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구를 바꾼다
모니터를 껐다 켠다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으로 간다 
초콜릿을 먹는다 
인터넷 서핑을 한다 
화를 낸다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시간은 없을 때

광고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별 이상한 짓거리들을 한다 
사실은 다 소용 없는데  

아이디어는 조용필이다 
맨 마지막에 나오니까  

(그나마 나오면 다행. 안 나오는 날이 더 많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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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번씩은 들어봤음직한 '밥벌이'에 대한 멘션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놀랍게도 밥을 잘 안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돈을 아끼느라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원래 식욕이 없어서인 경우도 좀 있고 다이어트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내가 근무하는 3층 기획실의 인원 대부분은 점심을 안 먹거나 일반인과 매우 다른 형태로 음식을 섭취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한두 사람 밥을 안 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떼를 지어 안 먹는 회사는 처음 아닌가 싶다. 

하루 종일 굶고 가끔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이나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들어오는 용 모 실장 같은 경우 왜 그렇게 밥을 안 먹냐고 한 번 물어봤더니 "뭐, 귀찮은데 하루 세 끼를 꼭 다 챙겨 먹어야 하나요?"라고 태연하게 반문한다. 김 모 실장님 같은 경우는 집에서 가져온 찐 고구마나 바나나 등을 끼니로 삼는다. 고 모 실장님은 크게 앓은 뒤 건강관리를 위해 소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웃기는 건 그러다가 아주 가끔 다 늦은 저녁에 컵라면이나 짜장면 같은 걸 폭식하고는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나와 한 팀에서 일하는 카피라이터 승찬 같은 경우는 할 일이 있으면 신경이 곤두서서 밥숟가락을 입에 대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무슨 프로젝트가 하나 있으면 거의 점심 저녁을 건너뛰고  미친듯이 일만 한다. 그런다고 아주 굶는 건 아니다. 일이 끝나고 밤 늦게 집에 가서 혼자 폭식을 한다고 고백한다. 어머니는 '뭐 하느라 밥도 못 먹고 들어와 이렇게 많이 처먹냐'고 옆에서 한숨을 내쉬시고. 이 놈은 어쩌다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면(거의 없는 일이지만) 언제 굶었냐는 듯이 짜장면 곱배기에 공기밥을 추가해서 순식같에 해치우는 괴물이다. 

몇 달 전 새로 들어온 카피라이터 수연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아예 끼니 때마다 굶는다. 그래서 그런지 몸도 깡말랐다. 한 번은 궁금해서 "그렇게 안 먹고 어떻게 버티냐?" 물었더니 집에 들어가서 뒤늦게 밥솥 끌어안고 먹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러나 평소 습관이나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무래도 거짓말인 거 같다. 

이래저래 우리 회사에서 끼니 때마다 밥을 챙겨먹는 사람은 '혹시 나는 식충이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는 아주 나쁜 환경이다. 그동안 점심시간에 정상적으로 식욕을 불태우는 인간은 나와 민섭 팀장 둘뿐이었는데, 다음 주부터 민섭이 다른 회사로 가게 되었다. 대단히 섭섭하고 괴로운 일이다. 이제 나는 누구랑 밥을 먹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 민섭이 환송회라고 롤링페이퍼를 만든단다. 나는 롤링페이퍼에 우리 회사의 '단식 풍조'에 대한 비판의 글을 썼다. 실명을 거론했지만 풀네임도 아닌데 설마 이걸로 필화를 겪지야 않겠지. 에이, 설마. 




용 실장은 안 먹어 
건익 실장님도 안 드셔 
고 실장님도 안 드셔 
문 실장은 늦게 와 
재남 실장은 외출 중 
승찬이는 잘 안 먹어 
수연이는 더 안 먹어 
선아는 다이어트 
은솔이는 아직 안 친해 
유빈이는 너무 과묵해 

3층에서 점심시간에 
식욕에 불타는 건 
현민섭과 나
둘 뿐이었는데 
이제 너마저...

 함께 밥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른다지?
잘 가라, 식구!
그리고 또 보자 
한 번 식구는 영원한 식구니까 

- 4년된 식구, 편성준 씀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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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JTBC뉴스가 끝나고 IP-TV로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를 봤다. 처음엔 일찍 자겠다던 아내도 어느덧 TV앞에 앉더니 끝까지 영화를 지켜보았다. [정사]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같은 날렵한 드라마를 만들던 이재용 감독이 웬일로 파고다공원의 박카스 아줌마 얘기래? 했는데 막상 영화는 생각보다 귀엽고 산뜻했다. 이를테면 [친구]를 만들던 곽경택이 어깨에 힘 빼고 [똥개]를 만든 느낌이랄까. 작년 10월에 개봉한 영화다. 


윤여정은 나이로는 분명 노인이지만 그냥 노인이 아니다. 어울리지 않게 청자켓을 입고 새침한 표정을 지어도 어울리고 고양이밥을 들고 마당으로 나오다가 다른 사람의 로맨스를 목격하고 부러워하는 얼굴에도 어울린다. 그렇다. '발리 윤식당'의 셰프도 윤여정이지만 이렇게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숨기지 못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와 마주할 때 우리는 아직 윤여정만큼 '원톱'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여배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같이 나오는 배우들과의 화학작용도 좋다. 트랜스젠더 배우 안아주나 윤계상이 윤여정과 함께 이태원의 이층집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내가 "완전 루저들의 합창이네?!" 라고 했더니 아내도 빙긋이 웃으며 동의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 성매매로 만난 사이지만 서로 예의를 지키고 품위가 있는 멋진 노인들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게 가능한 게,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김기덕이 만들었으면 비린내가 났을 영화가 이재용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한층 담백해졌다. 그렇다고 푸근하거나 흐뭇한 것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윤여정이 오랜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살인자가 된 뒤 미련없이 체포되어 경찰차로 실려갈 때 운전하던 경찰이 건내주는 담배 한 가치의 연기는 참으로 위로가 된다. 작품 전체가 열여섯 평짜리 이층 양옥집만 하다면 거기에'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 라는 동의가 두세 평짜리 옥탑방처럼 붙어 있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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