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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28 아내와 연애하기
  2. 2017.01.28 문장력 선생님들 2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러브 액추얼리]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 시즌 하면 떠오르던 영화 [다이 하드] 시리즈를 내 마음 속에서 밀어낸 콘텐츠인데, 특히 자신의 친한 친구와 결혼한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찾아가 스케치북을 넘겨가며 프리젠테이션 하듯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이 유명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인터넷에서 ‘러브 액추얼리 무삭제판’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영화에 무슨 무삭제판이 있어, 하면서도 호기심에 다운을 받아보았더니 거기엔 우리나라 상영 당시 통째로 삭제된 포르노 배우 커플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성인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 둘 다 직업이 포르노 배우이다 보니 첫 만남부터 나체일 수밖에 없었다. 촬영 현장에서 조명 체크를 하는 스태프 사이로 둘 다 벌거벗은 채 점잖게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의 상황이 묘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껴버린 두 사람이 촬영을 마친 뒤 가벼운 데이트를 하고 저녁에 집앞까지 여자를 바래다 주면서 마지막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장면이 그렇게 풋풋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연애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 아닐까 생각한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에 더 공감이 가는 아이디어였다.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다. 아무리 프리 섹스와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이라 해도 결국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연애의 가능성을 탐지하는 순간, 그리고 연애가 막 시작될 때의 그 짜릿한 환희 아닐까. 그래서 연애 감정은 중요하다. 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의 연애감정은 더욱 그렇다. 

뚱딴지 같이 무슨 아내와 연애냐고 질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내와의 연애만큼 유리한 행위는 없다. 결혼을 하고도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번민하는 수많은 불행아들을 보라. 나는 '가장 예쁜 여자는 처음 만난 여자'라고 외치는 카사노바들이 부럽지 않다. 그들은 그만큼 상상력과 관찰력이 부족한 것이다. 혹시 당신이 이혼남이나 이혼녀라면 한 번 생각해 보라. 당신과 이혼한 그 사람이 왜 다른 파트너와는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인간은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보면 볼수록, 파면 팔수록 새로운 점이 나오는 화수분 같은 존재다. 그리고 좋은 관계란 그것들을 잘 찾아내고 소중히 가꾸는 사람들에게서 생겨나는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아직도 나를 만나러 오는 길이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아직은 볼 때마다 내가 반가운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행운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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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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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한 호텔이다. 설 연휴, 아내의 넓은 마음과 배려 덕분에 아무 것도 안 하고 혼자 지낼 수 있는 24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고심 끝에 호텔방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들을 데려왔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무라키미 하루키 잡문집] 그리고 [유혹하는 글쓰기]를 가져왔다). 이건 참으로 폼 안 나는 선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통속적인 작가들이라니. 더구나 이 책들은 여기저기 책장을 접고 밑줄을 치고 손때가 묻어있을 정도로 전에 여러번 읽은 책들이다. 

내가 왜 이 책들을 들고 왔는지는 저녁에 교보문고에 가서 새 책을 한 권 더 산 후에 깨달았다. 요즘 잘 나가는 에세이 중 하나를 사서 그 문장의 흐름과 내용을 살펴보았는데(무슨 책인지는 안 알랴줌) 애써 고른 그 책을 읽다보니 역설적으로 하루키나 킹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었다. 

일단 둘 다 문장이 참 좋다. 쉽고 평이한 단어들을 사용하되 에둘러 가는 일 없이 하고싶은 말을 차근차근 할 줄 안다. 독자들이 혹시 못 알아 들을까 걱정해서 부사를 남발하지도 않는다(실제로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그가 쓸데 없는 부사 사용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들려준다). 작가는 스토리나 플롯만 짜는 사람이 아니다. 쉽고 친절한 문장으로 어려운 내용을 잘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작가가 아니더라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 

아침이다. 그래봤자 먹고 자고 하는 것을 빼면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 내가 쓰고싶은 글까지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광고 카피가 아닌 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궁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공간이었다. 더구나 내 곁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스티븐 킹이라는 엉청난 선생님들이 있었으니. 나는 하루키나 킹 같은 작품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대의 문장 고수들에게 한 칼 가르침을 받으려 해 본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들이 나를 내치지 않고 친절하게 거두어 주었을 뿐이다. 이만하면 워런 버핏과의 백만 불짜리 점심식사보다 낫지 않은가.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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