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다는 것은 일부러 돈과 시간을 내고 컴컴한 극장으로 들어가 남들이 만들어놓은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줄 마음을 먹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건 좀 미친 짓인 거 같다. 그런데 얼마 전 개봉한 [그랜드 브다페스트 호텔] 같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늘 이런 미친 짓 하길 참 잘 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해보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니 이를 또 어쩌랴.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옛날 남부러울 것 전혀 없고 아라비아의 왕이기도 했었던 그 자는 왜 매일밤 아름다운 샤라자드의 옷을 벗기는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달라고 너드짓을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어렸을 때 잠들기 전이면 할머니에게 호랑이든 곰이든 나무꾼이든이 나오는 뻔한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매일 졸랐을까?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던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지구인들 유전자 어딘가엔 권태를 이기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거나 아니면 ‘이야기 본능’이라고 하는 의외의 요소가 찰지게 아로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 그렇다.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래서 누구든 틈만 나면 ‘이빨’을 까고 ‘구라’를 푼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놈이 하느냐에 따라, 또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이야기의 깊이와 재미는 시시각각 달라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듣고 보고 느끼는 공감각의 시대라 그 방법론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소설가나 철학자, 교수들 중에는 자신의 직업명을 제껴버리고 ‘이야기꾼’이라는 닉네임을 이름 앞에 달고싶어 안달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원한다고 다 이룰 수는 없는 법. 품새가 어설프거나 도그마적인 한계에 부딪혀 엉뚱한 길을 헤매는 수많은 중생들을 뒤로 하고 단연 괴팍한 천재로 우뚝 빛나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웨스 앤더슨이다. 그는 자신만의 강박적인 스타일과 자유로운 상상력, 복고적 화법, 강렬한 색채, 미친 속도감과 블랙유머 등을 무기로 단숨에 그 분야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흥미진진한 가상 공간을 삽으로 푹 떠서 통째로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1930년대 동유럽의 가상국가 주브라스카 공화국에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총지배인 구스타프가 고객이자 연인이었던 마담 D의 아들에 의해 그녀의 살인범으로 몰린 뒤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비싼 그림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무자비한 암살자에게 쫓기는 것은 물론 투옥과 탈옥 등 갖은 고초를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코스처럼 두루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누명을 벗게 되지만 그만 허무하게 사망해 버리고 그 호텔은 벨보이였던 무스타파(또는 제로)가 물려받게 된다는 코믹 환타지 역사 미스터리 모험극, 이라고 거칠게 줄거리를 요약하고 나면 그 무신경함에 분개한 나머지 나를 죽이려 드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나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그 구조가 너무나 빈약하다. 더구나 코미디라고 하기엔 고급스러운 유머가 너무 많이 등장하고 역사극이라고 하긴엔 그 연대가 흐릿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너무 재밌어서 지난 몇 달 간 봤던 다른 영화들이 어느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호텔 부다페스트 호텔]이 관객 40만을 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2014.04.08. 경향신문 24면 하단) 소위 ‘다양성 영화’로서는 초대박을 친 것이다. 무엇이 이 영화를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으로 만들었던가. 우선 이전 웨스 앤더슨의 이전 영화들(이르테면 ‘로얄 테넌바움’이나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같은)에 열광했던 매니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감독의 필모그라피는 물론 카메라나 렌즈의 종류, 영화 속의 세세한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시네필들의 헌신적인 입소문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영화감독 박찬욱 등 문화계 유명인사들의 ‘투 썸즈 업’ 추천이 그 인기몰이에 더욱 불을 지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앞서는 요인들이 있으니 그것은 이 영화가 그 자체로도 참 이쁘고 경쾌하고 재밌다는 사실이다. 우선 주인공들의 말이나 행동이 엄청 빠르다. 주인공 구스타프는 물론 그의 천적인 드미트리, 벨보이 제로, 그리고 벨보이의 여자친구이자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는 빵집 아가씨 아가사까지 이들은 한결같이 대사가 빨라서 이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흡사 우리나라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이나 표정들도 옛날 무성영화 시절의 배우들처럼 속도가 급하고 경쾌해서 어떤 슬픈 장면에서도 결코 완전 슬퍼지지는 않고 위험한 순간에 이르러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덜 졸이게 되는 것이다.
옛날 옛적에 어떤 마을에…하고 고전적으로 이야기 파일을 여는 형식들은 결국 ‘이거 내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얘긴데…’라는 조건이 전제됨으로써 전달자의 각색이 더 흥미진진해지는 법인데 이 영화는 그림 속의 그림이 몇 개나 겹치고 책속의 책처럼 이중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 ‘챕터식 구조’라 이야기의 변용이나 화면비율이 만화나 동화처럼 자유롭고 또 그로 인해 어느 시점에서 카메라가 멈추든 결국 그 시절의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오고 마는 의외의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거기다가 웨스 앤더슨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하찮은 소품 정도로 취급해도 상관없다는 듯 작정하고 모여든 수많은 일급 배우들 -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시얼샤 로넌, 윌렘 데포, 애드리언 브로디, 에드워드 노튼, 주드 로, 빌 머레이, 하비 케이틀, 레아 세이두 등을 동시패션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대스타들을 한꺼번에 스크린 안에 담을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배우들을 병렬식 구조로 줄줄이 세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대규모 앙상블’의 대가 로버트 알트먼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어느 면에선 이게 더 쉬울 수도 있다고 한다. 뭐 하나가 삐끗하면 다른 쪽으로 도망갈 구석이 생기니까.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들로 인한 복잡함이나 지루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미스터리 구조를 슬쩍 끼워넣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도 틸다 스윈튼이 분한 마담D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었다. 물론 이 살인사건이나 누명은 일종의 ‘맥거핀’ 효과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고 사소하다. 그러나 이 모티브 덕분에 주인공들이 호텔을 벗어나 알프스 산등성이에 있는 수도원까지 올라가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히치콕의 옛 영화를 보는 듯한 흐뭇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된다. 거기다 ‘체크포인트19 교도소’ 등을 잡을때의 카메라 앵글이 보여주듯 웨스 앤더슨의 좌우대칭에 입각한 엄격한 카메라 워킹과 대담한 컬러감은 불현듯 팀 버튼의 초기 영화를 떠오르게 하고 때로는 박찬욱의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가장 큰 덕목은 방금 말한 영화들나 감독의 생산물과 어느 정도는 유사할지언정 결코 같다고는 할 수 없는 또다른 ‘향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 영화에서 제 3의 텍스트나 영화가 떠오른다며 자랑하는 것은 영화 마니아적인 취미를 즐기는 호사가의 잘난 척일 뿐이다.
베를린 영화제는 작년에 이 영화에 심사위원 대상을 안겼다. 아마 그들의 시상 이유에는 웨스 앤더슨의 독창적인 미학과 그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테크닉들, 유려한 음악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지평을 넓힌 뛰어난 기획력, 그가 영화 말미에 언급한 오스트리아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에 대한 예우까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그럴듯한 이유보다 앞서는 것은 역시 상영관에서 엔딩 크레딧을 보고 일어서는 순간 ‘아, 이런 영화라면 한 두 번쯤은 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는 극장문을 나서지 마시길 바란다. 웨스 앤더슨은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깨알 재미’를 선사하는 성실한 감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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