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잠깐 문상을 갔었다. 예전 MBC 합창단원이기도 했고 가수 소찬휘의 매니저이기도 했던 뚜라미 일 년 후배 윤선이가 모친상을 당한 것이었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낮에 잠깐 들른 것이었는데 문상객 중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학교 다닐 때 장마담이라 불렸던 미숙이가 와 있었고 미숙이와 윤선이의 불문과 동기인 은주 씨도 있었다. 그 분도 나처럼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했다. 지금 자기는 일을 그만둔 상태지만 남편은 아직도 작은 광고대행사 대표를 맡고 있다고 했다. 은주 씨는 우연히 누가 가르쳐줘서 나의 홈피인 '편성준의 생각노트'를 자주 들여다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 '독하다 토요일'에 자기도 참석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 모임은 6개월에 한 번씩 회원을 모집하니까 지금은 들어올 수 없고, 또 책을 읽고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두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잠깐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척하다가 얼른 술집으로 달려가는 게 목적이라고 했더니 그 점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 블로그 얘기를 듣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거긴 글을 자주 올리지 않는 곳인데, 하며 약간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다. 장 마담이라 불릴 정도로 인물도 좋고 성격도 호방하던 미숙이는 현재 경마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며 명함을 건냈다. 또 다른 독문과 친구도 한 분 있었는데 이름을 잊었다. 

아무튼 대낮부터 술을 마시기도 그렇고 해서 생선전이나 동그랑땡 같은 안주에 물을 마시며 수다를 떨며 놀다가 '이렇게 미녀 세 분을 모시고 얘기를 나누니 정신이 다 혼미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살 미 자야, 쌀 미!" 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 넉넉한 대거리에 또 기분이 좋아졌다. 한 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먼저 일어서야겠다는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학교 정문쪽으로 걸어나가다가 무심코 파카 바깥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반으로 접은 편지봉투가 잡혔다. 내 이름을 쓴 부의금 봉투였다. 방명록에 이름을 쓰면서 잠깐 주머니에 넣었다가 잊어버리고 그냥 나온 것이었다. 황급히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서 부의금함에 봉투를 집어넣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장례식장에 올 때마다 벌이는 실수들만 차곡차곡 모아도 작은 책이 하나 나올 기세다. 

'길위의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압구정동 오지라퍼 커넥션의 결말  (2) 2019.01.08
<좋아요>  (0) 2019.01.06
우리는 모두 한때 바보였다  (0) 2018.12.17
<산책길에 마주친 두 개의 행운>  (0) 2018.12.02
실수담이 많은 게 낫다  (0) 2018.11.30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