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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1 역할만 살짝 바꿔도 이야기가 즐거워진다 - Trojan_'Big Date' 편




‘도레미파솔라시도’ 여덟 개 계명밖에 없는데 어떻게 늘 새로운 노래들이 쏟아져 나올까, 가끔 생각합니다. 신기한 일이죠?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TV를 틀면 만날 그 얘기가 그 얘기일 거 같은 ‘사랑 타령’이나 '출생의 비밀'도 늘 새로운 이야기를 장착하고 새롭게 시청자들을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스 신화나 서부개척시대 이야기, 이솝 이야기 등 옛날 얘기들은 ‘스타워즈’나 ‘해리포터’ 시리즈 등으로 허구헌날 우려먹어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인 모양입니다. 알란 파커 감독의 데뷔작인 [벅시 멜론]은 갱영화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어린이로 바꿨던  작품이었죠. 히트 뮤지컬 ‘넌센스'의 남자 버전인  '넌센스 A-Men’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이 나오는 오리지널 버전 공연장 관객 중 누군가가 즉석으로 제안했다는 이 남자 버전은 수녀 역할을 모두 남자로 바꿨을 뿐인데도 관객들에게 한층 더 높은 웃음을 선사하며 빅히트를 하는 효자상품이 됐죠. 


여기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살짝 바꾼 광고가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극과장 광고를 많이 선보였던 콘돔 회사 트로잔의 광고입니다. 데이트를 앞두고 설레는 주인공. 그런데 데이트를 나가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고 나이 지긋한 아빠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부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 것 같습니다. 거울 앞에서 그를 북돋아주는 사람은 그의 딸입니다. 아들은 현관까지 따라 나와 데이트를 응원하구요. 데이트 횟수를 묻는 아들에게 “우린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아빠. 그러나 아들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빠에게 슬쩍 콘돔을 챙겨주죠.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흐뭇한 장면입니다. 


이 CM을 보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게 꼭 ‘맨땅에 헤딩’을 해야만 나오는 게 아니구나, 하구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안정효의 소설 [하얀전쟁]을 보면 월남에서 무료함에 지쳐가던 국군병사들이 정훈영화를 거꾸로 돌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꾸로 걸어가는 군인들, 거꾸로 달려가는 자동차들...뻔하고 재미없던 보도장면들이 단지 필름을 거꾸로 돌렸다는 이유만으로 박장대소할 코미디로 변한 거죠.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전유성의 책도 있었구요. 이렇게 인물 배치도나 시간만 바꿔도 단박에 새로워지는 게 세상사인데 말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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