔 중학생들이 많이 매던 '쌕'을 이젠 할머니들마다 매고 다니시더군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한국사람들은 왜 다들 평소에도 등산복을 입구 다니냐?"고 묻는다죠. 아마 그들은 이해를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세운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수트라는 옷은 그리 활동성이 좋지 않은 옷이거든요. 그래서 양복은 회사에 출근을 하거니 어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갈 때만 입기 십상이죠. 우리 아저씨들은 평소엔 바지에 점퍼를 많이 입습니다.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입니다. 어른들이 그런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도 덩달아 값이 비싼 등산복이었던 '북쪽얼굴'에 목을 매고 그랬으니까요. 사회적 지위가 높거니 부유한 층을 제외한 일반 서민들은 지금도 일할 때나 산책할 때나 가리지 않고 등산복 바지나 점퍼를 입고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다들 '그냥 편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저도 어쩌다 수트를 입을 때는 왠지 스스로를 좀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트를 입은 날은 괜히 몸도 더 추스리게 되고 양복이 구겨질까봐 아무 데나 앉지도 않게 되거든요. 또 셔츠도 한 두번 입고 나면 드라이크리닝을 맡겨야만 하기 때문에 돈이 들고...아무튼 아침에 등산복을 입고 찡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아저씨들이 다들 수트에 구두를 신고 저러고 있어도 꽤 웃기겠구나 하며 혼자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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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우리는 옥천에 있는 친구 부부집에 놀러 갔습니다. 진작에 갔어야 했던 집이었지만 제가 늘 바쁜척을 하며 번번히 약속을 미루고 펑크를 내고 하다가 결혼식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이 돼서야 겨우 방문하게 된 여친의 가장 친한 여고동창네 집입니다.

 

 

아주 현대적이고 멋진 집인데 흑백으로 찍었더니  좀 그로테스크하죠? 이번 여행에선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뭐, 별 이유는 없구요. 괜히 그래보고 싶어서요.

 이 집은 이웃에 살던 교수님께서 직접 설계하고 지으신 집이라는데 어떠어떠한 연유로 인해 이제부터 서로 집을 바꿔 살기로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건 독신으로 살고 계시던 어느 멋진 디자인과 교수님이 자기가 평생 살 생각으로 만들었던 '작품'인 거죠.

 

 

방문하는 차들마다 함부로 들어와 잔디밭을 망쳐 놓는 게 안타까워서 뒤늦게 철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교수님의 아이디어였구요.  

 

 

 

옆집도 멋집니다

 

마당에는 진돗개 한 마리와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습니다. 진돗개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모든 걸 귀찮아하는 할머니 스타일이고 골든리트리버는 아직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만 다가서도 꼬리를 흔드는 청소년입니다.

 

 

 

집안엔 멋진 거실과 주방, 그리고 가족들이 있습니다.

 

 

사내 아이 둘이 뛰어놀기엔 꽤 넓은 마당이죠.

 

 

어릴 적 친구 둘이 오랫만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동안

거실에 누워 자던 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저녁 산책을 나갔습니다.

 

 

전 이상하게 창고를 좋아해서 창고만 보면 사진이 찍고 싶어집니다.

 

 

너무 흑백만 찍는 거 같아서 집안에서 컬러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역시 흑백이 낫더군요

 

 

미술과 패션 등을 전공한 이 부부는 10여 년 전에 '귀향'을 해 폐교를 개조한 이 자연체험장에서 얼마 전까지 살았답니다. 아들 둘도 여기서 다 컸구요. 지금은 여기서 살진 않지만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여름마다 친구들과 떼지어 놀러가는 강원도 산촌체험장이랑 거의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맑은 공기, 싱그런 자연, 넓은 산촌체험장...이런 환경에선 도저히 안 마실 수가 없죠.

 

 

 

 아침에 일어났더니 둘은 교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숙취를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침 산책을 나갔습니다. 제 입에서 새나오는 술냄새 말고는 공기도 하늘도 다 맑더군요.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를 만나서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서울에서 전시회 하게 되면 꼭 초대하라고 농담을 하십니다. 멋진 할머니셨습니다.

 

 

 

친구 부부는 자꾸 내려와서 살라고 합니다. 공기도 좋고 정말 평화로운 곳이라고. 아아, 저희들이라고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우리는 서울을 싫어하면서도 당분간은, 또는 꽤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불쌍한 인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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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신사동 가는 버스를 타고 멍때리다가 그만 한남대교를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남오거리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터덜터덜 걷다가 '영진설비’라는 간판과 마주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박철 시인의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라는 시에 나오는 바로 그 이름이었죠. 그래서 그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봤습니다. 언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술이 땡기는 시,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 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수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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