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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02 조그만 슈퍼 안에서 펼쳐지는 웃음과 눈물의 향연 - [장군 슈퍼]


셰익스피어는 그가 올린 연극들이 오늘날처럼 전 세계를 풍미하는 고전이 되리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전 세계의 대학에서 그의 극작만을 평생 연구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지만 당시에는 그도 그냥 연애하는 남녀가 나오고 고민하는 왕자나 고리대금업자, 권력을 쥐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왕족들이 등장하는 '대중 연극'을 만드는 것이고 자신은 극단을 운영하기 위해 계속 대본을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니까. 그런데 결국 그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들은 거창한 얘기보다는 이처럼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일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어제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본 [장군슈퍼]라는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시대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공감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얘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이 연극은 아들 장군이의 이름을 딴 슈퍼마켓에서 일어나는 잔잔하고 착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편의점과 마트가 판을 치는 세상에 왜 굳이 슈퍼마켓 이야기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게 커지고 자동화된 공간보다는 조금 뒤쳐져도 그 덕분에 아직 '아날로그'가 남아있는 곳에 따뜻하고 정감있는 사연들이 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슈퍼가 마트에 밀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엄마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슈퍼 일을 보는 장군이, 그리고 동네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장군이의 이모 선희, 옆집에 사는 재수생 성환, 그리고 성환이 약사라고 얘기해서 그런 줄 알았던 미선, 슈퍼에 와서 혼자 맥주를 마시곤 하는 미남 등이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언제나 믿고 보는 배우 이승연과 이모 역의 박진호가 극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장군 역의 김상균과 성환 역을 맡은 오영윤이 웃음코드와 눈물이 나는 장면들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잔잔한 이야기지만 미선의 정체나 장군의 친모 이야기 등 극을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복선들도 있어 90분 간 전혀 지루할 틈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어제는 연극계의 아이돌이라는 오영윤의 팬들이 많이 온 모양이었다. 그가 나와 연기를 할 때마다 객석에 있는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배우 이승연과 함께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녀는 공연이 끝나고 배우, 연출 등과 함께 짧게 오늘 공연에 대한 리뷰와 보완점 등을 얘기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다며 미안해했으나 우리들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연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 등으로 이루어져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날을 체크해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춘천거기]등을 쓴 작가 김한길(소설가이자 정치인인 그 김한길 말고)의 작품이라 이미 탄탄한 적품성을 인정 받았지만 이번에 극단 '가족의 탄생'이 새롭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려 노력한 마음이 느껴진다. 9월 21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상연한다. 시간 내서 보시길 추천한다. 우리는 인터파크로 티켓을 예매하서 봤는데 티켓값이 너무 싸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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