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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29 오중석 작가의 세렌디피티

오중석 작가가 예전에 전시하고 모아 놓았던 사진들을 스튜디오에서 다시 전시 판매한다고 해서 일요일 낮에 아내와 함께 구경을 갔다. 스튜디오 아래층에서 하우스웨딩 때문에 분주하길래 혹시 전시장을 잘못 찾은 건 아닌가 걱정을 하고 2층 문을 빼꼼히 열었더니 개그맨 이휘재 씨가 혼자 서 있다가 "전시회 여기서 하는 거 맞아요. 저도 방금 와서..."라고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곧 오중석 작가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전에 스튜디오에 왔을 때 구경했던 사진들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오 작가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 작가는 1940~50년대 누군가가 찍은 코닥 필름을 통째로 사서 모으는 게 취미인데 누가 언제 찍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필름이라고 한다. 운이 좋으면 좋은 사진이 걸리고 아니면 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인천상륙작전]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는데 거기선 해방 직후 일본 사람들이 남겨놓고 간 가방들을 '근 수로 달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나온다. 똑같이 생긴 가방이라 값도 똑같고 속에 금덩이가 들어 있을지 옷가지가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채 오로지 운에 맡기는 것이었다. 오 작가도 그렇게 낡은 슬라이드 필름들을 무작위로 꺼내 한 장 한 장 인화해보는 과정에서 만나는 뜻밖의 수작들의 즐거움 때문에 이 필름들을 구입한 것이리라. 말하자면 일종의 '세렌디피티'인 것이다. 



그런 작품 중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오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풀장 사진이란다. 1950년대 미국인지 영국인지 알 수 없는 지역에서 찍힌 사진인데 오 작가가 다시 컬러 작업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으로 한 번 보았던 사진이라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가장 반가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어딘가 사막을 향해 걸어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 사진을 좋아한다. 역시 1950년대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관광객들인지 아니면 어디 잠시 들렀다가 사막에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사진이다. 모두 수평선처럼 펼쳐진 모래 언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유독 안경을 쓴 대머리 아저씨 혼자만 뒤를 돌아보는 게 인상적이다. 오 작가는 자신도 이 사진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데 사진을 찍은 시점을 미루어 보건데 키가 크 사람이 찍었을 수도 있고 버스 위에서 찍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두바이나 사우디 어디처럼 카메라 뒤쪽에 커다란 호텔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 보기도 한다고 했다. 

재미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양복 바지와 셔츠 차림이고 여자들은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 입었고 꼬마 여자애만 빨간 바지다. 뭔가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인데 뿌연 사막을 배경으로 걸아가는 모습이 [환상특급]이나 [블랙 미러]의 한 장면처럼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오 작가도 가끔 저승 가는 사람들 사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며 웃었다. 오 작가는 모텔 간판이 있는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는데 우연히 사막 사진과 구도가 비슷하다는 걸 발견하고 두 필름을 겹쳐 보았더니 아주 새로운 그림이 되었다고 하며 우리에게 직접 두 필름을 겹쳐서 보여주었다. 순간 사막에 있던 사람들이 모텔이 있는 거리로 들어오는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 이런 재미와 열정 때문에 때로는 새벽까지도 혼자 컬러 작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렌디피티 말고도 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많았다. 자신은 상업 사진을 많이 찍기 때문에 전시를 할 때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진들만 올린다고도 했다. 아무래도 일을 위해 찍은 사진과 그런 목적 없이 그냥 찍은 사진은 작가에게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명함이 있길래 꺼내보았더니 옆으로 펼쳐지게 되어 있었고 다 펼치자 뒷면에 작가가 찾은 또다른 풀장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우리집이 너무 작아서 걸어둘 수 있는 사진은 없고 오늘은 그냥 명함만 가져가서 벽에 붙여 놓겠다고 했더니 오 작가도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좋은 작가들은 일단 자신의 작업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중석 작가도 코닥 필름 얘기를 할 때 얼마나 눈이 반짝이는지 자신은 모를 것이다. 이러니 힘들어도 늘 재미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돈이 많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잘난 척만 들입다 하느라 별 재미가 없다. 진짜 즐거운 건 이런 사람을 만날 때인 것이다. 다음 전시회 때 또 만나자고 얘기하고 웃으며 스튜디오를 나왔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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