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문이나 TV뉴스에 부부 사기단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렸습니다만 2021년 이 한여름에 저희는 부부 사기단 대신 '부부 리뷰단'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출판그룹 메디치미디어가 저와 아내 윤혜자에게 정기적으로 책 리뷰를 연재할 것을 권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에는 첫 달이라 서로 다른 책을 읽고 리뷰를 썼지만 (저는 권은중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아내 윤혜자는 리처드 J, 라자루스의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 다음 달부터는 같은 책을 읽고 각자 리뷰를 쓰기로 했습니다.

메디치미디어로서도 새로운 시도겠지만 저희도 덕분에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한 달에 두 권 이상 꼼꼼히 읽게 되었습니다. 재밌고 즐거운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부 사기단보다 백 배 낫잖아요, 부부 리뷰단. 

https://brunch.co.kr/@medicibooks/40 ​이게 두 번째. 

https://brunch.co.kr/@medicibooks/37 이게 첫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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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를 한, 영, 일로 읽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온 말 중 하나가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타나?'였습니다. 특히 노벨문학상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최인훈이나 이문열 같은 작가가 타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최인훈 선생은 이미 돌아가셨고 소설가 이문열은 젊은 날 쌓아올렸던 위상을 스스로 허물어뜨린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옆나라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브로가 노벨문학상을 탄 것을 부러워하긴 해도 그 상을 타기 위해 그들처럼 번역에 제대로 힘을 쏟거나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은 게을리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다행히 고은이나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만약 그 추세를 몰아 고은이 덜컥 수상자가 되어버렸다면 상을 주는 스웨덴 한림원이나 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죄다 곤혹스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들려 온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오매불망 노벨상만 바라보고 있던 우리들에게 살만 루시디도 타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탄 맨부커상을, 그것도 오르한 파묵 같은 쟁쟁한 작가들을 제치고 한강이 수상을 했다는 소식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지요. 저는 그 뉴스를 접하고서야 진작에 사놓고 읽지는 못했던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를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벌써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또 다른 역작 [소년이 온다]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기발한 방식으로 현장에 밀착하면서도 가슴 서늘하게 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고 브래지어도 풀어버린채 채식주의자가 된 '평범했던' 여인을 통해 소년이 온다와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과 감동을 높은 예술적 성취와 함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아내인 윤혜자 씨와 저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과 함께 인사동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는 파우저 교수님의 배웅하는 자리였지요. 우리는 파우저 교수님의 역작 [외국어 전파담] 출간 기념 강연 시간에 나누었던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은 그때 한강의 [채식주의자]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영어판과 일어판으로는 이미 읽었고 한글로는 아직 안 읽었는데 아마도 원작인 한글판은 영어로 쓰여진 작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번역에도 나타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날 한국어판도 읽어보시라고 제가 즉석에서 책을 한 권을 사드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3개국어로 그 작품을 다 읽은 사람은 파우저 교수님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시 가을의 술자리. 윤혜자 씨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소재로 한 강연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일어와 한국어에도 능통한 파우저 교수님이 세 나라 언어로 읽은 소설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번역의 본질을 짚어보는 특강을 해보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파우저 교수님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구요. 마침 저와 윤혜자 씨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 '독하다 토요일' 시즌 2가 끝나가고 있었는데 시즌 3을 시작하기 전에 오픈 특강을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즐거운 작당이었습니다. 결국 파우저 교수님은 다음 해 봄 어느날 특강을 약속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정말로 봄이 왔고 파우저 교수님도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토요일인 2019년 5월 11일 토요일, 광화문과 서소문 사이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모였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의 특강 '[채식주의자]를 한, 영, 일로 읽다!'라는 특강을 듣기 위해서였죠. '독하다 토요일'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모임이라서 늘 7~8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하다 헤어지곤 했는데 이 날만큼은 써클의 문을 열어 회원이 아닌 분들도 참석할 수 있게 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모처럼의 좋은 강연을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윤혜자 씨와 저는 간식을 사들고 피어선빌딩 10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한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임기홍 씨나 서동현 씨, 손연영 씨, 김성희 씨 같은 기존 회원들도 있었고 예주연 씨, 콜린 마샬 씨, 김수진 씨처럼 처음 뵙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3시 10분 전쯤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먼저 윤혜자 씨가 나와 오늘 강연을 기획하게 된 이야기와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모임에 대한 짧은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대여해 준 '청춘여가연구소'의 정은빈 대표가 나와 피곤하고 외로운 현대사회에 이런 장소에서 같은 관심사를 나눔으로써 사람들을 '사회적인 가족'으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짧게 코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제가 나가서 다시 독하다 토요일을 하게 된 이유를 시작으로 제가 요즘 토요일마다 벌이고 있는 다른 기획들(토요 식충단, 토요워킹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전 스피치가 두 번이나 있었고 파우저 교수님도 뒤에 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비난과 조바심의 눈초리를 의식한 저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맺고 파우저 교수님에게 강의를 부탁드렸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은 1997년에 [한국문학의 이해]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하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문학이론을 번역하는 일이 드문 시기였고 그 책은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문학 사례'가 많았는데 그걸 번역하면서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Beautiful English'이라는 정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파우저 교수는 번역 작품도 일정한 문학성은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그게 반드시 영어권의 고전작품들 같은 품격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 - 본인은 그것을 '1인야당'이라고 표현- 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장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물은 셀프' 같은 표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파우저 교수님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 정도 살면서 언어를 다루고 가르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공이 문학이면서도 윤혜자 씨와 냈던 책은 인문서인 [미래시민의 조건]이었죠. 그 후에 나온 두 권의 책도 마찬가지였군요. 그러다보니 문학이나 번역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파 교수님(트위터 시절부터 유명했던 그의 애칭)은 '오바마 케어' 가입 안내서나 세금 보고서 같은 글을 번역할 때는 문학성이 필요 없지만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확성과 더불어 문학성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 수상 수락연설에서 읽었던 유명한 글 - [설국]으로 먼저 노벨상을 탔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소감을 끌어와서 더 화제였죠 - '일본은 회색지대다'라는 말처럼 번역도 정확성과 문학성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극단적인 논쟁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설국]의 첫 문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우리는 한글로 먼저 읽어 그 뜻을 파악하고 일어, 영어로 된 문장들을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파 교수님이 뭔가 번역에 이상한 게 없느냐고 물으니 당장 '눈의 고장'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반응이 튀어나왔습니다. 국경이라는 말의 뜻도 애매하다는 질문이 이어졌구요. 파 교수님은 일단 에도시대에 막부 별로 나뉘어져 있던 일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해야 '국경'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해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표현이 어떤 풍경을 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고 그런 저런 사정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우리말이나 일어에 비해 영어로 된 문장에서는 '드라마'가 사라지고 건조한 묘사만 남는 특징이 있음도 지적했습니다. 이는 번역 언어로 사용될 때 각각의 언어가 갖는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였습니다. 파 교수는 '밥상이 들어왔다'라는 문장이 영어로 번역될 때는 과연 어떤 문장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서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영어로 하면 식탁이 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되어서였죠. "형이 술을 천천히 마셨다."라고 말할 경우도 형을 'Brother'라고 써야할지 'hyeong'이라고 써야할지 고민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Deborah Smith의 '오역 논쟁'에 대해 얘기를 꺼냈습니다.

드보라 스미스는 교수가 아닌 전문 번역가라는 점이 특이한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것과는 상관 없이 소설 내용 전체를 너무 '영국화 했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고 이는 번역자 자신도 어느 정도 시인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백 퍼센트 정확한 번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결국 번역이란 것은 어느 정도 '창의적'이어야 함을 주장했는데 파 교수는 그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든 입장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미국 출신의 백인 남성인 파우저 교수가 드보라의 편을 들면 역시 백인은 어쩔 수 없어, 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고 반대파의 입장에 서면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번역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콜린 마샬 씨를 괜히 끌어들여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파 교수의 지목을 받은 콜린 마샬 씨는 '한국어로 쓰여 있는 소설에서는 아내를 약간 비하하는 듯한 남편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는데 번역을 하면서 그런 뉘앙스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닌가'라는 날카로운 의견 및 질문을 펼쳤고 파 교수도 맞다고 하며 그래서 "여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라는 문장을 영어로 옮겼을 때 여보를 'Darling'이라고 옮긴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똑같은 'Darling'이라도 맥락에 따라서는 사랑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비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죠(일어로는 마초적인 게 느껴지고 영어로는 신사가, 한국어로는 교양 있는 남편이 느껴진다 했습니다). 영국식과 미국식을 오가며 목소리 연기를 펼치는 파 교수님 덕분에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깔 웃었고 '달링'은 단박에 우리들만의 유행어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no'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에 무려 88개의 각각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는 학계의 보고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파 교수는 어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가르치는 게 정말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던 교수법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말끝을 '~해요'"로 처리하는 이른바 '욘사마적 교과서'라고 한다나요. 아무튼 비빕밥과 'Mixed Rice'는 다른 것인데 파 교수는 어중간하게 타협을 하느니 차라리 'Bibimbab'이라 표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논쟁을 다룬 뉴요커의 기사를 인용하며 번역문장을 왜 읽느냐로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혀갔습니다. 자기는 문학을 좀 가벼운 느낌으로 즐기고 싶은데 요즘 미국에서는 다소 '있어보이려는 의도' 때문에 문학이 소비되기도 함을 얘기했습니다('Political Correct).

강의가 마무리될 때쯤 소설 등단 준비를 하고 있는 김하늬 씨가 '드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할 때 한국적인 특수 상황 - 남편의 지나친 여성 비하,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 강요 - 들을 모두 약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서양 심사위원들이 선택당하기 쉽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보충 질문을 더했습니다. 번역자가 작품을 그토록 두리뭉실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이라는 작가가 쓴 원작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수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그림을 그리는 이창희 씨는 더 나아가 드보라가 수상을 하지 못할까봐 의도적으로 작품을 '훼손'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면서 만약에 그렇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파 교수는 그 질문들에 어느 정도 동감하면서도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여성이라 그에 대한 배려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슬쩍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이라는 게 항상 시대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꾸 드보라를 공격하는 듯한 분위기로 흐르니 김하늬 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 때문에 좋았던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라는 제안을 했고 파 교수가 그 애기를 받아서 번역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Good English'라는 명목 하에 원작을 바꾸어 '좋은 작품'으로 만드는 번역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지막엔 이창희 씨의 소개로 왔다는 미술학 전공자 황규원 씨가 파 교수에게 작품을 세 언어로 모두 읽은 사람으로써 언어별로 그려지는 그림이 어떻게 다르던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강의였고 수강생들의 열의도 대단했습니다. 보통 강의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 흐르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이날 모인 사람들은 끝나는 순간까지 단 한 사람도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강의를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중간 PPT 화면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다 카메라로 찍어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하나쯤 있기 마련인데 이날은 열심히 필기는 해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 기뻤습니다.

뒷풀이는 윤혜자 씨가 추천을 했는데 저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서대문의 '고향식당'이라는 음식점이었습니다. 가게는 오래되어서 좁고 지저분했지만 음식만큼은 정말 맛있는 곳입니다. 특히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가 일품이고 제육볶음도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곳이었습니다. 총 13명이 앉아 술과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일어섰는데 일인 당 1만6천 원밖에 나오지 않아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음식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파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은 다시 버스를 타고 성북동으로 이동해 '성북동 만섬포차'에서 세꼬시와 계란말이 등등을 시켜 이차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좋은 강의와 좋은 청중이 만나 서로 행복해했던 밤이었습니다. 윤혜자 씨와 파 교수님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즉석에서 뭔가 또 모종의 일을 꾸몄는데, 아직은 발설할 단계가 아니므로 당분간은 비밀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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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하다 토요일 - 황석영의 <손님>을 읽던 날

봄이 서서히 오고 있습니다. 차갑기만 하던 보도블럭이 점점 녹고는 있지만 아직도 바람은 차갑기만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퍽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이 퍽퍽하든 어떻든 책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은 계속되어야겠지요. 2019년 2월 16일 토요일에 서소문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서 讀하다토요일 2기 네 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에 함께 읽을 책은 황석영의 <손님>이었습니다. 이 책을 예전에 꼼꼼히 다 읽고 이번에 또 한 번 읽은 저는 책상 앞에 앉아서 전날 봤던 영화 <가버나움>에 대한 리뷰를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윤혜자 씨와 제가 오는 길에 빵을 좀 사왔는데 조금 늦게 온 김인혜 씨도 홍제시장에서 샀다며 순대와 떢볶이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래서 다들 기뿐 마음으로 빵과 떢볶이 순대를 먹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손님>은 6.25사변 때 좌익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벌인 우리 민족들끼리의 살육전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사는 류요한이라는 목사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소설엔 특이하게도 유령들이 등장하죠. 1950년 경에 황해도에서 억울하게 죽은 동네 머슴 이찌로, 순남이 아저씨 그리고 얼마 전에 미국에서 죽은 류요한의 형의 류요섭 등이 수십 년만에 고향땅 황해도로 향하는 류요섭의 여행에 동행하며 대화를 주고받음으로써 뒤늦은 살풀이굿을 펼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은 임기홍 씨의 첫 느낌은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책 내용이 너무 생소하고 형식이 특이해서 그런 면도 있었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던 내용이라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전쟁 때 여기저기서 불행한 일이 있었다는 건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북한에서 그런 학살이 있었다는 건 왜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자책이 일었던 것입니다. 우선은 반공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생각했다며 자신은 황석영의 소설은 처음인데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책도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윗세대들이 어떡하든 자식들에게 이 얘기를 안 하려 한 것은 어쩌면 떳떳하지 못한 역사에 대한 공범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 책에는 우리 세대가 왜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고 합니다. 뒤늦게라도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미워하거나 알고나 당하자, 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죠.

윤혜자 씨는 우리 모임에서 가장 젊은 김하늬 씨의 소감이 가장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교련이나 간호교육 따위를 받은 세대지만 이십 대인 김하늬 씨는 그런 분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김하늬 씨는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자기 취향도 아니고 잘 모르는 이야기라 쉽게 공감하기 힘들었다면서 민족의 비극이라기보다는 진영간의 다툼이라는 면에서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에 할 말을 잃게 되지만 따져보면 이권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하는 냉정한 시각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유령들과이 서로 대화하면서 화해에 이르는 모습들에도 쉽게 공감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게 바로 씻김굿 아니겠느냐고 했지만 이승에서 서로 실컷 싸우다가 내세에 이르러 겨우 화해하고는 다 잘 될 거야, 라고 하는 건 종교든 정치든 자기 편한 대로 갖다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동현 씨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읽었던 소설가들에 비하면 '헤비급 선수'를 만난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레벨이 다르다는 것이죠. 충분히 공감할 만한 소감이었습니다. 끝까지 읽다보니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도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맑스주의와 기독교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이땅에 들어와서 얼마나 큰 격랑을 만들어냈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손님'이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었습니다.

김인혜 씨는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온 게 황해도였고 당시 젊은이들이 기독교와 함께 일본에서 자생했던 사회주의와도 만나게 되면서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더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조선시대에 농지개혁을 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운 시각도 내보였습니다. 윤혜자 씨가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면서 현기영의 <순이삼촌>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얘기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이병주의 <지리산>등에서도 맥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한집에 사는 저와 윤혜자 씨는 이번에 한 권의 책을 번갈아 읽었는데 각자 읽으며 그은 밑줄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해서 누가 어떤 구절에 밑줄을 그었는지 따져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수박 겉핧기 식으로 배운 것에 대한 분노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당신에 대해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김하늬 씨는 '어제 <오이디프스>와 <안티고네>를 읽었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나보다는 작가가 어떤 입장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나를 더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입장에 치우칠 수밖에 없으니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불편해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작가에게 필요한 기능 중 하나 아니겠느냐'라고 말했지만 쉽게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하늬 씨가 지난 목, 금, 그리고 토요일인 오늘까지 특정 종교에 시달린 사연에 대해 얘기하다가 얼마 전 윤혜자 씨가 스타벅스에서 만난 - 남녀가 마주 앉아 역사와 신념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다가 특정 종교에 대한 충고까지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학교 선생님인 임기홍 씨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 중 만났던 여호와의증인, JMS, 통일교, 신천지 등등의 다채로운 종교인 경험에 대해 얘기하면서 배가 또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모임을 끝내고 애프터를 하러 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이차는 서울역 근처에 있는 닭한마리집으로 갔었고 삼차는 또 근처에 있는 작은 술집(이름이 생각 안 납니다)으로 가서 배가 터지게 술과 안주를 먹었습니다. 다음 달엔 정지돈의 소설집 [건축이냐 햑명이냐]를 읽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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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대단한 감동이 있든지 아니면 대단한 허무라도 있든지. 영화 <황해>로 남우주연상을 이 년 연속 타게 된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무심코 내뱉었던 다짐 때문에 졸지에 577킬로미터  국토 대장정을 하게 된 배우 하정우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장정을 마치고 나서 그의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처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우리는 마음이 심란하고 소란할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하기보다는 몸을 어떻게 해보는 경우가 더 많다. '나'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의 '성동격서'라고나 할까. 몸을 괴롭히다 보면 뜻밖에 마음이 맑아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몸의 움직임 중 가장 쉬운 것은 걷기, 즉 산책이다.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많이 해서 나도 매일 오후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하정우의 경우는 그 산책의 강도가 남다르다. <아가씨> 촬영 때는 출근길 편도 1만6천보를 매일 걸어놓고는 '이 정도면 상쾌하다'라고 할 정도이니.  

연예인이나정치인이 쓴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남들이 써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정우의 책은 읽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길 끝에 가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왜 걷는 동안 나는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없었을까?' 같은 통찰은 걷는 자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매일 꾸준히 걸어다는 사람이라면 알록달록하고 재치있는 글을 여기저기 깔아놓기 보다는 인생의 본질을 바라보는 지긋한 시선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이 책을 샀다. 이제 50페이지쯤 읽었다. 매일매일 '걷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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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이 책을 또 읽었다. 10여 년 전에 사서 밑줄을 쳐가며 열심히 읽었고 교보문고에 갔을 때 순간 착각을 해서 비슷한 시기에 또 한 권을 샀었다. 그래서 헌 책은 우리집에 놀러왔던 친구 부인이자 후배인, 지금은 제일기획에서 CD를 하고 있는 카피라이터에게 선물로 주고 새 책은 그냥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새삼 읽게 된 것이었다.

내 평생 같은 책은 세 번이나 산 경험이 있나 헤아려 보니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나랑 보통 인연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뒷장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7,500원이다.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독하다 토요일'에서 이 책을 함께 읽은 후에 해볼 생각이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무기의 그늘]과 더불어 황석영 소설의 엑기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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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은 본능적으로 작가였고 소설가였던 것 같다. 해방 후 몇 년 동안의 경험들을 돌아다 보면 인간 이하의 모욕을 받거나 밑바닥 생활을 한 적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선생은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 번 그려보겠다'는 식의 문학적 복수를 꿈꾸었다고 하니까. 그런 마음이 불행감을 덜어줌으로써 아주 뼛속까지 불행해하지는 않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저런 인간을 소설로 한 번 써야지, 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대가의 어릴적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런 날것들의 증언이 있어서 인터뷰글을 좋아한다.

아울러 앞으로 내게 오는 나쁜 새끼들도 좀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놈들이 내 작품에 도움을 주는 캐릭터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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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를 다니는 내가 작년에 '2018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을 만들 때만 해도 영상의 마지막엔 '세계인이여, 평창으로 오라. 대한민국은 안전한 곳이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넣어야 했다. 당시엔 북한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말폭탄을 쏘아올릴 때였고 미국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심'이 바닥난 듯 보이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도 낙관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를 거듭하던 한반도 문제는 작년 한 해만도 전격적인 남북영수회담과 북미영수회담이 줄지어 열리는 등 '상전벽해'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단 부시와 오바마를 거쳐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복핵 문제 해결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보수지의 사주를 지냈던 홍석현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책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낸 것도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부터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보수지의 회장을 지낸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인 대북관이다. 그는 지금 한반도에는 통일보다 평화가 더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북한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돕는 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통일부 명칭도 '남북교류부'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까지 한다). 지난 보수정권 때였다면 '종북발언'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책이 쉽게 술술 읽힌다. 홍석현 이사장이 가지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지식과 견해를 스무 고개 넘듯 하나하나 펼쳐나가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휘리릭 다 읽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 대입해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는 그가 언론사를 경영하고 다년 간 국제활동을 해서 국제정세 파악에 능한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짚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꺼림직하다면 홍석현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중대 현안을 인터넷 기사로 읽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은 그 느낌이 다르다. 더구나 대표적 보수주의자가 내놓은 진보적 주장을 읽는 짜릿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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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처음 열리는 '독하다 토요일' 모임이지만(시즌2로는 세 번째) 감기나 독감, 과중한 업무 등으로 인해 멤버들의 결석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간밤의 격한 음주와 그에 따른 숙취로 인해 도저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컨디션이었고 서동현 씨도 독감이 심해서 집에 누워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아름 씨는 요즘 회사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토요일 오전 내내 기절하듯이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손영연 씨도 집안에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계속 참석을 못하는 형편이었구요. 아무튼 저조한 출석율을 예상하며 제가 1시 40분쯤 '청춘여가여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정은빈 대표는 물론 다른 회원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저는 간밤에 금호동 '오남매곱창'이라는 술집에 스마트폰을 두고 왔는데 그 가게는 저녁에나 문을 열어서 아무런 커뮤니케이션 도구 없이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던 상황이었구요.  노트북으로 카톡을 확인하고 싶어도 안으로 들어가 와이파이 번호를 알아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스마트폰이라는 도구에 매여 사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사정을 하고 전화기를 빌려 윤혜자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10층으로 올라가 출입문에 메모되어 있는 정은빈 대표의 전번을 노트에 메모하고 1층 커피숍에 와서 또 전화기를 빌려 정 대표와 통화를 하고 나서야 출입문 비밀번호가 이미 카톡 메시지로 공유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려서 카톡창을 볼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비밀번호를 받아서 10층으로 올라오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진주 씨를 만났습니다. 

간밤에 파티를 열어서 조금 지저분하거나 음식 냄새가 날 수 있다고 했지만 올라와 보니 얘기 들은 것보다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곧 정 대표의 친구라는 분이 올라오시더니 주섬주섬 청소를 해주셨습니다. 진주 씨와 저는 이십 분 정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 테이블 위에 있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습니다. 김하늬 씨와 김성희 씨, 임기홍 씨가 속속 도착해서 세 시 정도에는  다섯 명의 인원으로 조촐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읽을 책은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이라는 장편이었습니다. 저는 작가의 전작인 [파과]를 재미있게 읽었고 또 세간의 평도 좋은 것 같아서 이 책을 추천했지만 결과적으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윤혜자 씨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시즌1과 달리 책을 미리 읽어보지도 않고 도서목록에 올린 것은 주최자로서의 직무유기라며 저를 맹비난했습니다. 독하다 토요일 멤버들의 수준을 존중하라는 경고이기도 하죠.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곳에 입주해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인 장편소설 [당신의 식탁]에 대해 제가 '공동생활과 공동육아의 어려움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지만 그 의도가 성공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안 좋은 소설이 된 케이스'라고 했더니 김하늬 씨도 '용두사미 같은 소설'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시작은 매우 흥미로운데 서로의 성격이 부딪히고 사건이 생기는 과정에서 남은 것은 육아와 불륜에 대한 앙상한 이야기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주도 하에 공동주택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와 비슷한데 노벨상을 받은 그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은 그저 현상과 반동만을 다룬 피상적인 이야기로 끝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가 공동주택 담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 같다'라고 아쉬워하면서 식탁이 들어가는 제목도 참 잘 지었는데 작품은 그렇제 못한 것 같다고 했고 김하늬 씨도 동의하면서 특히 마지막에 수미쌍관 식으로 보여준 에피소드는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멋부림이 아닐까, 하는 제 대답에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도 비슷한 플롯이 있는데 훨씬 세련되게 구현이 되었다며 역시 아쉬워했습니다. 

캐릭터들의 역할이 너무 정확하게 정해져 있어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진주 씨는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처럼 세세한 분석까지 해가며 읽진 못했는데 아무튼 다 읽고나니 뭔가 허무하고 답답한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구병모 작가가 어디선가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고 쓴  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렇다면 공동주택생활이라는 게 육아든 삶이든 인간에게 좋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라는 통찰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이건 그게 아니라 '내가 어쩌다보니 재수 없는 애들을 떼로 만났어' 식의 개인적 경험담을 들려주는 수준으로 주저앉는 느낌이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임기홍 씨가 '똥통에 빠졌다고 한거죠'라고 거들어서 모두들 웃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나고 개인적으로도 부산한 일들이 많아서 책을 읽지 못하고 왔는데 오면서 앞부분을 조금 들춰보았다고 하면서 제목만으로는 우리가 비판하는 내요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만큼 제목을 잘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주 씨가 결론이 너무 허무하다고 얘기하자 김하늬 씨는 작가들은 문제 제기만 잘 해도 그 의미가 있는데 이 작품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이게 과연 소설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다고도 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아예 르뽀 형식을 깆춘 작품도 아니면서 작가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민낯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읽다보면 소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주도한 공동주택사업이라는 게 처음엔 거창한 의도로 시작했는데 잘 안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벌려놓은 사업이므로 꾸역꾸역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거기서 갈등이 나와 사건이 만들어진다든지 하는 게 올바른 작법인 것 같은데 이 소설은 그런 인과관계를 파고들지 않고 그냥 그 내부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개인적 사연만 밀고 나가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좋은 소재를 놓고 이 정도밖에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습니다. 김하늬 씨는 김탁환 작가에게 들었던 '소설 특강'을 회상하며 사건이 일어나면 끝을 봐야지 도망가지 마라, 라는 얘기에 매우 공감을 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사건들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후일담 식으로 처리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지적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시간이 없어서 앞부분에 나오는 효내 얘기만 좀 읽었는데 예전에 읽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같은 경우도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사는 이야기였지만 굉장히 인간미 있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도 했는데 저도 동감이었습니다. 재강, 단희, 여산, 교원, 상낙, 효내, 은오, 요진 등의 이름이 하나같이 세련되어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너무 비난 일색이라서 지금쯤 작가의 귀가 꽤 간지럽겠다, 라는 얘기까지 하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 또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작가가 너무 착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색다른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뭔가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좀 독하고 못된 구석이 있어야 하고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는 얘기를 제가 꺼냈더니 그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서  이병헌, 홍상수, 잭 니콜슨 등 자기 분야에서는 눈부신 업적을 이뤘지만 개인생활에서는 '악동'으로 소문난 캐릭터들에 대한 얘기가 가십처럼 흘러나와 한참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제목은 참 좋은데 참 아쉬워, 라고 말하는 김하늬 씨와 차라리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연작소설로 썼으면 더 나았을 것을, 이라 말하는 김성희 씨의 대안 제시가 이어졌고 제가 작가는 좀 못된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의 연장선으로 예전에 광고대행사 다닐 때 술자리에서 늘 동료들과 늘 하던 얘기인 '같이 일하고 싶은 놈은 바보와 개새끼 중 누구를 고르겠냐?' 를 가지고 또 한참 수다를 떨었습니다. 배가 산으로 가서 급기야 제가 예전에 조폭 출신의 건설회사 대표와 회의 끝내고 점심 먹으러 갔다가 그 대표가 "아무거나 자유롭게 시켜요. 여긴 짬뽕을 잘 하지만. 난 짱뽕..."이라고 말씀하셔서 졸지에 여덟 명이 짬뽕 여덟 그릇 먹고 나온 이야기까지 하다가 허둥지둥 모임을 끝냈습니다. 

이날은 뒷풀이 모임조차 참여가 저조해서 다른 분들은 가고 김성희 씨, 진주 씨,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정동길 따라가다 있는 '장수회관'에 가서 국수전골에 소맥, 볶음밥까지 맛있게 먹고 마신 뒤 헤어졌습니다. 아마 읽은 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한 첫 번째 모임이 아니었나 합니다.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뭐. 다음달에 읽을 책은 황석영이 [손님]입니다. 개인적으로 [무기의 그늘]과 함께 황석영의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장편소설입니다. 다음엔 또 어떤 독후감들이 등장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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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왕이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애지중지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었으며, 그를 위해 성대한 잔치와 만찬을 베풀곤 했다. 어느날 만찬에서 왕자는 아버지 곁에 선 검은 수염에 얼굴이 어두운 남자를 보았고, 그가 저승사자라는 것을 곧 알아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서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자는 만찬이 끝난 뒤 아버지에게 초대객들 중에 저승사자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의 눈길로 보아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작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곧장 이란의 타브리즈 궁전으로 가서 숨어 있거라. 타브리즈 왕은 나와 철친한 사이이니 아무에게도 너를 넘겨주지 않을 게다." 그리고는 아들을 곧장 이란으로 보냈다. 

왕은 다시 만찬을 준비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다시 얼굴이 어두운 그 저승사자를 초대했다. 저승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전하, 오늘 저녁엔 아드님이 안 보이네요." 왕이 말했다. "내 아들은 새파랗게 젊은 아이요. 그 애는 아주 오래 살아야 하오. 그런데 왜 내 아들 얘기를 묻는 거요?" 그러자 저승사자가 말했다. "사흘 전 신께서 제게 명하시기를, 이란의 타브리즈 궁전으로 들어가 왕자의 목숨을 앗아오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드님이 이스탄불인 이곳에 있길래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론 무척 기뻤습니다. 아드님도 내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을 보았답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한 후 곧장 궁전을 떠났다.  

터키에서 우물을 파러 다니는 사람 마하무트 우스타는 이 소설 [빨강머리 여인]의 주인공인 '나'에게 전날 들었던'오이디프스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비슷한 얘기를 알고 있다며 위와 같은 사연을 들려준다.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예언 때문에  강가에 버려졌다가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뒤 두 눈을 찌르고 광야를 헤메다 죽은 오이디프스. 그리고 위험에 빠진 아들을 살리려고 친구의 궁으로 보냈다가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아들을 죽게 만든 비운의 왕.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 다만 인간들은 그 일이 벌어진 뒤에야 그걸 깨닫는 거고. 나는 늘 내 운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오늘은 금요일이니 내가 좋아하는 말을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먹고 마시고 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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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운영위원회 중계를 지켜보다가 너무 짜증이 나서 TV를 끄고 올해 읽었던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페이스북과 티스토리 홈페이지 '편성준의 생각노트'의 기록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 서점 등을 뒤지면서 생각나는 대로 몇 권 끄집어내 보았습니다. 

가시나무 그늘 - 이승우
살야야겠다 - 김탁환
이토록 고고한 연예 - 김탁환
뜨거운 피 - 김언수
잽 - 김언수 
살아있는 도서관 - 김이경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여름, 스피드 - 김봉곤
경애의 마음 - 김금희 
흰 - 한강
바깥은 여름 - 김애란
관내분실 - 김초엽
푸르른 틈새 - 권여선 

,국내 소설은 김탁환의 역작 [살야야겠다]와 [이토록 고고한 연예] 두 권과 김언수의 느와르 소설 [뜨거운 피]가 읽는 맛이 남달랐고 김애란과 김봉곤의 소설도 참 좋았습니다. 제일 최근에 읽은 게 어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이었는데 글을 참 잘 쓰고 마음도 따뜻한 작가를 만나 기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읽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도 좋았습니다. 

미국의 목가 - 필립 로스
사실들(어느 소설가의 자서전) - 필립 로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 아흐메드 사다위
아르카디아 - 로런 그로프
저지대 - 줌파 라히리
포르투갈의 높은 산 - 얀 마텔  
밝고 깨끗한 곳 - 헤밍웨이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 가즈오 이시구로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염소의 추제 1, 2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카야

외국 소설은 단연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가 압권이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읽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도 엄청난 작품이었구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역시 한 권 한 권 다 좋습니다. [녹턴]을 사놓고 바빠서 읽지 못했는데 집 안 책꽂이 어딘가 깊이 박혀있는지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마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미니시리즈 같은 작품입니다. 번역가인 조영학 선생이 우리 부부에게 보내주셨는데 재미있게 읽어놓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리뷰를 못 써서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내년에라도 시간을 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밝고 깨끗한 곳]은 전남 나주에 갔다가 산 책인데 같이 실린 <킬리만자로의 눈> 등 다른 작품들도 참 좋았습니다. 저는 특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가 은근히 야하고 좋더군요. 아,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와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립 로스와 함께 두 작가 작품만 꼽으라고 하면 무라타 사카야의 [편의점 인간]을 꼽고 싶습니다. 그만큼 울림이 있었던 특이하고 멋진 작품이었으니까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 오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김민정
지금 장미를 따라 - 문정희 

시를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신철규의 시집은 참 좋더군요. 발랄하고 크리에이티브한 김민정의 시도 언제나 좋구요. 문정희 시인의 앤쏠로지 [지금 장미를 따라]를 우연히 샀는데 이건 그야말로 보물창고입니다. 좋은 시가 정말 많아요. 

사소한 부탁 - 황현산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잘돼가? 무엇인든 - 이경미
박완서의 말 - 박완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인문학 - 이재은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 유창선 
틈만 나면 딴생각 - 정철  
가만히 혼자 웃고싶은 오후 - 장석주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 - 장석주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주오 - 장석주/박연준  
베를린 일기 - 최민석 
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열두 발자국 - 정재승 
아! 병호 - 최우근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 정영목 
결국, 컴셉 - 김동욱 
마케터의 일 - 장인성 
기획자의 습관 -  최장순 
생각하고 기획하고 일하라 - 홍순성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이반 일리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는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올해는 에세이(범위가 좀 광범위하긴 하지만)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황현산이라는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선생의 책은 늘 곁에 두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단언합니다. 기다렸던 신형철의 새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전율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책입니다. 권여선이나 이경미의 에세이는 읽는 내내 즐거움을 느끼는 책입니다.  허수경 시인의 유작 에세이는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단아한 글을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시인이 쓰는 고급스러운 에세이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를 세 권이나 샀네요. 그 중에서도 [가만히 혼자 웃고싶은 오후]는 저에겐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꺼내 읽는 보약 같은 책입니다. 박완서 선생의 인터뷰집은 제주에 있는 인디 책방 '디어 마이 블루'에서 산 책인데 찬찬히 읽을수록 좋은 책입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글쓰기 책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는 허허실실 투덜대는 소설가의 에세이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습니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은 우리가 살면서 알아야 할 본질적인 것들을 쉽게 이끌어주는 강연집입니다. 베스트셀러였죠. [아, 병호]는 제 고동학교 동창이자 극작가인 최우근의 책인데 저희들 어렸을 때의 추억들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예쁜 어른용 동화입니다. 정영목 선생의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은 번역가가 쓴 에세이를 읽고 싶어서 집어든 책인데 필립 로스에 대한 글이 실려 있어서 쾌재를 부른 작품이었습니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시대를 앞서간 아나키스트의 다소 과격한 주장이 흥미롭게 실린 책인데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의 추천으로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가 보내주셔서 꿀 받아먹듯 읽은 책입니다. 

오늘 충동적으로 꼽아본 것이라 분명히 빼먹은 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2018년 마지막 날, 리스트를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년에도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좋은 책과 영화 드라마 등을 만나는 내년이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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