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를 보면 ‘나, 그거 인터넷으로 찾아봤어’라고 하는 말로 아예 “I googled it.”라는 말을 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죠. 그럴 정도로 구글은 이제 전 세계인들 검색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이 ‘대단한 검색 엔진’의 광고를 당장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면 과연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요? 더구나 광고주께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은 구글에서 찾는다(찾았다)’라는 식의 뻔한 서술형 광고 말고 누구나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이성적인 방법이면서 동시에 따스한 감성까지 팍팍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광고라야만 하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리고 유명인을 쓰거나 화려한 해외 로케로 해결할 생각 말고 오로지 멋진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광고를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주문을 늘어놓는다면 과연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마도 이 광고야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주문’을 거의 충족시킨 광고가 아닌가 합니다. 2010년 슈퍼볼 경기에 등장했던 구글의 캠페인 ‘parisian love’ 편입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공부를 하려는 청년이 있습니다. 당연히 항공편을 알아보겠죠. 그리고 파리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어떤 소녀를 하나 만나게 됩니다.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겠죠. 소녀가 아까 자기한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검색을 해봅니다. 그리고 프랑스 소녀와는 어떻게 데이트를 해야 하는지도 검색해 봅니다. 젊은이들답게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집니다. 

초콜릿 가게를 찾아 소녀에게 선물도 하고 그녀가 특히 좋아한다는 누벨바그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봅니다. 어느덧 사랑이 깊어집니다. 이제 더 이상은 떨어져서 살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결국 둘은 프랑스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곧 아기가 태어납니다. 행복에 겨워 아기 침대를 조립하는 아빠의 해맑은 미소로 영상이 끝납니다. 

 그런데 이 광고엔 제가 말한 그 어떤 장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누군가 키보드를 두들기며 구글 검색바에 입력하는 장면과 간단한 효과음, 그리고  목소리들이 들릴 뿐입니다. 놀랍지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우린 순식간에 어떤 젊은이들의 국경을 넘는 사랑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엔 ‘구글 검색엔진’이라는 딱딱한 용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참 많은 것을 보여주는 2010년도 구글 캠페인. 좋은 아이디어는 언제 봐도 참 경탄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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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보이가 어떻게 페인트 업계를 뒤흔들었는지 아는가? 이건 너무 간단해서 무서울 정도다. 그들은 깡통을 바꿨다. 더치 보이는 운반하기 쉽고, 페인트를 붓기 쉽고, 닫기 쉬운 페인트 용기를 시장에 내놓았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용기에 가해진 몇 개의 뻔한 변화가 더치 보이 매출을 엄청나게 끌어 올렸다." 


오랫만에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를 들춰보니 두세 페이지를 채 넘기기도 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길을 가다 보면 도처에 콜럼부스의 달걀이요, 마시다 보면 도처에 원효의 해골물이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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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복잡하지만 법칙은 단순하다”

 – 박웅현이 전하는 인생의 ‘단순한’ 법칙들 [여덟 단어] 




은퇴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CF 감독, 김규환 씨와 호주로 촬영을 간 적이 있어요. 촬영장엔 외국인 모델들이 캐스팅을 위해 찾아왔었어요. 우리가 선택을 하는 입장인데도 180센치미터가 넘는 금발의 여자들이 쭉 서 있으니까 이쪽에서 다들 기가 죽었죠. 그런데 김규환 감독이 가더니 “어 그래, 이 친구 괜찮네”라면서 한국어로 의견을 말하고 통역을 시켰어요. 만약 영어로, “You beautiful” “I like it”, 이런 식으로는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절반도 전달할 수 없었을 거예요. 김규환 감독은 모델들을 찬찬히 살피고 한국어로 의견을 전달하고 통역사에게 말을 전하게 했죠. 당시에 그 눈빛에 모델들이 압도돼서 떨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나요? 외국어라고, 외국인 모델과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말을 꼭 영어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덟 단어]라는 책을 읽을 때 저는 특히 이 부분에서 신선함과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이 마주치게 되고 괴로워하게 되는 ‘권위’에 대한 챕터였는데요, 박웅현은 여기서 저의 광고 선배이자 개인적으론 홍익대학교 학생 동아리 ‘뚜라미’의 선배인기도 했던 규환이 형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불합리한 권위에 굴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박웅현의 신작 [여덟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자세들을 여덟 개의 단어로 나눈 뒤 각 챕터마다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책입니다.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쓴 게 아니라 20,30대들을 모아놓고 매주 강연한 내용을 따로 옮긴 거니까 에세이라기 보다는 강연록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걸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공자나 부처, 예수를 능가하는 수퍼맨이거나 사이비종교의 교주쯤 되겠지요. 박웅현도 말합니다. 인생은 강의 몇 번 듣는다고, 책 몇 권 읽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시작하는 것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스스로에게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통찰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들은 왜 남자친구한테 "김태희가 이뻐? 내가 더 이뻐?"라는 질문을 하죠? 김태희가 더 이쁘고, 하지만 난 널 사랑해. 5만원이 비싸? 100원이 더 비싸? 이런 거잖아요.” 성시경, 재밌다. 하하하. 



어제 제 페이스북 친구 김정욱 씨가 올린 글입니다. 성시경이 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모양이죠? 이번 책 [여덟 단어]는 ‘자존’이라는 글자로 문을 엽니다. 우린 모두 김태희처럼 예쁠 수도 없고 고소영이 될 수도 없죠. 고소영한테 왜 김태희처럼 예쁘지 않냐고 따지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모든 ‘엄친아’ ‘엄친딸’들은 이런 어불성설을 먹고 자라납니다. 남과 비교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존’이죠. . ‘나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그리고 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가진 독립체들이니까요. 


그런데 남들과 비교되는 순간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인가 봅니다. 알랭 드 보통도 [불안]이라는 책에서 이런 경험을 토로하죠. (그러나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 몇 명((이들보다 더 강력한 준거집단은 없다))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성공한 케이스로 박웅현은 [나무열전]이라는 책을 쓴 사학자 강판권 씨를 들고 있습니다. 그는 ‘촌놈’출신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학자라죠? 이러한 자존의 성찰은 자연스럽게 ‘본질’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박웅현은 남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게 힘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단점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과정을 다시 떠올리며’본질’의 문제를 풀어갑니다. 남들보다 잘 하자, 가 아니라 ‘내 얘기를 내 방식대로 잘 전달하자’고 생각을 바꿨을 때 그는 비로소 프리젠테이션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왜 나는 이렇게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릴까,하고 자책하는 대신 “잘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땀 흘리려고 하는 거니까”가 본질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간단한 이치죠? 


본질(本質). 


저는 이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씁니다. 그런데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라는 에르메스 브랜드의 지면광고 카피만큼 본질을 한 마디로 표현한 예는 드물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게 마련이죠. 예를 들면 사람들의 웃음 같은 거.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웃음, 기쁨, 감동, 행복, 공감 등 몇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지난 학기 제게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 학점에 불만이 있다고 이메일을 보낸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제가 내준 과제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다 했고 밤새워 ‘프레지(Prezi)를 배워 기말과제도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파워포인트에 글이나 그림을 올리고 링크시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저에게 프레지 같은 프리젠테이션 도구는 그야말로 신세계처럼 멋진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콘텐츠’였습니다. 저는 그 학생보다 더 투박하지만 좀 더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과제물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웅현은 ‘촛불’을 예로 들어 콘텐츠의 힘을 역설합니다.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죽은 이의 영혼이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라는 어느 네티즌의 제의에 의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던 촛불의 힘.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촛불시위로 번져갔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의무감에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거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좋은 콘텐츠는 미디어가 무엇이든 퍼지게 되어 있다는 것. 광고를 하는 저희들 머릿속에도 늘 이런 생각으로 가득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요? 리처드 파인먼은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서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중요한 힌트를 던져줍니다. 잡다한 지식이나 곁가지 상황들을 걷어내고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통찰에 집중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이죠. 인구에 회자되는 지구상의 모든 강력한 콘텐츠들은 다 그렇게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기초체력을 기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다시 ‘책 읽기’라고 박웅현은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전작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나 [책은 도끼다]같은 경우에서도 늘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저자는 자신이 신문보다는 단행본을 즐겨 읽는 이유도 신문은 그냥 흘러가는 느낌인데 비해 책은 집중해서 다 읽고 나면 뭔가를 얻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밑줄을 치게 되고 다시 펼쳐보게 되고 그러다가 이런 시도 발견하게 되니까요.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 이라는 시입니다. 며칠 전에 제 페이스북 친구 중 한 분이 먼저 쓰신 [여덟 단어] 리뷰에서 이 시를 올리셨더라구요. 저도 한 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년 창비





시인이라서 이런 눈을 가지게 된 걸까요?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자세히, 마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살면서 열심히 본다는 것(見) 역시 참 중요한 것이죠. 이 책에서는 자존에서 시작해 본질, 클래식(고전), 본다는 것, 현재 등등의 단어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 단어들은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첫 물음에 대한 답의 단서들을 품고 있는데 어떤 때는 안도현이나 고은 시인의 시로 설명되기도 하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아포리즘이나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문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눈만 뜨면 정보가 넘쳐나고 인터넷, 모바일 기기들이 24시간 옆에서 나를 끊임없이 간섭하는 시대. 이는 곧 ‘결핍이 결핍된’ 역설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예전엔 구하기도 힘들었던 책들이, 영화들이 이젠 너무 많아서, 구하기가 너무 쉬워져서 제목만 읽었는데도 이미 그걸 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읽기만 하고 생각을 안 하면 남는 건 제목뿐입니다. 박웅현이 강조하는 인문학도 바로 그런 것이죠.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고전이 왜 중요한지, 발견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은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한 가지를 보더라도 ‘깊게’ 읽고 느낌으로써 본질적인 것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잘 나가는 광고인들 중에는 욕을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사 일은 안 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며 강의나 심사위원만 하다고 욕 먹고, 해외광고제 같은 데 가서 자료들을 잔뜩 선점해 뻔한 광고책 쓴다고 욕 먹고,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 되어 방송에만 자주 나온다고 욕먹고. 어쩌면 박웅현도 그런 사람일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하면 그냥 광고 얘긴데 박웅현이 내는 책만 왜 유독 ‘인문학’ 딱지를 붙여주느냐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박웅현을 이 책에서 배우고 함께 궁리해 본대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박웅현이 계속해서 이런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뭘까요? ‘자존’을 생각한다면 남보다 더 인정받는 광고인이나 유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닌 거 같구요. ‘현재’를 생각한다면 노후를 위한 꼼수로 이러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권위’라는 챕터에 비춰보면 우리는 ‘똑똑하고 잘난 박웅현’한테 주눅들 필요가 하나도 없는 거겠죠. 


잘은 모르겠습니다. 전 그저 그저 박웅현이 책 말미에 쓴 대로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라는 그의 주장으로 만들어지는 ‘박웅현의 인생’이라는 고유 브랜드를 앞으로도 흥미롭게 천천히 지켜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 독서일기를 쓰기 전에 제법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메모했었는데, 쓰면서 대부분 버렸습니다. 이런 책은 남의 리뷰만 휘리릭 훑어보고 ‘음, 무슨 얘긴지 대충 알겠네.’라고 넘겨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까요. 그러니 지금 제 리뷰를 대충 읽어보신 뒤 얼른 책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책상 옆에다 놓고 인생이 막연해질 때마다, 자신이 무능해 보일 때마다, 싫은 놈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마다 한 번씩 들쳐 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이야 얻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유용한 힌트 몇 개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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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파트 앞엔 [신화마트]라는 수퍼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가게처럼 일용잡화를 팔고 밤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간단한 안주에 맥주도 한 잔씩 하는 그런 평범한 수퍼죠. 우리 커플도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들어갔다가 뻔데기통조림이나 골뱅이에 한 잔 한 뒤로는 단골이 되었습니다. 우리 말고도 그런 손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골들끼리 친해져서 인사도 나누게 되고 가끔은 누군가 집에서 가져온 ‘사제 안주’를 나눠먹으며 작은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 강남 부자 동네와는 좀 다른 정서죠.

 

 

그런데 이 가게가 얼마 전부터 한쪽 공간을 막더니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사장님께 물어보니 가게를 반으로 줄이고 새로 생긴 공간에 작은 치킨집을 열 생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녁마다 찾아오던 단골 청년들 중 둘은 벌써 며칠째 공사를 맡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을 거 같았습니다. 이 가게는 바로 옆 토끼굴을 지나 수십 미터만 나가면 한강변이고 뚝섬유원지역도 걸어서 13분 거리입니다. 뚝섬유원지는 여름이면 치킨배달이 엄청 성행하는 곳이죠. 수퍼마켓만 하는 것보다 훨씬 신나는 일일 거 같았습니다. 우리도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사장님 부부도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습니다.

 


치킨집이라…일단 신화마트가 사업을 확장한 거니까 ‘신화치킨’을 생각하기가 쉽겠죠. 그러나 그건 “아, 신화마트가 치킨집을 냈구나”라는 몇몇 지인들의 반응 말고는 뾰족한 게 없습니다. 별 의미가 없는 네이밍이란 말이죠. 게다가 치킨집 특유의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유머나 특징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닭컴'부터 시작해서 코스닭, 후다닭, 쏙닭쏙닭, 토닭토닭까지 차고 넘치는 게 치킨집 이름이었지만 그래도 치킨집 이름은 그래야 하는 거니까요.

 

 

 

“닭터 어때? 닭터 치킨!” 제가 여친에게 물어봤더니 그거 괜찮은데, 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성이 오 씨니까 닭터오 치킨으로 하자. 그리고 닭터라는 상호명은 이미 많을 테니 ‘성수동 닭터오 치킨’으로 하자는 얘기까지 급속도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표기는 ‘닭터5’와 ‘Dr.5’를 병행하면 패러디 아이덴티티도 더 살릴 수 있을 거 같았구요.

 

 

아울러 윤혜자 양은 ‘닭터오 특별 메뉴’까지 즉석에서 제안했습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닭고기 다섯 조각으로 이루어진 오천 원짜리 특별 상품을 마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치킨이 생각나도 만사천원이나 만육천 원쯤 하는 치킨 한 마리를 혼자 시켜먹기엔 부담이 있습니다. 이럴 때 오천 원짜리 ‘닭터오 스페셜’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죠. 기분 좋게 결론을 낸 우리는 내일 빨리 이 이름을 알려드려야겠다고 조바심을 내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 간단한 네이밍 기획서를 써가지고 [신화마트]에 갔더니 일단 아주머니가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옆에서 공사를 하던 청년들에게도 보여줬는데 다들 좋다고 한 마디씩 하더군요. 닭터5스페셜 메뉴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장님은 며칠 전 다리를 다쳐 네이밍 후보안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오늘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름이 확정되면 간판과 스티커 디자인도 같이 일하던 친구나 동료들에게 부탁해볼 생각입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디자인이 좋으면 더 효과가 좋아지겠죠.

 


뿌듯한 일입니다. 아주머니가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물으시길래 “저희 비싼 애들이에요. 정식으로 돈 내시려고 하면 너무 비싸니까, 관두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요. 동네에서 그럴 순 없죠. 근데 이름값을 치킨으로 다 받으면 도대체 몇 마리나 되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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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영되고 있는 삼성카드 광고.

 

'실용'이라는 컨셉에 어울리는 적절한 사례를 찾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콩집 편' 이후에도 계속 캠페인을 이끌어갈 엔도서로 스마트한 이미지의 이적이 나온 것도 좋구요. 예전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따위의 신자본주의 표상같은 표현으로 서민들을 짜증나게 만들던 광고보다 훨씬 좋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서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때로는 국민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설교까지 하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어쩔 수 없이 싫군요. 얼마 전 '멀리 있는 당신에게 향기를 보내고 싶다' 는 감동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던 한 섬유유연제 회사도 알고 보면 회장님이 걸핏하면 임원들을 폭행하고 청부폭력까지 행사해 매번 합의금을 물어주느라 바빴던 어처구니 없는 진실이  숨어 있었죠. 광고 캠페인이 좋다고 회사까지 훌륭한 건 아닙니다. 광고는 좋지만 그 브랜드는 싫다...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광고인의 딜레마로군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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