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처가의 캘리'에 해당되는 글 8건
- 2018.11.22 나도 그래
- 2018.09.19 오랜만에 공처가의 캘리
- 2018.09.08 가끔 딴생각을 하면 즐겁다
- 2018.05.15 웃음소리
- 2018.05.09 안 떨려
- 2018.05.09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 2018.05.09 일요일 아침 문득
- 2018.05.09 공처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건데
오랜만에 여기도 올려봅니다.
존경하는 광고인이자 글쟁이인 카피라이터인 정철 선배는 [틈만 나면 딴생각]이라는 저서의 책날개에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머리가 굳는다'라고 썼다. 나는 거기에 이렇게 덧붙여보고 싶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보면 몸 축나고 머리도 비어 결국엔 바보가 되거나 기계로 전락한다고.
3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놀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일을 할 시기에, 놀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만 놀게 되었으니 당연히 돈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더구나 내게는 학력, 학식, 재능, 배경, 배짱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한 상황이고 남아도는 건 오로지 시간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몇날 며칠 시간을 펑펑 써가며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바로 '월조회'라는 단체였다. '월요일 아침에 조조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었는데 명색이 단체이긴 했지만 회원은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그 시간에 나와 놀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었다. 남들은 월요병에 시달려가며 주간업무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에 혼자 텅 빈 극장에 앉아 조조영화를 보는 맛은 각별했다. 아, 이게 주류 이탈자의 쾌감이구나. 나는 그 새로 취직이 될 때까지 그 소심한 행복을 많이 즐겼다.
월조회에서 한 번 깨소금맛을 경험한 나는 틈만 나면 '쓸 데 없는 짓'을 구상하는 편이다. 어느날은 아내와 옆집 총각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으며 '수요미식회'처럼 우리도 날을 정해서 뭘 먹으러 다녀보면 어떨까? 라는 얘기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토요식충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은 내가 제안을 했는데 자칫 '벌레 충 자'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먹을 것에 충성한다는 뜻의 '토요食忠團'을 병기하기로 했다. 토요식충단은 미식가인 옆집 총각의 취재력과 출판 기획자인 아내의 추진력 덕분에 정식 회원도 모집하고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토요일에 성북동 삼총사가 식당을 찾아다니는 일이 주업무지만 두 달에 한 번씩은 회원들을 불러모아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함께 즐기는 정기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나만큼이나 쓸 데 없는 일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내는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남편 덕에 매일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수고를 떠안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식탁 사진을 찍어 올리는 '매일매일밥상'이라는 페이지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이제는 수많은 구독자들이 우리들의 소박한 아침 밥상 사진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 여겼던 행위가 사실 아주 쓸 데 없는 생각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지나고 보니 '매일매일밥상'이 그런 경우였다.
연말에 동네에 있는 커피숍 '성북동 콩집'에 앉아 '올해 읽은 책 베스트5'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그러지 말고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소설을 읽는 모임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떠냐'고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라 생각해서 만들어진 게 '독하다 토요일'이다. 우리가 만든 이 모임은 이름만 독할 뿐 사실은 매우 널널한 독서클럽이다. 다른 그룹처럼 책을 전투적으로 읽고 와서 열띤 토론을 벌이거나 하는 것은 우리 성격에 맞지도 않으니 자제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회원들은 내가 미리 공지한 6권 중 '이달의 책'을 들고와 모임 장소에서 한 시간 정도 묵독한 뒤 각자 책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사실 처음엔 한 시간 뒤 각자 '세 줄 평'을 작성해 읽어보기로 했었으나 이마저도 시들해져서 요즘은 나만 하고 있다). 우선 육 개월만 시험삼아 모임을 가져보기로 하고 내가 6권의 한국 소설을 선정했는데 생각보다 회원들도 빨리 모였고 다들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고 말해줘서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오늘이 여섯 번째 모임이니 빨리 이 글을 마감하고 대학로 '책책'으로 달려가야겠다.
생각해보면 위에 열거한 짓거리들 중 돈이 되는 모임은 하나도 없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쓰고 있는 '공처가의 캘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떠랴. 언제나 그랬듯이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게 바로 이런 '즐거움' 아니던가. 그러니 쓸 데 없는 짓을 두려워하지 말자. 장담하건데 가끔 딴생각을 할수록 인생은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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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은 이렇게 된지 좀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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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들은 혹시 이런 연습을 하지 않을까 , 괜히 생각해 봤습니다.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일요일 아침 문득, 공처가로 살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대문사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