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오학년 때 담임 선생은 참 말씀을 재밌게 하는 분이셨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이태리타올'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깔깔이 치마'가 대유행을 한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누군가 뒤늦게 깔깔이 천을 잔뜩 수입해 놨는데 다음 해 여름엔 유행이 지나는 바람에 더 이상 깔깔이치마를 찾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판단 착오로 많은 빚을 지게 된 사업가는 자살을 결심했단다. 집에서 목을 매려다가 죽기 전에 목욕이나 하고 깨끗하게 죽자, 라는 생각이 들어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마침 깔깔이 천이 눈에 띄길래 아무 생각 없이 살갗에 갖다 대보니 때가 국수처럼 밀리더라는 것이다. 그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다! 그렇게 해서 이태리타올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물론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와 내 친구들은 정말로 넋을 잃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구라나 스토리텔링이란 이런 것이다. 극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반전이 있고 적당한 교훈까지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니, 만드는 게 아니라 찾아야 한다. 우리 안에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고 우리 곁에도 사연들은 널려 있다. 우리가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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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하죠. 

여기 그런 거짓말이 있습니다. 

허쉬 초콜릿 광고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아빠 테드. 딸인 스칼렛이 할 얘기가 있어 다가가지만 아빠는 미안한 미소만 지은 채 계속 일을 합니다.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스칼렛이 어디론가 가게로 들어가서 주인과 상의를 합니다. 아빠 테드의 등신대를 만드는군요. 등신대기 그럴듯해 보이는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는 "안녕하세요,테드."라고 인사까지 합니다. 


스칼렛은 등신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테드의 화상회의 파트너들은 테드의 등신대를 보고 열심히 회의를 진행하고 있고 스칼렛과 테드 부녀는 그들 몰래 주방에 가서 허쉬 초콜릿으로 만든 간식을 즐기고 있군요. 행복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Hello Happy, Hello Hershey's'라는 자막이 뜹니다. 



때로는 영화처럼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광고들이 있습니다. 이 커머셜 필름도 2분이 넘는 작품인데 따뜻하고 유려한 화면 구성 덕분에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이 주는 작은 행복. 거기엔 딸의 따뜻한 마음과 유쾌한 상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어때요, 이 정도면 허쉬 초콜릿과 행복을 같은 문장 안에 나란히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7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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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의 소설 <미인도>를 읽었다.

한 노인이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는데 몸을 뒤져보니 대학생 학생증이 나왔고,지문을 감식해 보니 놀랍게도 그 학생 본인이 맞더라는, 신기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중편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신동으로 유명했던 전아리는 예전에 박웅현 ECD와 함께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한 적도 있는 젊은 작가인데 우리집에도 <즐거운 장난>이나 <시계탑> 같은 단편집이 있다.

동양화과 다니는 박성우라는 남자애가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로 누군가의 별장을 지켜주러 갔다가 노골적인 춘화로 가득한 노인의 방에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어떤 섬이더라는 구운몽 같은 이야기다. '미인도'라 불리는 그 곳은 한복을 입고 옛말투를 쓰는 젊고 아름다운 미녀들로 그득한 섬이었는데, 여자들은 한결같이 새로 온 남자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어떻게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색정적인 기운이 넘쳐나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떤 남자든 누군가와 한 번 합방을 하면 그 순간 섬을 떠나야 하는 얄궃은 시스템이 문제였다. 그런데 웃기는 건 합방만 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연애나 섹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인터코스'만을 피해 그 상황을 오래오래 즐기려는 야리꾸리한 상황들이 속출한다. 성우는 그 곳에서 누군가의 정사를 훔쳐보다가 그림 잘 그리는 게 탄로나는 바람에 섬 여인들에 의해 돌아가며 '주문제작 춘화'를 그리며 살게 되는데... 풋풋한 야설 같은 이 이야기는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스피디한 글쓰기에 힘입어 너울너울 단숨에 읽힌다. 한여름 납량특집극을 시청한 것 같은 알싸한 느낌의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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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을 그리는 이화여대 교수이자 작가인 조덕현이 어느 날 인터넷에서 조덕현이란 이름을 발견한다. 영화배우 조덕현이다. 작가 조덕현은 배우 조덕현을 만나 가상인물 조덕현(1916~95)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한다. 일제시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조덕현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1960년대 한국 영화계도 전전하다가 결국 독거노인으로 쓸쓸하게 죽는 최후까지. 이야기 구성에는 소설가 김기창이 합류했다고 한다. 그걸 연극무대처럼 만들어 전시를 한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읽었다. 이런 게 스토리텔링이지. 재밌을 거 같다. 10월 25일까지란다. 일민미술관. 보러가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312145275&code=9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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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등을 쓴 위대한 소설가지만 동시에 [소설의 기술], [커튼] 등을 쓴 뛰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같은 사람이 썼더라도 소설과 에세이는 다르다. 그래서 그가 에세이에서 밝혀놓은 개인적 체험들과 소설 작법, 그리고 사람과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과 유머 등이 소설에서는 과연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읽는 것은 그의 책들을 더욱 즐겁고 고급하게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소설이 2차원의 영역이라면 영화는 분명 3차원의 영역일 텐데 그가 쓴 소설은 영화화되면서([프라하의 봄]이라는 멋진 영화를 물론 좋아하지만) 오히려 그  입체감이 사라지고 이미지와 캐릭터만 강렬하게 남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아마 아직도 소설이라는 장르만이, 또는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역설하는 증거가 아닐까. 조지수의 장편 [나스타샤]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군가가 잘못 영화화 하기라도 한다면 캐나다의 광활한 풍광과 조지와 나스타샤의 사랑 이야기만 덩그라니 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나스타샤]를 쓴 소설가 조지수는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조중걸의 필명이다. 서양철학사와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학자이며 이미 우리집 책꽂이에도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일급 에세이스트지만 작년에 아내의 권유로 사놓았던 이 소설책은 분량이 너무 많고 또 앞부분의 문장들이 좀 딱딱해 보여 몇 페이지 읽다가 덮은 뒤로 그동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초 회사 일이 좀 한가해진 틈에 우연히 펼치는 바람에 그야말로 며칠동안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이야기는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다가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는 33세쯤의 조지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캐나다 웰드릭이라는 도시에서 호의적인 친구들과 어울려 생활하고 있는 이 남자는 강의 준비와 저술 활동 이외에는 주로 플라잉 낚시를 즐기는 데 거의 모든 돈과 시간을 쓰는 바람 같은 자유인이다. 낚시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위이자 생활이다. 왜냐하면 플라잉 낚시는 그저 물고기를 낚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삶에 의미를 주고 저마다에게 영감을 주는 철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낚시에 대한 묘사와 보트, 그들의 커티지, 심지어 자비를 들여 낚시터에 건설하는 작은 수력발전소 등에 대한 글들을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누구나 당장 캐나다로 달려가 광활한 호수변에 서고싶은 충동이 일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어떤 시퀀스의 연속으로 이해하기 쉽다. 우연히 주인공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고 갈등구조와 위기를 겪다가 결국 결말로 치닿게 되는 담백하고 전형적인 플롯 말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그 구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철학자 김용규가 쓴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보라. 이 소설은 과학자인 아빠를 찾아 나서는 알도의 모험담임과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철학적 개념과 심리학적 고찰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지식의 라이브러리다. 조지수의 소설 또한 자칫 줄거리만 놓고 보면 꽤 단순한 외국 체류 경험담이나 좀 특이한 사랑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심지어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나스타샤’라는 여인의 등장도 무려 200페이지가 넘어서야 시작된다. 그러나 그 큰 이야기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작가의 눈부신 철학적 사유와 통찰력 있는 담론들은 이 소설을 아주 풍부하고도 탄탄한 교양서이자 지적 모험담으로 만들어 준다. 


나는 특히 저자의 간결하고 단호한 문체와 정치적 올바름에 반하게 되었다. 여기서 얘기하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은 진보나 보수 또는 어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따위의 좁은 개념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인류학적 관점으로 모든 현상을 공평하게 보려 노력하면서도 사안별로 그때마다 분명하게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낚시터로 향하는 고속도로 중간 매번 들르는 케빈의 커피숍에서 나스타샤라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인을 만난 조지는 설명할 수 없는 측인지심에 이끌려 그녀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오게 되고 곧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나스타샤는 분리독립주의자인 남편을 돕다가 러시아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과 폭력에 시달린 뒤 빈털터리로 탈출한 여인이었는데 선량한 커피숍 주인 케빈이 점원으로 채용했던 것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가만히 서있기조차 힘들었던 그녀는 조지의 도움으로 웰드릭 주민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견뎌내며 차츰 건강을 되찾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고국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죽었을지조차 모르는 남편 보리스와 아들 아니카가 있다. 



30대 초반의 토론토 대학교수, 어린 시절의 유학, 그리고 낚시와 강의, 저술활동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임이 거의 확실하다. 구체적인 사건들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작가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서 소설 곳곳에선 교육, 인종차별은 물론 역사, 성공, 사랑, 품위, 고결함 등에 대한 생각들이 거의 소설가의 육성 그대로 흘러 나온다.  또한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놓은 철학과 예술에 대한 가치와 그것을 즐기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조지는 나타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를 읽게 하고 더 나아가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포크너를 읽는 행복을 누리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오페라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도 설명해 준다. 여기까지가 그들의 행복한 시절이다. 선천적으로 총명하고 밝은 나스타샤는 조지가 그려주는 지도대로 새로운 삶을 부지런히 찾아가지만 운명이 예고해 놓은 비극까지 피해가지는 못한다. 



조숙한 수학 천재였으며 여호와의 증인인 동료 교수 그렉, 억만장자이자 허영 덩어리인 유태인 변호사 매튜, 조지의 아이디어로 지렁이 재배에 성공해 큰 부자가 된 뒤 등을 돌리는 김유진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 각각의 이야기를 읽는 맛도 각별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나스타샤와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지 않는 조지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깊은 시름에 빠져 알콜중독자가 된다. 


어떤 인생도 늘 행복할 수 없으며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소설가 조지수는 인생엔 목적이 없고 과정만 존재한다고까지 말한다. 삶은 허무하지만 그것이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라는 그의 생각은 산문집 [One Man’s Dog]에도 잘 나타나 있다. 



무려 719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이다. 책을 읽으며 많은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어 표시를 했고 밑줄을 그어야 했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 문장을 다시 읽겠다는 나와의 약속이다. 결국 나스타샤는 자살하고 조지도 슬쓸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들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성장했음을 무언 중에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건 사랑 이야기를 통해 펼쳐진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긴긴 이야기 끝에 그 성장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혼자 새벽안개를 맞는 것처럼 알싸한 뿌듯함을 안겨준다. 


누군가가 '네가 읽은 책 중에 정말 신나게 재미있게 읽은 현대소설 몇 권만 얘기해 봐'라고 하면 나는 그동안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그리고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또는 [인생],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 레이먼드 카바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을 비롯해 윤대녕, 김훈, 배명훈의 몇몇 단편과 중편들을 추천했었다. 이제 그 목록에 하나를 더 얹어야겠다.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조지수의 소설 [나스타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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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던 아내가 전해준 전미옥 대표의 [스토리 라이팅]을 오며가며 71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요즘은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스토리텔링 또는 스토리 라이팅이 뭐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차별화된 비즈니스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나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스토리가 있는 글로 엮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 자신의 글에 맞는 스토리를 찾는 법, 남의 스토리를 내 글로 끌어오는 법, 메모하는 법, 풍부하게 예시를 드는 법 등 우리가 일하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글쓰기의 방법론들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습니다.전미옥 대표가 워낙 강의도 잘 하고 글도 쉽게 쓰는 분이라 그런지 책이 참 잘 읽히네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으려면 자기 스스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자기 일상이 즐겁지 않은데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다. 자신을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는 사람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재미있게 말하는 재능이 없다거나 잘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은근하게 나에 대한 공격을 할 때, 버럭 화부터 내지 않을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가?’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도 이렇게 실용적인 면을 넘어 본질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두고두고 수첩 펼치듯 자주 꺼내 읽으면 더 좋은 책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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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제품을 파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제품과 그 제품에 얽힌 사람에 대한 스토리를 파는 겁니다. 스토리텔링은 참 어렵죠.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쉬운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수명이 십 년이라 자랑하고 싶은 LED전구의 제품력을 이렇게 애틋하고 정감 넘치게 표현할 수도 있다니요. 


오늘도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아 야근 중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만난 도시바 LED전구 광고입니다. 전에도 몇 번 본 작품인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또 좋군요. 명징한 스토리 라인에 2D 애니메이션 영화 뺨치는 디테일, 사랑스런 음악까지. 언제 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2011년 칸광고제 OUTDOOR부문 GOLD/ 2012년 클리오 광고제 필름부문에서 bronze를 수상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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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짧은 글 짧은 여운 2012. 3. 23. 13:27



행복은 사소한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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