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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4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예 -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재작년에 읽은 벨기에 작가의 단편집인데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봤습니다. 스토리텔링이 아주 매혹적입니다. 한 번 사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앙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이 친구는 자신한테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료품을 팔기 위해 하루 열 시간씩 차를 몰고 다닌다. 개처럼 일만 하는 남자. 게다가 가입한 사교 클럽 하나 없고 유머감각 조차 없으니 괜찮은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배달된 신문 사이에 끼어있던 찌라시에 ‘여자친구를 찾고 계십니까?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만 연락 바랍니다.(성적 접촉이나 매춘 아님)’이란 요상한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앙리가 전화를 걸어 어떤 농장 같은 데로 찾아가 보니 흰 가운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나타나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자를 소개한다. 주변엔 암소들이 많다. 앙리가 여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남자가 말한다.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암소니까요.”

 
이런 이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진짜 이런 소설이 있다. 토마 귄지그라는 벨기에 소설가가 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소설집 중 <암소>라는 단편이 바로 그것이다.
 
 
가운을 입은 남자는 농학자였다. 그는 유전자 변형 연구를 하다가 더 많은 고기, 더 많은 우유는 물론 사람을 닮아 보기에도 좋은 암소를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을 삼 개월 동안 관찰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광고를 낸 것이다. 석 달 동안 이 여자를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앙리는 암소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안타까운 사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여자가 단지 암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말도 한 마디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농학자가 어찌나 심하게 다뤘는지 손만 대려고 해도 질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서는 거실 바닥에다가 태연하게 똥을 싼다. 앙리는 일단 각설탕으로 여자를 유혹해서 소파 위에서 억지로 성관계를 맺는데 성공한다. 
 

우울한 몇 주일이다. 그리고 우울한 크리스마스다. 여자를 일찍 반납하면 안 되냐고 전화를 걸어물어봤더니 삼 개월을 꼭 채워야 한단다. 마갈리란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여자는 여전히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부엌바닥에서 누워 잔다. 앙리가 아무리 잘해줘도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를(사실은 암소를!) 소파에서 강간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 앙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사료나 찾는 여자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펐다.
앙리는 마갈리에게 지랄을 한다. 너 같은 건 이제 더 보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는 밀린 일을 하다가 빵을 가져가려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 창문을 통해 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뺨에서 눈물 같은 게 보이는 거 같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며칠 후 앙리는 가운 입은 남자에게 암소를 데려갔다. 앙리는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짓고 그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가운 입은 남자는 암소를 외양간에 가두기 위해 암소의 엉덩이를 세차게 갈겼다. 

  “음, 그러니까 똥오줌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로군요.”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사실 이런 걸 개인이 집 안에 두고 기른다는 건 아직 무리죠.”   앙리는 그 말에 동의하고는 암소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아, 이 암소 말인가요? 아쉽지만 이 녀석은 젖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육질만큼은 최상품이죠. 조만간 도축업자들에게 넘길 겁니다. 제가 늘 거래하는 곳이 있거든요.”   앙리는 남자의 사업수완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정말 골때리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이 골때리는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인생의 슬픔, 외로움 등을 잔인할 정도로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암소>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란 인간이길래 이따위로 못돼먹고 뒤틀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가학적인 유머감각에 낄낄거리다가도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질 정도로 살벌한 냉기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미친 작품들. <암소> 외에도 <기린>, <곰, 뻐꾸기, 무늬말벌, 청개구리>, <코알라> 등이 특히 재밌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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