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10.09 공원의 불륜 커플
  2. 2013.04.17 오늘의 사진일기_아침 열 시의 우리동네 사람들




아내와 나는 살림을 합치고 성수동에 있는 전세 아파트에서 4년을 살았다. 성수동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출퇴근이나 외출을 하기 위해 전철을 타려면 한강공원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려 집까지 이어진 공원길엔 새들이 노니는 푸르른 나무와 꽃들, 그리고 깨끗한 보도블럭이 기분 좋게 조성되어 있었고 곳곳에 벤치와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이 있었다. 특히 화장실은 나처럼 갑자기 대소변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잦은 인간에겐 정말로 고마운 시설이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함께 웃다가도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서로의 가방이나 소지품을 맡기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일이 많았다. 똥오줌 걱정 없이 천천히 걷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공간. 누구의 소유도 아닌 벤치. 나는 이런 게 너무나 좋았다.

사람들은 공원에 와서 산책도 하고 체조도 했다. 아침부터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도 있고 클라이밍 동회회 사람들이 모여 암벽등반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뚝섬유원지공원 안 인공암벽에 오르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아는 얼굴을 만나기도 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우리집에 와서 도배를 해주신 지물포의 여사장님이었다. 암벽등반 장비를 갖추고 절벽을 오르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도배를 할 때나 가게를 지키고 있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새롭고도 멋있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찾았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젊은이들이나 데이트족들이 많이 와서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거나 배달 치킨을 시켜 먹었다. 모처럼 원피스를 빼입고 하이힐을 신고 나왔다가 공원에 와서 어색한 데이트를 하게 된 젊은 여성과 그 파트너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잠깐이었다. 눈부신 젊음들에겐 그런 서글픔쯤은 금방 날려버리는 힘이 있었으니까. 밤이면 버스킹을 하는 뮤지션들도 있었고 마술을 연습하는 사람, 혼자 색스폰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공원이라는 열린 공간은 숨가쁘던 일상을 멈추고 각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거나 보여주는 곳이었다.

우리는 햇볕 좋은 봄날이나 가을의 휴일이면 작은 그늘막과 돗자리를 들고 공원 잔디밭으로 나갔다. 가끔은 놀러 온 친구들과 공원으로 나가 간단한 와인파티를 열기도 했다.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내는 공원에 있는 커플들의 뒷모습만 봐도 부부인지 불륜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손을 꼭 잡거나 서로의 손을 지나치게 다정히 어루만지며 가는 커플은 거의 다 불륜이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다시 사람들을 쳐다보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일단 부부는 나란히 서서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남편이 앞서 걷고 2보 이상 떨어져 아내가 걷는 경우가 흔했다. 저 사람들도 처음엔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감정이 균질하게 흘러갈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세월이 지나 다 그렇게 된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 공원을 걸을 때마다 '불륜커플 코스프레'를 많이 했다. 내가 아내의 손을 잡아 끌거나 허리를 감싸안으면 아내가 "어머, 왜 이러세요~?!"라고 외치는 식이었다. 부부보다는 불륜 커플이 훨씬 더 행복해 보였으니까. 이제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와서 한강공원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다행히 우리는 아직도 길을 걸을 때 손을 잡고 가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위해서 좋은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불륜 커플처럼 보이려면 지금보다 손을 더 꽉 잡거나 서로 만지작거리면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잠깐 반성을 해보는 중이다.


'짤막한 비망록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영복  (0) 2019.03.28
'해외결제 백만 원 사건'의 전말  (0) 2018.10.25
공원의 불륜 커플  (0) 2018.10.09
특별한 일  (0) 2018.08.10
처음 개봉관에 갔던 날, 영화 [킹콩]을 보았다  (0) 2014.04.26
Posted by 망망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전 열시에 

카메라를 들고

우리동네를 좀 돌아다녔더니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더군요.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던 할머니,

고물상 아저씨와 뭔가 한참 얘기를 나누시더니 금방 사라지셨습니다

 

 

 

 위치나 보나 자세로 보나 왼쪽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이 동네 짱인 거 같죠?

 

 

횟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엔 쉬는 분도 있고 운동을 하는 분도 있고

 

 

 24시간 언제나 아침뿐인 저의 단골, 모닝마트입니다

 

 

뚝도시장 입구에 있는 가게 아저씨. 오늘 팔 핸드백을 진열하시는 중

 

 

예전엔 중학생들이 많이 매던 '쌕'을 이젠 할머니들마다 매고 다니시더군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한국사람들은 왜 다들 평소에도 등산복을 입구 다니냐?"고 묻는다죠. 아마 그들은 이해를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세운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수트라는 옷은 그리 활동성이 좋지 않은 옷이거든요. 그래서 양복은 회사에 출근을 하거니 어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갈 때만 입기 십상이죠. 우리 아저씨들은 평소엔 바지에 점퍼를 많이 입습니다.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입니다. 어른들이 그런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도 덩달아 값이 비싼 등산복이었던 '북쪽얼굴'에 목을 매고 그랬으니까요. 사회적 지위가 높거니 부유한 층을 제외한 일반 서민들은 지금도 일할 때나 산책할 때나 가리지 않고 등산복 바지나 점퍼를 입고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다들 '그냥 편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저도 어쩌다 수트를 입을 때는 왠지 스스로를 좀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트를 입은 날은 괜히 몸도 더 추스리게 되고 양복이 구겨질까봐 아무 데나 앉지도 않게 되거든요. 또 셔츠도 한 두번 입고 나면 드라이크리닝을 맡겨야만 하기 때문에 돈이 들고...아무튼 아침에 등산복을 입고 찡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아저씨들이 다들 수트에 구두를 신고 저러고 있어도 꽤 웃기겠구나 하며 혼자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죠.^^

 

 

 

Posted by 망망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