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뉴욕을 사랑하는 작가 우디 앨런은 근 십 년 동안 유럽을 떠돌며 영화를 찍어야 했다. 갑자기 뉴욕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미국에서는 자신의 영화에 돈을 댈 투자자들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는 전세계가 사랑하는 시네아티스트 우디 앨런조차도 살아남기 힘든 블록버스터의 왕국인 것이다. 


[매치 포인트] [스쿠프] [환상의 그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등등에서 스칼렛 요한슨, 페넬로페 크루즈 증 새로운 뮤즈들과 함께 유럽에서 소소하지만 자유로운 작업을 진행했던 우디 앨런은 회심의 역작 [미드나잇 인 파리]의 엄청난 흥행으로 인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위엄이 서는 ‘여왕’ 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새 영화를 찍게 된다. 그게 바로 [블루 재스민]이다. 



케이트 블런쳇은 말한다. “우디는 사실 이 역할을 자기가 직접 연기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재스민이 여자라서 할 수 없이 나를 시킨 것이다.” 케이트의 통찰력 있는 지적이 아니라도 그 동안 우디의 영화들은 모두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부자 남편을 만나 뉴욕에서 상류생활을 즐기던 재스민(자넷이란 이름도 상류상회에 어울리게 재스민으로 바꿨다)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여동생집에 얹혀 살게 된다. 돈은 한 푼도 없지만 여동생한테 갈 때도 일등석을 타고 간다. 루이비똥 가방에 놀라는 여동생에게”이건 다 예전에 산 거고, 내 이니셜이 들어가 있어 중고는 팔기도 힘들어서 그냥 들고 온 것”이라 변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한 법이다. 재스민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칫과의 사무원으로 취직을 하기도  하지만 자기는 이것보다는 더 뭔가 의미 있고 대단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전부터 사람들이 나한테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어보라고 했어. 인터넷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워야지. 그러려면 먼저 컴퓨터 강좌부터 들어야겠네…"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마음에도 안 드는 칫과의사가 사귀자고 덤비질 않나, 여동생이랑 사는 ‘루저’가 오히려 자길 업신여기질 않나.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은 샤넬의 트위드 재킷과 에르메스 백, 그리고 거짓말뿐이다.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가 해피엔딩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도 본 기억이 없다. 모든 것을 잃은 재스민은 길거리에서 혼잣말을 하며 끝을 맺는다. 재스민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거의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에 버금가는 엔딩씬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거기엔 묘한 쾌감이 있다. 나이 80이 넘은 이 악동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섣불리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의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너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니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는 역설의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그래 좋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우디 할아버지도 힘들단다. 그러니 우리 모두 힘을 내자.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까지는  아닐지라도 뭐, 조금 위로는 되는 법이니까. 하하.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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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먼저 본 이야기를 연극으로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극 [클로저]를 보러 가면서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난 영화를 두 번이나 봐서 줄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캐릭터도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하고 있다. 그러니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입장료는 영화를 볼 때보다 훨씬 비싸다. 단지 연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텍스트를 관객들이 대학로까지 가서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클로저]는 1997년 5월 런던에서 초연된 후 유럽, 일본, 호주 등 전 세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인기 작품이다. 영화 또한 백전노장인 마이크 니콜스 감독에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나탈리 포트만 등 대 배우들이 출연했던 화제작이다. 



“Hello, Stranger”라는 유명한 대사로 시작하는 이 연극(영화)는 신문사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소설가 지망생 댄과 스트립 댄서 앨리스가 우연히 교통사고로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차에 치어 쓰러졌다가 일어나면서 “안녕, 낯선 사람”이라 인사를 건넸던 앨리스는 젊고 매력적인 댄과 금방 함께 사는 사이가 되고 댄은 그런 그녀와의 동거생활을 소재로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런데 댄은 소설의 표지사진을 찍으러 가서 만난 사진작가 안나에게 대뜸 키스를 하며 사귀자고 유혹한다. 이건 뭐 아주 개새끼가 아닌가. 


그런데 영화에서 하필 댄 역을 맡은 배우가 주드 로였다. 원래도 잘 생겼지만 그때 당시엔 정말 ‘전세계 남녀 배우를 통틀어 최고의 미모’라는 소리까지 듣던 막강 포스였다. 그러니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부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주드 로와 입술을 맞대던 세련된 사진작가 안나는 바로 줄리아 로버츠였다. 그들의 지적인 매력에 격조 높은 연출력, 게다가 하필 데미안 라이스의 마약성 농후한 불멸의 미친 곡 ‘Blower’s Daughter’까지 배경음악으로 겹쳐져 우리는 이 막장 드라마를 마치 꽤 세련된 영화라고 착각하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극은 좀 달랐다. “안녕, 낯선 사람”이라 인사를 건네며 시작하는 것은 같지만 분위기도 달랐고 대사도 달랐다. 앨리스 역을 맡은 이윤지는 새처럼 자그만 몸집에 아이 같은 도발성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돋구었고 명민한 배우 김혜나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 두려워하는 안나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잘 표현해 주었다. 댄 역을 맡은 이동하도 물론 좋았지만 최고의 캐릭터는 피부과 의사 래리 역을 맡은 배성우였다. 능수능란한 대사 구사력과 타이밍, 찰진 욕설 구사력까지, 이 연극을 이만큼 살아 숨쉬게 하는 데 이만한 일등 공신이 없었다. 


만났다가 헤어지고 용서를 구하다가도 또 배신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근데 걔랑 잤어 안 잤어?”하고 묻는, 홍상수 영화의 등장인물들보다 더 찌질하고 끈적한 네 사람은 간결한 세트와 자막, 오밀조밀한 구성 등을 선보인 연출자 추민주의 능력에 의해 연극에서 확실한 생명력을 얻었다. 우리와 같이 연극을 보았던 페친 안재만 대표도 “영화에서는 미처 다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들의 행동을 이제야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자잘한 유머들(채팅창에 성기 사이즈 18cm를 18m라고 잘못 쓰고 욕을 내뱉는다든지 하는)이 그 우아했던 드라마에 막장의 개연성과 더불어 페이소스까지 더해 주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시 완벽한 반복과 변주의 차이는 아닐까? 예전에 슬픈 결말이 너무 안타까워서 한 번쯤은 해피엔딩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고 매일 똑 같은 영화를 보던 소녀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노래 가사였던가?). 


영화는 늘 똑같지만 연극은 그날그날의 캐스팅과 컨디션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그러니까 영화는 매번 똑같은 맛에 보고 연극은 매번 다른 맛에 본다는 얘기가 된다. 선택은 자유다. 만약에 영화 속 배우가 하던 연기를 집어치우고 스크린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오면 어떻게 될까, 라는 기발한 상상을 실천에 옮긴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도 있지 않았던가. (아, 그러고 보니 그 영화에 나왔던 멋진 남자 주인공이 지금 [뉴스 룸]에서 앵커로 나오는 그 제프 대니얼스로구나) 



연극 [클로저]에는 영화와는 또다른 찰진 이야기들과 에피소드가 드글드글 하다. 그러니 이 가을에 기필코 연극을 한 편 봐야겠다고 결심한 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클로저]를 선택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연기도 연출도 고루 좋다. 12월 1일까지 대학로에서 계속 상연한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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