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50대의 출판사 사장에게도 새로운 연애가 찾아올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나이나 상황과는 상관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 거니까. 연애감정이라는 것은 누가 심지 않아도 이끼처럼 적당한 응달만 있어도 어느새 자라나기도 하니까.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다음엔?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주인공이 결혼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 생긴 젊은 여자랑 멋진 사랑을 이어갈까? 그럴 리가 없다. 적어도 이게 홍상수의 영화라면.
홍상수의 스물한 번째 장편 영화 [그 후]는 문학평론가이자 작은 출판사 사장인 봉완(권해효)이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헤어진 후 새로운 여직원 아름(김민희)을 맞이하는 얘기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봉완은 창숙을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뒤늦게 아내 해주(조윤희)는 이 사실을 알고 격분했으며 아무 것도 모르던 아름은 그 사이에 낀 채 엉뚱한 봉변을 당한다. 얘기만 들으면 상투적인 치정멜로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비슷비슷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자꾸 보는 이유는 섹스나 불륜을 잘 다루어서가 아니라 그런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투적인 대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새로움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소하고 한심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역시 그의 영화답게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창숙은 나이 많은 봉완에게 치사하다고 화를 내며 엉엉 운다. 간절하지만 사랑은 늘 이렇게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나중에 입사한 아름을 하루만에 쫓아낼 정도로 굳건해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창숙의 존재는 묘연하기만 하다. 그 뜨겁던 다짐이나 맹세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름은 봉완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람은 믿는 게 중요하다고. 아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무시하는 요즘 풍조 때문에 하나님이란 말을 쏙 빼고 그 얘기를 하려니 믿음에 대한 토론이 본질을 벗어나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이 와중에도 교인인 아름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교인이 아닌 봉완은 '하느님'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중요한 차이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쫓겨나면서 열몇 권의 책을 챙겨나오던 아름은 택시 안에서 갑자기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실감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아름이 봉완의 출판사에 다시 찾아간다. 이번에 무슨 상을 받게 된 봉완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아내의 눈을 피하면서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을 내쫓았던 창숙의 뒷얘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봉완은 아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아, 우리 전에 만났었죠? 아, 같이 술도 마셨죠."라고 한심한 기억력을 드러낸다. 남아 있어야 할 창숙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다른 여직원이 들어오면서 배고픈데 뭘 시켜먹자고 봉완에게 말한다. 봉완은 중국음식을 시키자며 아름에게도 권한다. 허무하다. 당시에는 간절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극장으로 들어가 겨울에 찍은 영화를 보는 맛이 각별했다. 더구나 흑백영화다. 이런 작은 영화는 차분한 흑백이 어울린다. 관객이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 그렇듯이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권해효부터 김민희까지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배우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습성이나 표정, 버릇을 영화 속에 녹여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촬영 당일 아침에 장비를 세팅하는 스태프들 사이에 앉아 비로소 디테일한 대사를 쓰는 것도 배우들의 실제 삶을 영화 속에 끝까지 반영하려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권해효와 조윤희는 실제 부부다. 크게 관계는 없지만 그런 걸 알고 보는 것도 영화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늘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가치는 결과에 있을까 아니면 과정에 있을까? 아무래도 홍상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 과정이,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가 제일이다. [그 후]라는 제목은 촬영장으로 쓰인 출판사에 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즉흥적으로 따온 것이지만 이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에 과연 뭐가 남았는지를 반추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아름이 출판사를 나설 때 새 여직원이 시킨 중국집 철가방과 입구에서 잠깐 마주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중국음식 배달 오토바이와 비교해 봐도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홍상수의 영화를 무조건 지겨워하거나 키득거리면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인생과 이토록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