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 책 - 김현성의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오래 전, 조영남이 TV 독서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쓴 새 책 <예수의 샅바를 잡다> 얘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여자 아나운서가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첫째는 섹스”라고 대답했고(아, 역시! 하고 아나운서가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두 번째는 공부” 라고 했다. 아, 공부라니. 천하의 ‘논다니’이자 스캔들 메이커인 조영남이 섹스를 좋아하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지만 두 번째는 돈도 술도 권력도 음악도 아닌 공부라니.
물론 나는 그때 조영남이 말한 공부가 도서관에 앉아 수험도서를 읽고 시험을 치루고 하는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리고 그것은 뮤지션 출신의 신예 작가 김현성이 쓴 첫 번째 감성에세이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를 읽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도대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 걸까.
김현성의 책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는 연애의 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작가는 누군가와의 헤어짐이 새로운 성찰을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뭘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라는 인생고민을 풀기 위해서 여행을 결심한다. 여행.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이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스스로를 객체로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가득 차고 있는데 가진 것은 텅 비어 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김현성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글이다. 이건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느끼게 되는 감성인데 문제는 그때 바로 과감하게 여행가방을 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깨달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생각만으로 그치면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여행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작가가 여행자가 되기 위해 가방을 꾸리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이 가방에 대해 썼던 글과 철학자 장석주의 가방에 관한 글 들이 떠올랐다. 여행지로 떠나기 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 비로소 한 개의 가방이 꾸려졌을 때, 그게 한 사람 인생에 필요한 모든 물건의 최소부피라는 그들의 글을.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하는 바람에 우연찮게 가수가 되었던 김현성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는 순간 인생이 달라졌다. 문학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뭘 해야 행복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뮤지션의 길을 버리고 한예종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서양철학의 형이상학적 해명’이라는 어려운 강의를 들으며 예술과 철학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낚시 애호가가 낚시를 할 때 가장 편하고 행복해하는 것처럼 김현성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만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계속 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태리와 파리 등 유럽 지역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은 때로는 정갈한 문장들로, 때로는 유머 넘치는 표현으로 읽는 맛을 더해준다. 나는 특히 가리발디역에서 무임승차를 했던 잘생기고 가난한 호텔리어 줄리안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피렌체공항에서 약속한 후배가 오지 않자 괜히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매치기 집단이 아닐까 걱정하며 오해의 파장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선량한 흑인남자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던(마마, 난 이제 사람 죽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지쳤다고요. 이젠 정말 조용히 살고 싶어. 그런데 마마, 저 동양인 새끼가 자꾸 우릴 빤히 쳐다보는데, 가서 확 죽여버릴까요?)장면을 읽고 많이 웃었다. 그리고 에밀 졸라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파리는 물론 중세의 천재화가 조토의 벽화를 찾아나서는 책 말미의 이탈리아 여행 에피소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다만 인생이라는 단 한 번 주어진 여정을 걸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이 될수 있을까 고민해본 과정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생각의 지도다. 나는 운좋게도 이 책의 초고를 먼저 읽어보는 행운을 누렸고 어쩌다보니 내가 제안했던 제목(원래는 ‘당신들처럼 나도 외로워서’였는데 작가의 최종 의견에 따라 ‘당신처럼’으로 바뀌었다)으로 책이 나오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내가 지은 제목이라고 무조건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문장수업을 하고 생각의 결을 정련한 신예작가 김현성의 글들이 정말로 좋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도 모두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요즘 사람들 틈에서 이 책을 펼쳐 읽는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에서 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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