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이승연 배우가 나오는 독립영화를 논현동에 있는 '이디야커피랩'에서 보게되었다. 이디야 커피랩 사장께서 매장 한 곳에 'E씨네'라는 아주 작은 상영관을 만들어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한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어제 상영작은 [내 청춘에게 고함]으로 잘 알려진 김영남 감독의 [뜨거운 차 한잔]. 2005년도에 찍은 40분가량의 단편이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어쩐 일인지 다시 건강해졌다는 진단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는 딸. 병원에서 나온 딸은 아버지에게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 하지만 아버지는 걸어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화가 나서 아버지와 헤어진 딸은 네 살난 아이와 함께 읍내로 나갔다가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남자를 만나 모텔로 간다. 그들이 섹스를 하는 동안 모텔 주변에서 놀던 아이는 사라진다. 

아이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할어버지, 새로 생긴 남자친구에게도 위안을 얻지 못하는 엄마, 서울에 있는 친오빠와의 가시돋힌 전화, 엄마의 불안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어린 아들, 전남편에게서 온 편지...등등 영화는 숨겨진 많은 애기들을 뒤로한 채 아버지와 딸 사이에 놓인 차 한잔을 바라보다 끝을 맺는다. 

비록 톤이나 화법은 달랐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롱테이크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장면전환할 때마다 약간의 여운을 주는 카메라워크가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필름으로 찍었다는데 정작 어제는 필름으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뜨거운 차 한잔>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장편으로 개작을 하려다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엎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이승연의 연기는 11년 전인데도 그 내공이 엄청나다. 그녀가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작은 영화관에 열 명 남짓 모인 관객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 열기와 진지함은 어떤 시서회장보다도 뜨거웠다. 이렇게 작은 영화들이 일반 관객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라꼴이 하도 말이 아닌 때라 영화 보는 것도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지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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