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많은 글입니다.
SNS와 모바일의 시대로 변하면서 ‘스포일러’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젠 누구나 영화를 본 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적 관계망’에 감상평을 실시간으로 올리기 때문에 영화의 주요 내용이나 감상평도 미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죠.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를 절대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스포일러는 그렇게 나쁜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스포일러가 정말 그렇게 흔한 걸까요? 스포일러는 스릴러나 추리물 등에서 반전이나 의외의 결말을 미리 알려 보는 이의 김을 빼는 행위를 말합니다.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남자가 버스 창문을 열고 “범인은 절름발이다!”라고 소리친 사건이 가장 유명한 스포일러 사례입니다. 물론 저도 어느날 저녁 [디 아더스]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제 자리로 일부러 와서 “걔네들, 다 귀신이다?”라고 속삭였던 사악한 후배 카피라이터년의 만행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스포일러라는 단어는 스릴러나 추리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다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영화에 대해 무슨 얘기만 좀 하면 다 스포일러라고 합니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러 갔을 때도 스포일러를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주인공인 파이가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인 보험조사원들에게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는 것이죠. ‘두 개의 이야기’라는 반전,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미리 알고 가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감동의 폭이 줄어든다구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전 얀 마텔의 원작 소설을 읽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파이가 구출되는 장면까지만 읽고 (아마 바쁜 일이 생겨서 거기까지만 읽다가 팽개치고 다시 안 집어 든 거겠죠) 병원 부분부터는 읽지 않았더군요.
가장 중요한 장면을 빼먹은 덕에 저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영화가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와 파이라는 소년이 작은 구명보트 위에서 227일간 표류하다가 결국 살아남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기’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맨 마지막에 파이가 영화의 화자인 소설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게 더 마음에 드느냐?”라고 물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요. 이건 정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소년과 호랑이의 믿을 수 없는 227일간의 표류기’에서 그쳤다면 이 이야기는 신기하고 감동적이지만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에 머물렀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마지막에 또 한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관객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파이 오브 라이프]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거나 또는 믿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 껍질을 한 겹 벗겨냈을 때는 본질이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가, 라는 깨달음으로 외연을 확장합니다. 소년의 성장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단숨에 인식론의 사다리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집에 와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파이가 일본 운수성 해양부 직원들의 과자를 빼앗아 먹으며 두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책 어디에도 그로 인한 새로운 인식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황당하더군요.
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언어의 마술사 얀 마텔이 펼치는
놀랍고 감동적인 227일산의 인도 소년 표류기-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드문 경험이었다. 중앙일보
- 파이의 희망이 점점 커져 당신 심장 안에서 노랫가락이 되어 흐르기를. 조선일보
-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백경]을 잇는 최고의 모험소설 마거릿 애트우드
- 거칠고, 의미심장하고, 드라마틱하며, 재미있는 진정한 소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소설책 [파이 이야기]의 책 뒷면과 띠지에 붙어있는 서평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또 다른 이야기’에 대한 언급조차 없습니다. 번역자의 후기를 읽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나올 당시 서평자들이나 번역자까지도 이 작품의 진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승리’나 ‘희망, 또는 신의 문제’ 등으로만 파악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영화로 만들면서 파이의 또 다른 이야기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면 이것은 그냥 소설의 부록쯤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로 남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대목은 이안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시네아티스트인지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사례이기도 하구요.
원작소설도 끝까지 읽지 않고 다른 매체의 리뷰도 읽지 않은 채 영화관에 간 덕분에 전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씨네21]에 쓴 글을 읽고 거기에 제 나름의 생각까지 보탠 뒤에야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그 진가를 마음껏 즐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전에도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화끈한 첩보물인 줄 알고 갔다가 그 진중한 분위기에 눌려 두 시간 동안 몸을 배배 꼬며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나 비즈니스적 감각이 전무한 상태로 [머니볼]을 보고 나와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한 적도 있구요. 스필버그의 [뮌헨]도 1972년 당시의 국제 정세와 사회적 분위기를 좀 더 익히고 갔더라면 훨씬 더 풍부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후회를 했습니다.
스포일러를 두려워한다는 건 텍스트를 대하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에서 그것과 마주치고 싶어요”는 언뜻 들으면 순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눈앞에 있는 것만 겨우 보고 듣고 만족하겠다는 심뽀인 것입니다.
여행을 가면서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문화를 일부러 공부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의 역사나 로마 황제들의 에피소드를 하나도 모르고 간다면 포로로마노의 콜로세움에 가더라도 그에겐 그저 무너져가는 오래된 돌담에 불과하겠죠. 나중에 “야, 로마가 경치는 참 좋더라,” 뭐 이런 정도의 얘기야 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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