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만들다보면 신기하게도 똑같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제도 외국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그런 TV-CM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미켈럽이라는 맥주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아마로 몬테네그로라는 위스키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두 광고 다 A.I가 등장합니다. 운동이든 게임이든 심지어 악기 연주까지 인간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선보이죠. 하지만 일을 끝내고 저녁에 한 잔 하는 즐거움까지 인간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통찰을 술 브랜드와 절묘하게 엮었습니다. 

문제는 그 전개가 너무 똑같다는 것입니다. 만듦새나 스케일을 봐서는 누가 누구 것을 베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연의 일치로 그런 것이겠죠. 저도 오래 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SK텔레콤 광고를 할 때였는데 저희가 만든 광고에 나온 로봇과 비슷한 로봇이 일본 CM에도 나온 것이었습니다. 시기도 비슷했구요. 그래서 아주 곤욕을 치뤘습니다. 이 광고도 그런 경우라 여겨집니다. 지금쯤 두 회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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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이디어는 여러 말 하지 않습니다. 

심플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캐나다의 음주운전방지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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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한 번은 야유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광고회사답게 야유회도 늘 재밌게 진행이 되기 마련이었죠 그 해에는 아예 이벤트회사를 불러 행사 진행을 했고 응원전을 도와주기 위한 컴페니언걸들도 왔었습니다. 선수들이 청백군으로 나뉘어 운동 경기를 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응원단이 되어 짧은 치마를 입은 컴페니언걸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응원을 하다가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임원들이 앉아있는 자리로 어여뿐 컴페니언걸들이 지나갈 때 회오리바람이 불어 그녀들의 치마가 확 올라가지 뭡니까. 순간 저는 보았습니다. 응원석에 앉은 우리들은 물론 임원석에 앉은 점잖은 임원들의 눈동자까지 일제히 그녀들의 앙증맞은 팬티에 가서 꽂히는 것을. 

 어차피 치마 속에 뭐가 있는지 티셔츠 안에 뭐가 있는지 다 알면서도 왜 우리들은 치마가 올라가거나 티셔츠 사이로 가슴골이 보이기만 하면 반드시 쳐다보게 되는 걸까요? 아마도 본능이기 때문이겠죠. 남자들은 여자의 나체사진을 보는 순식간에 동공이 두 배로 확대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하긴 치마가 올라가도 다들 무덤덤하면 곤란하겠죠. 다들 도 닦는 스님들만 살면 이 세상에 사랑도 번식도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요. 


 ‘치마가 올라가면 눈이 돌아간다’는 인간의 속성을 이용한 광고들. 참 짓궃으면서도 귀엽네요. 역시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아이디어들이 눈에도 띄고 기억에도 오래 남습니다. 아디다스가 만든 바이럴 영상을 보면서 바람 불면 치마가 올라가는 팬티 옥외광고가 생각나서 인터넷으로 그 사진도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치마가 올라가는 아이디어라 그런지 금방 찾아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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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오늘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본 옥외광고 두 편만 소개하죠. 





말이 필요없는 압축이죠? 







3M의 강화유리 광고는 더 죽입니다. 

실제로 가짜 돈 300만 달러를 넣어 놨다네요. 

누구나 지나가다 한 번 깨보고 싶어지겠죠? 

그러나 3M 강화유리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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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라죠? 남의 아이와 나의 아이도 받침 하나 차이로군요.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심플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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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작업했던 공익광고가 지금 전파를 타고 있군요. 어쩌다 "패자부활전이라는 전을 파는 음식점 이야기를 소재로 써보자"라는 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었는데 저는 아이디어에만 관여하고 빠지게 되었고 그 후 경쟁PT에서 승리해 수정/보완하고 찍기까지 많은 분들의 고생이 있었습니다. 20초 CM은 나레이션이 죄다 빠져서 내용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30초로 보니 훨씬 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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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면 의례 혼자 짧은 산책을 나가곤 합니다.

예전엔 일행들이랑 식당 문을 나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니까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양치까지 한 뒤에 천천히 길을 나섭니다. 산책이라고 해 봤자 사무실 근처를 이십여 분 동안 느리게 한 바퀴 도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제겐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평화롭습니다.

산책은 그야말로 목적이 없는 행위이니까요. 빨리 걸을 필요도 없고 또 어디까지 꼭 갔다 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걸을 뿐입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효율성이 중요한 세상엔 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 시간을 아껴 정신 없이 일해도 모자랄 판에.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억지로 나선 길이 어디 진정한 산책이겠습니까. 밥 먹고 5분도 안 돼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능률이 올라가겠습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설사 기계라고 해도 가끔은 엔진을 끄고 기름을 쳐야 합니다만.

저는 걷는 걸 참 좋아합니다. 마음이 답답해도 걷고 생각이 어지러워도 걷습니다. 몇 년 전 25년 간 피우던 줄담배를 단박에 끊을 때도 흡연욕구가 일 날 때마다 일어나 걸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도 밖으로 나가 30분씩 한 시간씩 무작정 걸어 다녔습니다.

매일 봐서 하나도 새로울 게 없는 골목길.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낙엽 떨어지는 보도블럭 위.  그러나 그 길을 걷다 보면 머릿속은 단순해지고 길은 어느새 내 생각을 따라 움직이는 하얀 백지가 됩니다. 그 백지에 점 하나 찍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단어나 문장 하나 써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백지 상태죠. 당연합니다. 산책은 그런 거니까. 아르키메데스도 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유레카를 외친 건 아니었잖아요.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요즘 들어 하는 생각입니다만 속담은 진리와 가장 맞닿아있는 멘션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이 무거울수록 천천히 그러나 가볍게 걸으십시오. 보도블럭 하나하나의 무의미가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나가야 새로운 게 보입니다. 바쁠수록 돌아가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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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와일러 시대부터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는 유구하다. 전계수의 [러브 픽션]은 작정하고 만든 로맨틱 코미디다.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말마따나 영화 세 편은 만들 수 있는 양의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하정우 공효진 등의 무르익은 연기와 극중극 형식, 남자 주인공의의 내면을 반영하는 도플갱어 멀티맨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잔재미를 선사한다.

따스한 햇빛이나 술집 공간처럼 왠지 일본 로맨틱 코미디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미장센들은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경쾌한 음악, 재치 있는 가사들도 즐겁다. 특히 영화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여자의 겨드랑이털을 전면으로 부각시켜 여자의 과거 행각, 극중 소설의 제목, 밴드의 노래, 뮤직비디오 등으로 확장시킨 뚝심을 높이 사고 싶다. 

시퀀스 연결이나 편집이 약간 성긴 느낌도 난다.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이 들어가 전체적으로 과잉이 된 느낌이랄까. 조금만 더 짧았으면 더 경쾌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하정우와 공효진의 연기 앙상블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겨지는 영화. 게다가 지진희의 진지한 조연은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개봉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초반부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관객들은 민감하다. 어이없게도 추석이면 조폭 코미디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재밌는 영화는 금새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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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옛 회사 동료이자 페북 친구인 권오성 님과 댓글로 김연수의 신작 얘기를 주고받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더니 권오성 님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친 김에 책을 읽은 직후에 써놓았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독후감을 여기에 한 번 올려봅니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믿을 수 없게 뛰어난 천재의 작품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비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칠렐레 팔렐레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내 생각엔 그가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의 아빠는 9·11 때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었다. 아빠는 죽기 직전에 다급하게 집으로 여러 통의 전화를 했고 오스카는 그때 자동응답기에 아빠의 목소리가 녹음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워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오스카는 그 이후로 전화를 무서워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한다. 전화기를 무서워하는 오스카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얘기를 할 때는 무전기를 사용한다. 난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말투를 창조해 낸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할머니? 할머니?” “오스카니?” “전 잘 있어요. 오버.” “밤이 늦었어. 무슨 일이냐? 오버.” “저 땜에 깨셨어요? 오버.” “아니다. 오버.” “뭐하고 계셨어요? 오버.” “세입자한테 얘기를 좀 하던 참이었다. 오버.” 그 사람도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오버.” 엄마는 세입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단다. 하지만 방금 막 나갔어. 심부름할 것이 좀 있어서. 오버.”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 12분인데요? 오버.”


오스카는 전화를 무서워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제인 구달에게서 답장을 받기도 한다. 호킹도 나중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온다. 그는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고 발명을 한다. 보통 아홉 살이 아니다.
어느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을 뒤져보다가 파란색 꽃병을 깼는데,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씌여진 봉투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낸 뒤 여덟 달에 걸쳐 그 사람들을 방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는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다.

한편, 할머니는 오스카의 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헤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서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에서처럼 여기서도 드레스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비극적인 현실을 블랙유머로 펼쳐낸 책이었다. 보네거트와 사프란 포어는 이렇게 만나는 건가)

노트에 필기를 해서 대화를 했고 왼손엔 “예스”, 오른손엔 “노”라고 문신을 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할머니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일이다. 둘 다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아,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해진다.그냥 짧게 말하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입심과 다채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들로 이루어진 멋진 작품이다. 페이지 사이사이 사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글이 딱 한 줄만 써있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씨들이 서로 겹쳐져 볼 수 없게 만든 페이지도 있다. 근데 놀라운 건 그런 시도들이 조금도 치기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말하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을 워낙 잘 쓰다 보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아니, 너무 슬프면 울지 못한다. 그래서 오스카도 아빠의 장례식에 가는 날 리무진 운전기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오스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

 

넌 운전사와 농담을 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이 소설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똑 같은 장면을 찍을 것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화자가 바뀌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 그런 시선들과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덟 달 만에 이야기는 마침내 이상한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화해의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아직 새파란 1977년생인데. 아무래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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