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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29 홍상수의 열일곱 번째 발명품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6



가령 레이먼드 카버나 윤대녕의 소설을 지금 열 다섯살 중학생이 읽는다고 생각해 보자. 뭐,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들이니 읽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건 읽는 것이 아니다. 뜻도 모르고 그냥 눈으로 스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카버의 짧은 소설들이 우리 인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행위라는 것을, 여행만 떠나면 자살 직전일 것 같은 여자들을 만나 카페에서 술을 마시거나 여관에서 같이 자는 주인공의 여정이 인생의 쓸쓸함과 신산함을 돌려 말하는 글이라는 것을 열 다섯살 나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은 일정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그런 존재다. '열 두살은 열 두살을 살고 열 여섯은 열 여섯을 살지’라는 김창완의 노래도 바로 그런 얘기일 테니까.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지금은맞고 그때는틀리다>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된 것은 미성년이 봐서는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고 재미도 없을 것이라는 감독의 판단과 배려 덕분이다.  에로나 포르노만 성인영화가 아니다.  진짜 성인영화란 이런 것이다. 어른들이 아니면 절대로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 그런 이데올로기. 


홍상수의 작품들을 즐겨 본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야기할 것이다. 또 그 얘기야? 그렇다 또 그 얘기다. 이번에도 영화감독이 주인공이고 그림을 그린다는 젊은 여자가 하나 나온다. 둘은 우연히 만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술에 취해 서로 약점을 드러내고 속내를 탐색하다가 치사하거나 어이 없는 공방전이 몇 차례 지나가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런 지리멸렬한 이야기로 감독은 이번 로카르노 영화제 대상을 탔고 정재영은 남우주연상까지 탔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가능했을까. 


수원에 GV 및 특강이 있어서 내려 온 영화감독 함춘수는 주최측의 착오 때문에 하루 일찍 오는 바람에 행사 전날 숙소를 정해두고 하릴없이 화성행궁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후줄근한 청바지와 오리털 파카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다는 돈 없고 시간은 많은 소외된 지식인의 모습에 가깝다. 고궁의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는 툇마루에서 잠깐 졸던 춘수는 그곳에서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는 젊은 여자 희정을 목격한다. 뭐 하세요, 라고 거의 본능처럼 남자가 말을 붙이고 우유 마시는데요, 라고 여자가 대답을 하고. 어렵게 어렵게 말을 붙인 두 사람은 남자가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자가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면서 급반전을 이룬다.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그녀가 그림을 그린다는 작업실로 가게 되고 거기서 그녀의 그림을 본 남자는 “희정 씨는 모르고 들어가서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하는 것 같아요”라는 애매모호로 칠갑을 한 칭찬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해가 지자 자연스럽게 스시집으로 가서 소주를 마신다. 원래는 치킨집에 갈 계획이었는데 춘수가 즉흥적으로 스시집 앞에 멈추는 바람에 희정이 그집으로 들어가자고 한 것이다. 

단 둘이 술을 마시며 남녀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남자는 계속 여자에게 작업을 걸고 여자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웃음을 흘리며 남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아유, 제가 무슨…”이라는 입에 발린 지식인의 겸손을 몸에 두른 듯한 정재영의 연기도 그렇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맛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김민희의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연기도 일품이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음주 장면은 모두 실제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배우들은 진짜 술을 마시고 그 술에 취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연기를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저 배우들은 술이 좀 약하네. 보통 홍상수 영화에는 테이블에 소주가 대여섯 병은 늘어서 있는데 아까 걔네들은 세 병밖에 없었잖아.”

그렇다. 세 병이든 다섯 병이든 중요한 건 배우들이 정말로 술을 마시며 연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대사를 정확하게 외우고 연기를 하냐 아니냐의 문제를 훌쩍 넘어서는 연출법이며 연기 테크닉이다. 배우들은 그날 아침에야 감독이 쓰기 시작하는 시나리오를 받다들고 연기를 한다. 물론 그 전에 감독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 영화가 어떤 컨셉과 얼개로 진행이 될 것이고 어떤 소재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건 알지만 1부와 2부가 어떻게 미세하게 다를 것이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영화를 찍게 된다. 그건 감독도 닥쳐보기 전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천재의 자신감이 아니면 생각할 수도 없는 독단이요, 파격이다. 아무튼 이번엔 술이 약한 배우들이 술 영화를 찍느라고 고생을 좀 했겠다. 나중에 들었는데 정재영은 정말 스시집 장면을 찍고 나서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고 한다. 


술을 마시던 두 사람은 희정이 깜빡 잊고 있었던 파티에 함께 가게 되고 거기서 최화정, 기주봉, 서영화 등을 만나게 되는데 이미 술이 많이 취했고 또 깐깐한 최화정에 의해 춘수가 일찍 결혼을 한 유부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서 바람둥이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라는 것이 모두 밝혀진다. 화가 난 희정은 다른 방으로 가서 책상에 업드려 자고 춘수는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채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날 GV때 사회자이자 평론가인 유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춘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마구 그 평론가를 욕하게 되고 마침 엉뚱하게 자신의 시집을 들고 찾아온 서영화를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다.

2부는 똑같은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펼져친다. 이건 <오!수정>이나 <강원도의 힘>에서부터 계속 되던 '홍상수표' 전개방식이다. 그때는 정보석이 “포크예요”라고 하다가 “스푼이에요”라고 바뀐 것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후로 시간대를 마구 뒤섞어본다든지(<자유의 언덕>) 시점이 바뀌면서 드러나는 코미적인 상황들을 보여준다든지(<우리 선희>) 하는 변주가 점점 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홍상수의 '반복과 차이’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전에는 그런 것을 통해 지식인의 위선, 남자들의 찌질함, 여자들의 빤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홍상수 영화가 재미 있지만 불편하다고 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홍상수는 더 여유로워지고 깊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맞고 그때는틀리다> 리뷰를 쓰려고 다시 살펴보니 제목의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왜 그런가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보니 홍상수 감독 왈 ‘제목이 너무 길어서’ 였다고 한다. 제목의 의미를 찾아 헤맨 사람들에겐 다소 김이 빠지는 설명일 수 있겠다. 그런데 난 그게 이 영화를 이해하는 작은 팁이 될 수도 있다 싶었다. 

홍상수 영화가 세상의 찌질함, 남자들의 유치함을 연료로 삼고 있는 코미디 영화라는 점은 데뷔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하지만 그 걍팍함은 많이 사라졌다. 거짓말을 일삼는 춘수도 2부에서는 더 솔직해지고 희정도 그런 춘수를 탓하기는커녕 나중에 술에 취한 춘수가 선배 언니들 앞에서 팬티까지 내리는 추태를 보였다는 얘기를 듣고도 오히려 귀엽게 여긴다. 거짓말을 하든 참말을 하든 애초부터 세상에 큰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1부와 2부가 사뭇 다르게 진행되지만 큰 그림으로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2부에서 둘이 즉흥적으로 택시를 타고 강원도로 놀러가기로 의기투합하지만 잠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 얘기가 흐지부지 되어 없었던 얘기처럼 취급되는 장면도 그렇다. 둘이 택시비로 십만 원을 내고 강원도까지 가든 안 가든 뭐 그리 달라질 일이 있겠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홍상수 영화는 절망도 희망도 없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런데 그 흘러감이 인위적이지 않고(우연을 질료로 삼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의 쓴맛단맛을 아는 통찰력이 스며있기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른한 술자리와 반복되는 헛소리들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이 의외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홍상수의 영화들은 흥행과 상관 없이 또 만들어질 것이고(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부터 전원사라는 영화사를 차려 자유롭게 영화를 찍고 있다)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도 또 다른 재미와 의미가 피어날 것이다. 또 어디서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이번엔 수원이었지만 다음엔 제천일 수도 있고 부산일 수도 있다. 그게 어디면 어떻겠는가. 어디나 사람은 살아가고 있고 이야기는 만들어지는데. 우리 곁에 홍상수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는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발명하는 발명가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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