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스타들이 출연하는 외국 라이선스의 대형 뮤지컬이 너무 거하거나 비싸다고(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국내의 우수한 창작 뮤지컬을 권해주고 싶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진짜 당대 우리 모습를 담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노래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 뮤지컬 [스페셜 딜리버리]를 관람했다. 왕년의 인기스타이지만 현재는 별 볼일 없는 행사가수로 전락한 정사랑과 가출 후 조건만남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열여덟 살 소녀 강하리가 우연히 병원에서 만나 서로의 영혼이 뒤바뀌는 얘기다.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이젠 흔한 레파토리가 되었지만 ‘입장이 뒤바뀜으로써 서로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상대방의 모습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라는 얼개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쓴 장유정 작가 덕분에 한국 창작 뮤지컬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오미영 작가를 만나고 나서 창작 뮤지컬에 대한 믿음이 더 깊어졌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이 극을 쓰고 연출한 오미영 작가의 팬이다. 오 작가는 전작 [식구를 찾아서]에서도 그랬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연출하는 작가다. 오늘 본 작품에도 나오는 대사 ‘결국엔 해피엔딩’처럼 그녀는 늘 어렵고 소박하지만 사람이 살아갈 만한 세상을 추구한다.
오늘 첫 공연이라 그런지 조금 합이 안 맞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작들에서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었던 배우들이라 곧 기가 막힌 호흡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단 일곱 명이 쉬지 않고 백 분 내내 스물두 곡의 노래와 춤을 선보인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대본 공모를 통해 2015년 창작뮤지컬 우수작품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라 한다. 2월 14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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