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512112036545


가끔 휴일 새벽에 일어나 남의 글을 천천히 읽는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일어나는 갈증 때문이다. 오늘 읽은 글은 조간신문에 실린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의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라는 책 소개 글이었다. '심오하게 종교적인 비신앙인(deeply religious non-beliver)' - 나는 크리스찬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종교에 접근하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존경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신다. 나는 다시 잠들 것이다. 


예수는 급진적인 혁명가였다. 어떤 지배계층도 예수 같은 인물을 곱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허탕만 치던 어부 시몬에게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라라고 말한다. 고기라곤 잡아본 없는 듯한 샌님의 말이었지만, 시몬은 그의 말대로 갈릴리 한가운데로 향한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많은 고기가 낚인다. 시몬은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고 예수의 가장 충직한 제자가 된다.

예수는 베드로의 지갑을 두둑하게 하거나, 신통력을 발휘해 마음을 사로잡으려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의 그리스어 원문은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해석된다. 이는 제한구역, 따분한 일상을 넘어 탈출하라는 속삭임이다.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84일간 마리도 잡은 노인이 다른 어부들이 가지 않는 파도가 높고 물살이 빠른 해협까지 나간 것과 비슷하다. 예수는 어제와 같은 , 익숙한 자신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선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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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구경하다가 뒤늦게 좋은 칼럼을 읽고 공유합니다. 

쓸모없는 것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가 '황우석 사태'처럼 언젠가 있을 대박을 터뜨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글이라서요.





[정동칼럼]쓸모없는 것들을 가르칠 의무

대학에 갓 입학한 ‘고등학교 4학년’들이 내 수업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들의 첫 질문은 과연 그것이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지 여부이고, 내가 궁금한 점은 어떻게 모든 종류의 추천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는 이 책을 읽어본 학생이 없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이 예의 바르게도 묻지 않는 질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게 우리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목적의식이 뚜렷한 세대이며 목적 없는 “쓸모없는 것들”을 가차 없이 퇴출시켜나간 교육시스템이다. 대학은 더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고, 고등학교는 더 좋은 대학으로의 입학을 준비하는 곳이며, 중학교는 더 좋은 대학에 많이 입학시키는 고등학교로 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초등학교는, 그리고 유치원은…. 아니, 이 앞의 문장은 상식이 되어버려 새삼 지면에 옮기기도 뜬금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교육의 황폐화와 우리 현실의 암담함이 이런 목적론적 교육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문화의 시작이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었고, 학술의 근원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는 궁금증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 교육에는 문화도 학술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그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이것을 서생정신이라 불러도 좋고 아마추어리즘이라 불러도 좋다. 쓸모없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은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통해 아이폰을 만들 수 있었고, 워런 버핏이 ‘풍부한 독서’를 통해서 훌륭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학술과 교육과 문화는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기치 않게 페니실린이 발견되기도 할 것이며 우연찮게 뢴트겐은 X선에 손을 대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폰과 주식투자와 페니실린과 X선이 - “대박”이 - 학술과 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혹은 전해주고 싶은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이, 이 강의실이, 나아가 학교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당신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고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동굴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외우기 전에, 동굴에서 무기력한 삶을 살던 이가 동굴을 나와서 처음 광명한 햇살을 느꼈을 때의 그 저미는 고통을, 그리고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을 때의 뼈를 깎는 격통을 책으로 느낄 수 있다면 당신들은 이미 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것은 시험에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이 살아가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면 다시는 읽어볼 수도, 고민해볼 수도, 토론해볼 수도 없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 나는 우리의 대학교와 고등학교와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학생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더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소중한 ‘마지막 기회’들을 허비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계절이 지나 겨울방학을 앞둔 시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학생들이 또 있다. 취업의 어려운 관문을 뚫은 졸업예정자들인데, 축하의 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기말고사를 치를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한다. 학점을 받아야 졸업을 할 수 있지만 당장 회사에서 출근 - 무급인턴 - 을 하라고 하니 시험 대신 다른 것으로 학점을 달라는 부탁이다.

우리 교육시스템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한 ‘회사’들은 이토록 촌스럽기 짝이 없으며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학생들 일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교정에서의 마지막 두어 달 기간에 당신들이 학생들을 얼마나 더 잘 성장시킬 자신이 있는지. 세상의 모든 관심과 배려를 받고 초·중·고·대학의 십수년 교육기간 동안의 학생 생활을 마감하는 이들을 두어 달 기다려줄 여유도 없는지. 사회적 배려라는 것이 수능일 아침 앰뷸런스로 고사장에 실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고 성장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이런 교육환경이 이르는 종착역은 바닥 모를 둔감함이다. 배려받지 못한 학생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시민으로 자라고, 손톱 밑의 가시가 아니면 고통과 분노는 건망증에 포획된다. 세월호, 국정원, 부패리스트, 메르스 등 신문 지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공동체의 사건들이 너무도 쉽사리 잊혀지고, 일상의 아득함만 우리 앞에 벽처럼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아들 딸들에게 어떤 공동체를 물려줄 것인가. 대답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근원적인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대안 없는 쓸모없는 글로 지면을 허비하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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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성복 2015.10.05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쾌. 통쾌. 너무나도 좋은 글이네요! 슬쩍 스크랩해 갑니다 ^^

정부나 기업의 고위직들이 하는 일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얼핏 대단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감당한 만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동안 일로써 얻은 통찰력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 성과는 대부분 논리적이고도 아름답게 포장된다(대부분의 위인전이나 인터뷰 기사가 그렇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것처럼 보이던 천문학적 액수의 사업적 결단이 나중에 알고 보면 단순히 오너 일가의 취미 때문인 것으로 밝혀질 때도 있고 한 나라의 미래 비전도 지도자의 터무니 없는 낙관론이나 잘못된 것이든 아니든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고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결론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판단이 언제나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놈의 '위치' 때문에 아무도 그들의 결정을 막거나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는 것. '산다는 것은 불합리한 것을 견디는 것'이라는 말과 글을 알고는 있지만...그래도 이래저래 아침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1721202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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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네

길위의 생각들 2015. 8. 11. 15:47





박가네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마포에 있는. 아, 최대포는 아신다구요. 네. 사실 마포는 최대포라는 고깃집이 제일 유명하죠. 그런데 오늘은 최대포 말고 박가네라는 집 얘기 좀 하려구요. 제가 두 번째로 다니던 광고회사가 MBC애드컴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정동MBC빌딩에 있던 그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마포 태영빌딩이란 곳으로 이사를 간 겁니다. 정동MBC빌딩은 덕수궁과 광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나름 정취가 있었고 또 당시만 해도 경향신문과 MBC라디오방송국이 남아 있어서 가끔 ‘별밤' 공개방송 같은 녹화방송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엔 여중생들이나 여고생들이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기 연예인이 나타나면 광화문이 떠나갈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 소소한 재미가 있던 곳이었죠. 아,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를 지낸 정수장학회도 그 건물에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정' 자와 육영수 여사의 수' 자를 따서 이름이 그랬다죠. 그런데 회사가 마포로 옮겨가면서 그런 분위기나 재미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포라는 새로운 공간에 재빨리 적응을 했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밥집. 마침 회사 바로 앞에 공덕시장이라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어서 우리의 점심과 저녁은 그곳에서 손쉽게 해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팀은 곧바로 시장 안에 있는 명재네라는 분식집과 단골을 텄습니다. 오후 네다섯 시쯤 되면 두세 명씩 가서 간식으로 떡볶이도 먹고 라면도 먹고 하던 집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인 명재네집 아들 명재가 우리 팀장님인 국동이 형을 보면 저쪽에서부터 달려오며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공덕시장은 이후에 두 번 크게 신문에 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전국에서 가장 붕괴위험이 큰 건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사였고 또 한 번은 IMF를 맞아 저렴한 시장 전집이 뜬다, 5천 원이면 배부른 안주에 막걸리까지...라는 내용의 조금 서글픈 기사였습니다)  바로 근처에 건물이 있던 한겨레 기자들도 많이 오고 그랬지만 어쨌든 공덕시장은 너무 오래된 건물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밥보다는 술이었죠. 눈만 뜨면 회사에 와서 허구헌날 부대껴가며 회의하고 야근하고 툭하면 주말에도 나와 일하고정말 어이 없게도 가족들보다 오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이였고 또 쓸데없이 체력은 넘쳐나던 신입사원 시절, 절대적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는 건 업무 중간 틈틈이 마시는 술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우리 회사 뒤에는 제일빌딩이라는 적당한 크기의 베이지색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일층의 맥주집부터 2,3층의 파발마 같은 단란주점, 그리고 지하에 ‘언니들’이 T/C 없이 자유롭게 근무하는 야릇한 술집들까지 즐비해서 우리는 매일 밤 선택의 폭을 넓혀가며 그 빌딩에 출근부 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밤에 MBC애드컴 직원들을 만나고 싶으면 제일빌딩으로 가라' 는 말이 생겨났고 실제로 밤이면 그 빌딩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동료들과 자주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빌딩은 어느새 우리들 사이에서도 ‘환락빌딩’이라는 직관적인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게는 최대포였죠. 우리도 당연히 처음엔 최대포를 갔었습니다. 그러나 곧 시들해지고 만 것이, 소문과 달리 고기 질이 그리 좋지 못했고 서비스도 그저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이유는 고기를 굽는 연료가 숯불이 아니라 브루스타’ 라 불리는 이동식 가스렌지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건 회사에서 가까운 '그냥 대포'든 마포 굴다리 밑에 있는 '원조 최대포'든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십 년 이름 높은 최대포가 가스렌지로 고기를 구워주다니. 우린 마포라는 지역의 문화적 자존심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숯불로 고기를 구워주는 집이 하나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회사앞 제일빌딩 맞은편 박가네'였습니다. 

환락빌딩 바로 맞은편에 있던 박가네였으니 우리들의 회식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어쩌다 경쟁PT라도 따는 날이면 당연히 팀 전체가 몰려갔고 그냥 별 이유 없이 저녁에 술 한 잔 걸치고 싶은 날도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김유신의 말처럼 박가네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술, 담배, 외박을 인생 삼대지표로 삼고 살았을 정도로 한창 팔팔했던 저는  바쁘든 한가하든 어떤 경우에도 집에는 일찍 들어가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살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툭하면 술이요, 뻑하면 외박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부지런한 박가네 사장님은 우리가 갈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가게 옆 숯막에서 빨갛게 익은 숯불을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잘 생기고 붙임성도 좋은 우리 선배 김동만 차장은 원래도 사장님과 친했지만 두 사람이 동향이라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즉시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가 되어 한가한 저녁이면 가게에 가서 함께 숯불을 지피기까지 했습니다. 가게는 부지런한 사장님 사모님 덕분인지 나날이 번창했고 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우리는 번지르르한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MBC애드컴 직원놈들보다 박가네 사장님이 훨씬 더 돈도 많이 벌고 실속 있다고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 부부는 에이, 말도 안 된다고 손을 내저으며 웃으셨구요. 

매번 관광도시를 강간도시로 발음하던 바보 같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갑작스럽게 IMF가 왔고 많은 사람들이 나이 서른에 명퇴를 당하며 회사를 떠났습니다. 동료들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환송회를 하던 곳 역시 대부분은 박가네였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IMF시절은 어떻게 버텨냈지만 그 다음 해엔 회사 다니기가 너무 지겨워져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십대를 넘어 서른 언저리, 아직 마흔이 되기 전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던 마포 시절은 그렇게 힘없는 산문처럼 한 줄 한 줄 흩어져 추억의 책갈피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는 PD프로덕션의 기획실장 일을 하고 있는 저는 작년 어느날 마포의 HS애드라는 광고대행사에 회의를 하러 갔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실로 오랜만에 박가네를 갔습니다. 카운터에 앉아서 활짝 웃는 사모님과 여전히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을 보고 함께 간 PD들이 “실장님, 여기 단골이었나봐요?라고 물었습니다. 단골이었지. 그것도 아주 찐한 단골이었지. 고기를 시키고 소주도 시켰습니다. 여전히 사장님이 웃는 낯으로 숯불을 피워 들고 오시더군요.


"아유, 이제 숯불 피우는 건 다른 사람 시키시지...동만이 성은 요즘도 와요?"
하하, 안 와."

예나 지금이나 그저 하하 웃기만 하는 사장님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아니, 그 동안 번 돈은 다 어쩌고 아직도 이러고 계세요. 사모님은 다리를 다치셨는지 카운터 의자에 앉아 다리 위에 덮은 담요를 한 번도 치우지 않으셨습니다. 반가워 하면서도 저한테 가까이 와 인사도 못하고 그냥 카운터에 앉아 박꽃처럼 하얗게 웃기만 하는 사모님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가게에 손님은 여전히 넘쳐나는데, 돈은 여전히 많이 버는 거 같은데. 왜 이 분들은 여전히 이러고 살고 있는 거야. 그 돈 다 누가 쓰는 거야. 아, 씨발.


박가네 사장님, 반가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들이라고 뭐 다른 게 있나요. 십여 년쯤 후엔 나도 뭔가 다르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때쯤이면 내 친구나 동료들도 이런 힘겨운 일들 졸업하고 지금보다는 더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겠지...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만났을 때 우리들의 손에도 저마다의 숯불화로들이 하나씩 들려 있는 거죠. 그게 광고를 굽는 숯불이든 IT를 녹이는 숯불이든 뭐 별 차이가 있겠어요. 어디서 일을 하고 있든 여전히 우리의 얼굴은 그 숯불 때문에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걸요. 다만 아직은 사장님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빨간 숯불을 솜씨있게 집어낼 자신이 없어서요. 그리고 아직은 그 숯불에 우리들 꿈이 다 타버린 건 아니라고 우겨보고 싶어서요. 여름은 아직 다 지나가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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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성에 관한 일이고 인류의 미래에 관한 일이기에 민족감정 따위에 엮어 묶을 수 없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객관화해야 한다.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리차드 파인만의 말은 인생에서 뭔가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마다 매번 유용한 지표가 됩니다.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 문화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극우 정치가나 제국주의자, 전범들을 미워했다는 황현산 선생의 스승. 황현산 선생은 웬디 셔먼 미국무부정무차관의 발언을 다루면서 과거 자신을 가르친 스승님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스승 같은 사람에겐 어떤 사안을 바라볼 때 그게 옳으냐 그르냐만 중요할 뿐 민족의 입장이나 개인적인 친분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죠. 어때요, 참 간단명쾌하죠? 훌륭한 선생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제자 황현산은 이제 이렇게 이 시대의 좋은 '선생'이 된 것이겠지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0620541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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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에 '철학담당 임원'이 따로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그러니까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하는 이유가,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다른 거지요. 물론 그 사람이 부사장과 마케팅 임원을 담당했던 사람이라도 말이지요. 


파타고니아는 1973년 창업 때부터 기업 이윤보다 자사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자연을 지키는 데 신경써온 기업이고 진짜 그걸 실천함으로써 오히려 더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곳이니까요(참고로 여기는 사장이 직원들에게 근무 중에도 서핑을 하라고 등을 떠미는 회사입니다. 2005년에 회장이 펴낸 책 제목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입니다. 참 좋은 내용인데 책 만듦새가 좀 아쉽습니다. 누군가 다시 한 번 편냈으면 좋겠습니다) .  


누군가 이본 쉬나드 회장에게 경영철학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지금부터 100년 뒤가 기준입니다.” 


정말 배포가 다르지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100100&artid=20150224212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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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없이 모진 상대에게 순한 양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결코 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질고 악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큰소리도 치고 당당히 싸우기도 하는 것이 진짜 착한 것이다. 올해는 모두가 착하게 사는 한 해가 되시기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601&artid=201501152113375



진짜 착한 사람은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큰 소리도 치고 싸우기도 하는 사람이란 말에 백 번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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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성복 2015.01.19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착한 사람은 큰소리 칠줄 아는 사람이고, 진짜 무서운 사람은 함구무언하는 사람 아닐까요.. 회의실에서 모두가 말이 없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어제 좋은 칼럼을 하나 읽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길래 또 읽어보았습니다. 


상상은 경험의 여백에서 나온다는 생각,어린아이들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은 대부분 오해거나 거짓이라는 생각, 세상을 살 만큼 살았다고 자부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지 말자는 생각,그리고 일상에 매몰되어 상상력을 추방하지 말자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1021115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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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 토요일자 신문을 읽었습니다. 신동호 논설위원이 쓴, 2001년도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탔던 [버스44]라는 중국의 단편영화 이야기를 다룬 칼럼이었죠. 세월호 참사에 일그러진 우리들의 현실 인식이 겹치는 기발한 영화였습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도 이 영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군요. 짧은 영화니까 다들 한 번씩 보셨으면 해서 공유합니다. 신문칼럼도 함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9201055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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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고지대에 자리한 부탄은 2013 기준으로 인구 73만명, 1인당 국민소득 2863달러로 작고 저발전된 나라의 전형이다. 하지만 유럽 신경제재단(NEF)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부탄은 국민의 97%나는 행복하다 답변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같은 조사에서 143개국 68위라는 기대이하의 저조한 행복도를 기록했다.


부탄의 국왕은 취임 이래국민소득(GDP) 아니라 국민행복(GNH) 기초해 나라를 통치하겠다 공언해 왔다. 부탄은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경제성장에 몰입하는 와중에도 심리적 웰빙, 생태계 보호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 주력해 왔다.



한편 OECD 2012 36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63.2(110 만점)으로 하위권인 24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교육(6), 정치참여(11), 치안(12) 등에서 선전한 반면에 주거(22), 일자리(25), 환경(29), 건강(33), 일과 삶의 조화(33), 공동체 생활(35) 등에서 부진했다. 참고로 호주(87.5) 1위를 차지했고 노르웨이, 미국, 스웨덴 등이 뒤를 이었다. 더불어 일본은 21, 멕시코와 터키가 각각 35위와 36위로 최하위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252059235&code=990304



'국민행복'은 고사하고 '국민안전'도 믿을 수 없는 대한민국. 정말 괴롭고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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