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6bylpWdfFI



[록키]를 다시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하길래 아내에게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마침 그날은 개봉 전날이었고 그 이후엔 계속 회사 일이 바빠서 예매를 못하고 있다. 다음주엔 꼭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보고야 말 것이다. 

내가 '록키 시리즈'를 만나 것은 불광극장에서 본 [록키2]부터였다. 고등학교 때였나보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고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록키]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알게 되었고 텔레비전에서 성우들의 더빙판으로 이 영화를 한 번 본 후 홀딱 빠지게 되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더 부은 것은 대학생 때 읽었던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록키였다. [영자의 전성시대]로 유명한 조선작이 예전에 쓴 단편소설 <아메리카>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술집 아가씨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무슨 제목인지도 모르고 대낮에 변두리 극장에 들어가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록키였다. 신나게 권투만 하는 영화인줄 알았던 주인공은 마지막에 록키가 경기에서 지고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여자친구인 에드리안을 애타게 찾는 장면을 보면서 대책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에드리안, 아아 록키. 아아 에드리안.  영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는 사실만이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이 영화는 실패담이다. 나이 든 스파링 파트너 출신의 퇴물 복서가 챔피언의 쇼맨십 덕분에 모처럼의 기회를 얻었지만 처절하게 싸운 뒤 결국은 장렬하게 판정패 한다는 이야기. 물론 사람들은 주인공이 실패하는 이야기보다는 성공담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모든 진정성 있는 실패담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가 김탁환은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 아니라 간절한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실베스타 스텔론이라는 이야기꾼이 작두를 탔을 때의 이야기가 맞다. 정말 간절하고 궁핍했던 시절에 그가 직접 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베스타 스텔론은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경기를 TV로 보다가 뭔가 느낀 게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단 사흘만에 [록키]의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람보] 시리즈의 무식한 근육질이나 최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2]에서 뭉툭한 몸매와 목소리로만 연상되는 실베스타 스텔론도 사실 젊었을 땐 대학까지 나온 날렵한 인텔리였다. 영화를 하고 싶어서 도시로 나와 험한 일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슬라이(그의 애칭)는 '록키'의 각본이 헐리우드를 떠돌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도 타협을 하지 않는 뚝심을 보였다. 시나리오에서 흥행의 단초를 예감한 제작자들은 알 파치노 같은 당시 스타나 권투선수 출신의 라이언 오닐 등을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으나 스텔론이 결사 반대해서 결국 그가 주연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작품 안에 나오는 낡은 아파트 등도 실제 슬라이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애드리안과의 스케이트장 데이트 장면도 돈이 없어서 야밤에 찍게 되었는데 이건 가난한 록키가 밤 늦게 스케이트장 관리인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링크 전체를 데이트장으로 쓴다는 순애보적 아이디어에 현실성을 더하는 멋진 설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실제 록키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슬라이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온 덕분에 영화는 수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고 실베스타 스텔론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어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실패담이면서 동시에 성공담이기도 하다. [록키]에 비하면 그 뒤 나온 2편 3편 등은 갈수록 기름기가 끼고 거만함이 느껴져 록키라는 복서도 그저 하나의 기름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밴드의 모든 데뷔앨범이 훌륭했던 것처럼 실베스타 스탤론의 실질적인 데뷔영화 [록키]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이런 전설을 극장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Posted by 망망디
,


https://www.youtube.com/watch?v=W9EHsn-9oto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홍보영상에 인공지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이라죠? 저희는 수십 년 후 미래의 세계에서 인공지능의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A.I들이 인간과 전쟁을벌였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던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에서 해마다 만드는 '국가이미지' 필름을 이번에 저희 회사가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쟁PT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따내긴 했지만 막상 제작 단계에 들어서자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올해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해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동시에 올림픽 홍보까지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는 문체부 담당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몇 달 간 회의를 거듭한 결과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A.I)들이 인간들과 십 년 전투를 벌여 패배한 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A.I '케이'가 인간에 대해 연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잔치'라는 축제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어쨌든 저희가 꾸민 얘기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들에게 처절하게 패배합니다. 화력으로는 우세했던 인공지능들이 결국 인간을 이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인공지능은 가지고 있지 않은 마음이나 열정, 또는 평화에 대한 인간들의 열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모델료가 굉장히 높은 유명 한류스타(영화배우였습니다)가 저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마음에 든다며 기꺼이 출연료 없이 A.I역할을 맡아주겠다는 러브콜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결국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오디션을 거쳐 가장 신비롭고 무국적의 A.I스러운 인물을 뽑을 수 있어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인입니다-그래도 우리나라 홍보물인데 금발의 외국인을 쓰는 건 좀 그렇죠). 어제부터 유투브에 릴리즈가 되었는데 결과가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호의적인 반응이 들려오고 있어 다행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작가나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고 이 작가가 그랬다. 예전에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소설가 김훈이 추천한 50권 중 이 책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느낌은 '김훈은 후배 작가들의 책도 참 많이 찾아 읽는구나' 정도였다. 그러면서 책 제목을 메모까지 해놨었는데 왜 정작 찾아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름이나 그 작가가 지닌 분위기가 지나치게 ‘운동권스럽지 않나’ 하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을  혼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선옥은 왠지 뭔가 진지할 것 같고 거룩할 것 같고 게다가 작가의 고향이 전라남도이니 왠지 묵직한 주제의식이나 치열한 의무감을 가졌을 것만 같고…그래서 자꾸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뤘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서점에서 만났을 때 수채화로 그려진 표지가 너무 ‘나이브’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 이 정도면 병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이비인후과 갔다가 들른 강남역 알라딘에서 이 책을 다시 보고는 ‘책값도 삼천 원밖에 안 하는데 어디 사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집어들었다. 그러나 웬걸, 책을 읽기 막상 시작하자마자 너무 재미있어서 출퇴근길과 휴일 지방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쓸 데 없는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려주는 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1980년대 광주 언저리에 살던 파릇파릇한 청춘들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해금이라는 여자애다. 해금이 위로는 언니가 셋 있는데 그 이름이 순금이 정금이 영금이다. 할아버지가 비단금(錦) 자를 정해놓고 이래저래 한자를 한 개씩 돌려 이름을 짓다가 네 번째도 또 딸입니다,라는 아들의 소릴 듣고는 “니무랄, 암거나 허라고 혀’라고 화를 내는 바람에 ‘혀금이'가 될 뻔 했는데 그나마 애 아버지가 바다 해(海)자를 쓰는 바람에 해금이가 되었고 그 다음에 태어난 막내딸은 드디어 '비단 금'자를 벗어나 영미가 되는 바람에 해금이만 가장 억울하게 되었다는 조금 웃기는 사연이다. 해금이는 예쁘지도 공부를 썩 잘하지도 않지만 속이 깊고 착한 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해금이와 그의 친구인 경애, 승희, 정신이, 수경이, 그리고 4.19기념일에 도청 앞에서 우연히 만나 음악실에 가는 바람에 평생 친구가 된 남자애들 승규, 진만이, 태용이, 만영이 들의 ‘청춘스케치’인 것이다. 

어디서나 스무 살 무렵의 이야기에는 늘 피끓는 우정과 연애가 있고 꿈이 아직 뭔지도 모르면서 내지르는 무모한 도전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있지만 이들이 있던 곳은 80년대 광주였으니 그 남다르고 슬프고 웃기고 아스라한 사연들이야 오죽하랴. 작가는 하나하나 애정이 가는 친구들의 사연에다 그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얹고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와 쌍욕까지 곳곳에 뿌려서 다 읽고 나면 들큰하면서도 아주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니,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들려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혹시 작가 친구들의 실제 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그들이 방금까지 살았던 것마냥 생생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모두 평범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자기들이 얼마나 예쁜 나이인지 모르는. 그러다가 광주항쟁 때 날아온 유탄에 경애가 맞아 죽고 이에 충격을 받은 수경이가 자살을 하고 집안꼴이 마음에 안 들어 밖으로 나돌던 승희는 성질 급하게 스무 살에 애를 낳는다. 승희를 좋아했던 진만이는 화를 내고 승희를 진짜로 좋아했던 만영이는 승희의 아이를 거둔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던 정신이는 대학을 그만 두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고 서울대학을 다니며 힉생운동을 하던 승규는 남산으로 끌려가 죽도록 맞은 뒤 군대로 끌려갔다가 자살을 한다. 자살을 할 애가 절대로 아닌데. 그 중간에 해금이도 '나타나기만 하면 세상이 환해지는’ 이환과의 첫사랑을 경험하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또한 얼마나 불안정하고 가뭇없던가. 살아남은 아이들끼리 모여 비명에 간 친구 승규의 장례를 치루는 장면이 마지막이간 하지만 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그들이 방금 아주 힘든 인생의 쓴맛을  봤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꽃향기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뚜벅뚜벅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앞부분에 발췌해 놓은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일부분은 이 소설 제목의 연유를 밝히는 것과 동시에 해금이를 비롯한 주인공들에게 대한 작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것으로 읽힌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는 언제였던가.그 때 당신 곁에는 누가 있었던가.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 불행했고 
나는 너무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_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Posted by 망망디
,


MBC라고 하는 한심하고 야비한 방송사를 그래도 시청자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한도전’이나 ‘복면가왕'과 같은 킬러 콘텐츠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PD수첩’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황우석 사건 등등에 대한 정권의 입맛을 해치는 취재와 방송 이후 PD수첩의 주요 PD들이 좌천되고 해직되었다. 뉴스타파로 간 최승호 PD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는 뉴스타파에서 일하면서 만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이상한 사건을 한 번 깊게 파보기로 결심한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라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21세기 액션 블럭버스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다분히 과장된 유머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리 틀린 타이틀도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일단 ‘스파이’가 등장한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강력한 방어기제가 있으며 그걸 파헤치는 PD의 담대함은 ‘저러다 어디 한 군데 크게 다치는 거 아냐?’라고 염려가 될 정도로 ‘무대뽀’일 때가 많다. 이 영화는 최승호라는 ‘공익적인’ 인간의 집념이 어떻게 실천적으로 진행되고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결과물이다.

북한에서 살았던 유우성의 동생 유가려는 오로지 친오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이유로 서울에 온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와 국정원은 그녀를 합동신문센터라는 곳으로 데려가 6개월 간이나 감금한 채 협박과 회유, 폭행을 일삼는다. 하이힐이나 구둣발로 자신을 때리다가 조금 후엔 같이 눈물을 흘리고 껴앉아주는 ‘언니’와 ‘큰삼촌’ 수사관들의 농간에 판단력이 흐려진 그녀는 결국 '오빠를 위해’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당연히 그것 때문에 유우성은 체포되어 감방으로 끌려간다. 아무래도 이 나라엔 ‘간첩’이 꼭 필요한 모양이다. 영화 곳곳에 재판정에서의 실제 녹음 분량이 나오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살살 유도하는 검사의 목소리는 간교하기 이를 데 없고 기가 막힌 유우성의 목소리와 주눅이 든 유가려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차 있다. 최승호PD팀과의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던 유가려는 결국 오빠를 만나지도 못하고 중국으로 추방되고 만다. 공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에 대고 힘없이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하다. 

모든 것은 국정원이 꾸민 짓이다. 유우성 사건을 취재하다가 만난 한종수 사건(본명은 한준식. 역시 간첩으로 몰려 수사를 받다가 감옥에서 자살했고, 무연고자 묘지에 묻혀있다)도 마찬가지다. 간첩은 해마다 생겨났고 그때마다 억울한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70년대 대학생 간첩사건이나 유학생 간첩사건 얘기가 나올 때 등장하는 남산의 살벌한 지하 고문실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최승호는 안기부를 찾아간다. 법원 앞에서 몇날며칠을 기다려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검사를 인터뷰하고 유가려를 때렸던 ‘언니’에게 말을 건넨다. 중국으로 날아가 유우성이나 한준식의 주변인물들을 만난다.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열여덟 살짜리 한준식의 딸과 통화하며 뒤늦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는 대목에선 정말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합동신문센터는 영화팀이 묻는 것에 대해 ‘일체에 대한 아무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들이대는 카메라를 손으로 막고 끄라고 고함을 치는 건 어디서나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당장 달려들어 깨버릴 기세다. 그래도 최승호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에게 달겨들어 유우성 사건에 대해 묻고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예전 대공분실 팀장이었던) 김기춘에게 가서 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 묻는다. 당신이 직접 쓴 메모가 여기 있지 않냐고. 지금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용의는 없냐고. 당신은 대답할 의무가 있다고. 그러나 묵묵부답. 소이부답. 외면이 이어진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왜 이러세요? 당신 누굽니까. 명함을 주십시오. 적반하장. 철면피…이것만이 그들의 대답이다.  원세훈과 그의 부인은 결국 우산으로 카메라를 가려버리고 공항에서 만나 처음엔 반가워하던 김기춘은 최승호의 정체를 알고나자 굳은 얼굴로 돌아선다. 

영화의 뒷부분에 최승호 팀은 서울대를 다니다가 끌려가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한 뒤 정신병에 걸려 평생을 허비한 재일교포 김승효를 찾아간다. 40년 만에 찾아간 친구들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던 김승효는 차츰 기억이 돌아오자 수십 년간 쓰지 않았다는 한국말로 ‘한국 무서워’, ‘한국 나빠’를 중얼중얼 외친다. 누가 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영화 말미엔 지금까지 있었던 간첩사건 일지가 연도별로 쭈욱 나온다. 모든 간첩사건 끝엔 ‘무죄 판결’이라 씌여 있는데, 지금까지 해마다 빠지지 않고 간첩 사건이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이 기록에 의해 밝혀진다. 신기하게도 중간에 딱 십 년 간만 간첩사건이 없었는데 그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다. 그때만 북한이 정신을 차려 간첩을 양성하지 않았던 것일까. 간첩은 북한이 만드는 걸까, 안기부가 만드는 걸까.


서울극장에서 있었던 시사회장엔 영화 상영 직전 최승호 PD가 나와 인사를 했다. 보통 영화를 개봉하고 무대인사를 할 때는 감독이 주연배우들을 데리고 나와 인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모두 고위직인데다 한결 같이 바쁜 사람들이라 나오지 못했노라 너스레를 떠는 그는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뉴스타파’ 회원들과 이름 없는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도 [다이빙벨]도 멀티플렉스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좌절됐다. 영화를 만들어도 극장을 잡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철저하게 상업논리로 무장한 멀티플렉스 시스템을 뛰어넘는 방법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 뿐이다.

엔딩 크레딧엔 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이 가능하도록 펀딩을 해준 사람들의 명단이 ㄱㄴㄷㄹ순으로 나온다. 길고 긴 그 명단이 우리에게 남은 힘이고 시대를 바꾸는 희망이다. 영화를 같이 본 배우 김혜나는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는 심정을 토로했고 배우 박호산은 쉽게 흥분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영화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으나 또한 그것 때문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는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수를 치는 것으로 제작진의 노고를 치하했다. 

논리적인 이론과 언변으로 보는 이를 설득하는 텍스트가 있는가 하면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강한 펀치를 날리는 영화도 있다. 다큐멘터리 [자백]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괜찮다고 생각하냐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물론 그 대답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로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골치 아프고 힘든 것일수록 외면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러나 두 눈 부릅뜨고 현실과 마주하는 사람이 있어야 희망의 불씨는 생겨난다. 어렵지만 지금 그런 걸 만드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 영화 [자백]이 있다. 





Posted by 망망디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1243.html



김훈이 쓰면 '추석 에세이'도 이렇게 다르다. 뭐 꼭 이 글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엔 기자들의 의무감과 클리쉐가 만들어내는 한가위의 풍성함이나 가족애에 대한 기대따위는 없다. 서울이 고향인 김훈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향수 대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으로 생각의 물꼬를 튼다. 임금이 도망가자 격분하여 경복궁을 불태웠던 백성들, 그리고 돌아와서 전소된 성터를 끼고 앉아 그냥 살았던 당시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던 김훈은 어린 시절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자신의 동네를 회상한다. 박완서의 <그남자네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였고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고단했던 고향의 모습이다. 뼛속까지 리얼리스트인 그는 "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읽을 때마다 내 고향의 저 더러운 하천을 생각한다."라고 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눈은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로까지 이어져 머문다.


한가위라고 갑자기 고향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냉랭하던 가족관계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게 아니듯이. 이래저래 난 명절이 싫다. 일년에 큰 명절이 두 번 있고 내 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50세니 평생 백 번 가까이 명절을 싫어하면서 살아왔구나. 올 명절도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겠다.
Posted by 망망디
,



안정효의 소설 [하얀전쟁]에는 베트남 전쟁터 후방에서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던 정훈병들이 정신교육 시간에 대한뉴스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엔 단지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만으로 다들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조금만 내용을 뒤집거나 주인공의 설정을 살짝만 바꿔도 이상하게 새로운 재미가 생겨난다.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는 '바람둥이'라는 주인공 설정을 남자 대신 여자로 바꿈으로써 색다른 재미와 깊이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바람둥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뭘까. 바로 거짓말이다. 무용을 전공한 배우 지망생 은희는 연기 선생한테는 표정이나 대사가 뻣뻣하다고 야단을 맞지만(연극과 영화에서 맹활약 중인 이승연 배우가 연기 지도선생으로 나온다) 실생활에서는 남자들에게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 한다. 거짓눈물을 순식간에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말하는 톤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자신이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길을 물어온 일본 소설가 료헤이에게는 자신이 '거짓말 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며 자랑까지 하니 말이다.

료헤이와 헤어진 은희는 남자친구인 현오를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간다. 아침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제에 썬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약속장소에 나타난 현오를 비웃는 은희. 차라리 모텔에서 옷 다 벗고 있을 때가 더 멋있다는 농담을 날리자 현오는 자기가 데려간 곳은 모텔이 아니라 '부티크 호텔'이라며 화를 낸다. 남자친구라고는 하지만 서로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사이라는 게 금방 드러나는 허약한 장면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소한 말실수로 크게 싸우고 헤어진 은희는 혼자 남산 벤치에 앉아 사진을 한 장 찍어 무심코 트위터에 올리는데 그걸 보고 냉큼 운철이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은희와 사귀었던 이혼남이다. 은희는 그 남자와 커피를 마시다가 결국 이혼한 전 부인과 다시 합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격렬하게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이 영화는 하룻동안 북촌과 남산을 오가며 세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은희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문제는 은희가 두 남자 사이에서 연기를 펼치다가 어느 순간 딱 셋이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오가던 남산 산책로에서. 현오와 운철은 서로 자기가 진짜 남자친구, 또는 더 오래된 남자친구라고 우기다가 그동안 은희가 자기들에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양다리를 걸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희는 미칠 지경이다. 자기도 도무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모순된 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나의 모순됨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다니. 정말 아까 연기 지도선생과 함께 연습하던 대사처럼 하나님이 내게 오늘 최악의 하루를 주기로 아주 작정을 하신 모양이구나.

화가 난 현오와 운철은 졸지에 피해자 연합으로 의기투합해 내려가서 소주나 마시자고 한다. 가기 전에 현오가 "너는 거기서 그냥 땅 파고 뒈지시던가"라고 모진 소리를 내뱉지만 달리 할 말이 없는 은희는 "어, 그럴게."라고 대답할 뿐이다.

나는 사실 한예리처럼 별로 예쁘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는 좀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은희역으로 한예리 이외의 배우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딱 맞는 옷이다. 같은 여자 바람둥이라도 홍상수 감독이 만든 [우리 선희]의 정유미는 남자들이 더 설쳐서 저절로 그렇게 된 수동형 바람둥이이라면 이 영화의 은희는 스스로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능동형 바라둥이라 더 통쾌하고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그리고 한예리는 이와세 료와 영어 연기를 펼치는데 그게 아주 자연스럽고 좋다. 한 마디로 연기를 참 잘하는 똑똑한 배우인 것이다.

적은 예산 때문이겠지만 이 영화는 한예리, 권율, 이희준, 이와세 료 뿐 아니라 남산의 산책로와 서촌의 골목길도 어엿한 주인공으로 엔딩 크레딧에 오를 만하다. 솔직히 김종관의 예전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핸드헬드가 난무하는 바람에 보다가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카메라가 매우 안정적이고 정적인 화면들이 아름다워서 아주 놀라웠다.

적은 예산 덕분에 하룻동안 벌어진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었는지는 몰라도 연기와 극본, 카메라까지 좋은 영화라 누구에게든 한 번 보라고 자신있게 권할 만하다. 게다가 제목은 '최악의 하루'지만 영화 말미엔 이와세 료와의 마지막 대사들을 통해 어렴풋이 해피엔딩을 암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아마 그래서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한 주가 저물어가는 금요일 저녁쯤에 보면 최적일 영화'라고 썼던 것이리라.
Posted by 망망디
,



창작자들에게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은 누구일까. 아마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전해준 스승, 그리고 걷는 법부터 시작해 창작의 방법론까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다시 배운 제자. 서로는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이면서도 주종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자들에게는 제 스승을 넘어서야 하는 무의식적인 의무감까지 있다. 흔히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스승을 존중하고 어려워하는 말로 해석하지만 사실은 스승이 이룩한 길을 피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애증의 결정판 같은 이야기가 있다. 토종 연극 <도둑맞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을 쓸 정도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가 된 서동윤은 어느 날 자신의 보조작가였던 조영락에게 납치를 당한다. 영락은 스승의 방과 똑같이 꾸민 곳에 그를 집어넣고 최소한의 음식과 커피만 제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쓰라고 위협한다. 주제는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살인을 하고 그의 작품을 훔친다'이다. 동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게 다 무슨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제자에게 욕을 하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휠체어에 자신의 두 팔을 결박한 채 골프채를 휘두르며 달겨드는 영락을 본 후로는 쉽게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자, 좋든 싫든 살기 위해선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얘기라고? 그렇다. 모티브만 놓고 보면 캐시 베이츠가 출연했던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미저리>가 떠오른다. 그러나 모티브는 비슷해도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에 각 작품이 도달하는 위치는 사뭇 다르다.


이 연극은 원래 영화를 위해 씌여진 글(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심리 드라마'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미저리'를 생각하면 이 컨셉은 스릴러나 심리 드라마로서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글을 쓰던 서동윤이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자신의 시나리오에 애착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영락과 함께 '좋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급속도로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시나리오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맨 처음 수업 시간에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 작가가 누구인가를 묻는 장면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영화지식 겨루기'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오타쿠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즐거운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동윤을 위협하면서 예전 스승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지금 동윤이 쓰는 시나리오에 적용시키며 비웃는 영락, 그리고 그에 맞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동윤. 이 연극은 어쩌면 그런 두 남자의 불꽃 튀는 화학작용이 가장 큰 '스펙터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장르적 분류는 작가를 위협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글을 쓰게 하는 미친 팬심 스릴러 <미저리>보다는 기존 공포영화의 온갖 룰들을 들먹이며 가지고 놀던 <스크림>의 악동들 쪽에 더 가까운 듯하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객석을 둘러보니 오른편 뒤쪽에 배우 송영창이 혼자 앉아 있었다. 더블 캐스팅 중인 배우가 다른 팀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며 자신의 대사도 한 번 더 점검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날 밤 연극이 끝나고 서동윤 역을 맡은 박호산 배우와 술을 한 잔 하며 들어보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캐스팅 중 송영창 박용우 팀은 '클래식'에 가깝고, 자기네팀은 '재즈' 분위기를 내기로 해서 똑같은 연출가와 각본이라도 아주 다른 연극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고 한다. 욕심 같아서는 다른 팀의 공연도 한 번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내가 뭐 평론가도 아니고 또 그렇게 시간을 낼 자신도 없다. 사실은 그날도 갑자기 업무가 길어지는 바람에 야근하는 동료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치듯이 뛰쳐나와 겨우 관람한 연극이었으니까.


얼마 전 성북동으로 이사를 와서 새로 생긴 이웃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박호산 배우였다(도대체 우린 이게 무슨 인복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같이 연극을 본 아내는 박호산 배우가 '너무도 능글맞게 연기를 잘 하는 바람에 무대 위로 달려가서 머리를 한 대 탁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며 웃었다. 노련하고 안정감 있는 배우와 연출의 힘이 균형감 있게 느껴지는 흐뭇한 공연이었다. 다만 소극장이라고 하기엔 공간이 약간 크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소극장 공연은 관객이 바로 옆에서 피부로 느끼는 맛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9월 1일부터 25일까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있는 충무아트센터 블루에서 만날 수 있다. 한가위 연휴 빨간날들 중 하루 골라서 이 연극을 한 번 보시는 건 어떨까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Posted by 망망디
,



오늘은 오랜만에 광고 얘기를 좀 해야겠네요. 바로 겐조가 새롭게 내놓은 향수 '겐조 월드' 캠페인입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 〈Her〉 등을 연출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작품인데, 한 마디로 기존의 향수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광고주의 생각이 웬만큼 열려 있지 않다면 시도하기도 힘든 작업입니다. 저도 페이스북으로 처음 보고 놀랐는데 인터넷을 조금 찾아보니 본 사람들마다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더군요. 


제가 잘 아는 감독님의 소개글에서 "예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만들고 크리스토퍼 월큰(Christopher Walken)이 출연한 Fatboy Slim의 Weapon of Choice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같은 감독이 연출. 그의 동생 Sam Spiegel이 작곡한 Mutant Brain을 OST로 사용했으며 동시에 곡의 뮤비이기도 하다"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밑의 URL을 누르시면 유투브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GmNwbWRKs



파티장에서 멀쩡하게 연설을 듣고 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울먹이며 밖으로 뛰쳐나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기괴하게 몸을 비틀면서 춤을 추는 이 광고, 확실히 뭔가 이상하고 충격적입니다. 조각상을 핧질 않나 경호원을 때려눕히질 않나, 하는 짓마다 이브닝드레스를 차려 입은 예쁜 여주인공이 하긴엔 굉장히 '또라이'스럽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을 위한 향수'라는 ‘Kenzo World’의 컨셉을 스파이크 존즈 감독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결과랍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광고야말로 분석하는 대신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감독도 감독이지만 연기를 한 여배우도 참 대단힌 것 같아요. 마가렛 퀄리(Margaret Qualley)라는 친구네요. 그리고 이 친구를 이 이상한 음악에 맞춰 미친 듯 춤추게 만든 사람은 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 뮤직비디오의 안무를 연출한 라이언 헤핑턴(Ryan Heffington)이랍니다. 




겐조는 신제품을 내면서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죠. 나이키 제품을 입거나 신는 사람은 왠지 그냥 승부에만 집착하는 대신 스포츠맨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 어디에선가 그걸 구현하고 있는 인간처럼 보입니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느껴지구요. 겐조도 자사의 제품을 쓰는 여성들에게 '난 굉장히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살고 그걸 즐기면서도 원할 땐 언제든 그곳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기질을 가진 사람이야' 이라는 포지셔닝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만약 맞다면 이게 바로 우리가 자주 말하는 '브랜딩'이라는 것일 테고요. 


‘Kenzo World’ 공식 홈페이지(www.kenzoworld.com/en)에 가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고 음악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화면 오른쪽 아래 그녀의 익살스런 표정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디테일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홈피에도 한 번 들어가 보세요. 






'광고인으로 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호 카피 이야기  (0) 2017.01.07
새해 편지  (0) 2017.01.03
첨단의 피곤함  (0) 2016.06.16
이세돌, 공익광고를 통해 경쟁을 이야기하다  (21) 2016.06.03
초콜릿이 주는 행복 - Hersheys : My Dad 편  (0) 2016.04.08
Posted by 망망디
,


루쉰의 [아Q정전]은 ‘아Q'라는 이름도 불분명한 개망나니를 내세워 근대 제국주의 앞에서 쩔쩔매는 중국인들의 내적 모순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다. 그냥 남들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니까 의무적으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어쩌다 친구와 이 작품 얘기를 하다가 “야, 근데 아Q 그 새끼는 착하지도 않잖아. 뭐가 불쌍해.” “아유, 그러게. 아Q는 잘 죽은 거야.” 같은 소리를 서로 주고받은 기억이 난다. 

김애란의 단편집 [비행운] 중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아Q 정전]이 생각났다. 택시 기사인 용대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멸시와 홀대를 받고 살아온 인물이다. 어느 집안에나 꼭 한 명씩은 존재하는 천덕꾸러기. 그런데 그 이유는 다 용대 자신의 처신 때문이다. 자기 형이 두부공장 하다가 말아먹고 도망 다닐 때 형을 좀 찾아봐 달라는 형수에게 용대는 오토바이 기름값을 달라고 했다가 욕을 먹었다. 누가 취직을 시켜줘도 진득하게 붙어있질 못하고 때려치우는 게 다반사인 성격이고 하다못해 형수가 밭애서 고추를 따고 있을 때도 종일 툇마루에서 기타를 치고 놀던 인사였다.

그런 인간이 기사식당에서 일하던 조선족 여자 명화에게 반했다. 어렵게어렵게 같이 외식을 하고 프로포즈를 하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 언제가 중국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명화는 암에 걸려 죽어버렸다. 용대는 명화가 죽은 후에도 쉬는 시간이면 괜히 중국어 회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택시 안에서 따라한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테이프에서 명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김태용의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오지 않는 현빈을 기다리며 “It’s been a long time...”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던 장면이 떠오르는 엔딩이다. 아Q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심지어 그에게 애정까지 품는 것이 문학의 위대함이 아니겠느냐고 쓴 글을 얼마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박웅현의 책이었던가). 그렀다면 그 얘기는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도 적용된다고 나는 믿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잘 쓰는 작가들이 참 많다. 


Posted by 망망디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원더플 라이프>였다. 상영관이 광화문 씨네큐브였는데 예매를 해놓고도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시간에 쫓겨 마구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헐떡이는 숨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지켜본 그 영화는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열흘 정도 림프계에 머물면서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무엇인지 반추해 보고 그걸 토대로 자기만의 단편 영화를 하나씩 찍는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일생을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으로 '도쿄 디즈니랜드에 갔던 때'를 꼽은 경우가 많았다는 기사에 충격을 먹어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는 후일담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아내는 원작소설을 읽은 것 같다고 한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죽음이든 죽음에 대한 생각이든 이 감독은 전혀 슬프지 않게 일상처럼 차분하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영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이 되었고 그 후로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등을 차례차례 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개봉한 그의 데뷔작 <환상의 빛>을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어제 보게 된 것이다. 영화는 아무런 이유 없이 3개월된 어린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스물여섯 살에 자살하듯 기차에 치여 죽은 남자 얘기로 시작된다. 망연자실한 아내. 그러다가 몇 년 후 아랫집 세탁소 아주머니의 소개로 멀리 바닷가 마을로 재혼을 하러 간다. 상대는 딸이 하나 있고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아이들도 여자를 잘 따르고 남자도 서글서글하니 잘 대해준다. 처음 남편이 죽었을 때는 도저히 못 살 거 같았는데 또 어찌어찌 다른 곳에서 정을 붙이고 살게 된다. 



여자는 전남편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는지 늘 궁금해 하지만 인생엔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 여자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전남편의 죽음에 대해 현재 남편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남편은 담담하게도 자기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여자는 어쩌면 지금 남편이 시아버지에게 들었다는(마치 사이렌의 노래를 닮은) 수평선 위 반짝반짝 빛나는 '환상의 빛' 때문에 그 남자가 그렇게 된 건 아닐까 그냥 짐작해 볼 뿐이다. 분명한 건 누군가의 죽음 뒤에도 다른 사람들의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걸 서두르거나 채촉하는 일 없이 카메라를 통해 천천히 바라볼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의 20자평을 찾아보니 그냥 다짜고짜 '환상의 힘'이라고만 쓴 평론가도 있고(진짜 이 영화를 본 건지 의심이 간다) '동전의 양면 같은 생사불이, 거기 아롱대는 빛의 매혹!"이라고 과대하게 의미부여를 한 사람도 있었다. '남겨진 사람의 통증. 답을 찾으려, 빛을 찾으려'라는 휘트먼의 싯구절 같은 평마저 있다. 내 생각엔 영화에 죽음이 나온다고 해서 그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엔 죽음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그 자체의 비장함보다 죽음 이후에도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따뜻하고 차분한 시각으로 관조하는 데 쓰임으로써 더 큰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악인이나 극적인 사건, 또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도 그의 영화는 언제나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이 영화는 만든 지 21년이나 된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내는 "저 어린 여배우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겠네..." 라고 혼잣말을 했다.  1995년 베니스 영화제 촬영상(황금오셀리오니 상), 카톨릭 협회상, 이탈리아 영화산업협의회 상을 수상하고,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도 모자라,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