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어머니와의 저녁. 나는 일 섬의 이야기를 했다.
-상상해 보세요. 해변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부를 때 “밥 먹을 시간이다”라고 하는 대신 영어로 이렇게 소리치는 거예요. “랑슬로! 엘루아! It’s miam-miam’s time!”
우리는 같이 웃는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내가 회피하고 싶은 주제를 건드린다.
-그래, 클레르는 여전히 만나니?
-아니요. 우린 만나기만 하면 늘 서로 욕하곤 했어요. 헤어진다는 결심을 하지 못했을 뿐이죠. 다른 이야기해요. 그 여자 미쳤어요. 이젠 아무 흥미도 없어요. 전혀 관심 없어요.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끝났어요.
-아아…… 네가 그렇게도 그녀를 좋아하니……
-자네 요즘 피곤한 모양이지?
-태어난 이래로 쭉 그렇습니다.
카피라이터의 비뚤어진 일상을 다뤘던 소설 [9,990원]의 한 장면입니다. 베그베데의 소설은 대사가 아주 감칠맛 나죠. [9,990원]과 [살아있어 미안하다] 등을 썼던 프랑스 작가 프레데리크 베그베데의 소설 [로맨틱 에고이스트]를 읽고 있습니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베그베데는 역설적이고 위악적인 문장을 다루는 데는 아주 천재적인 사람이죠. 이 책은 올해 초 한림대학교 교내 서점에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기 뭐해서 할 수 없이 산 책이었는데, 서점 주인 아줌마가 천 원인가 깎아준 기억이 납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다가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책은 참 고마운 존재죠? 제가 다가서기 전까지는 늘 똑같은 마음으로 책꽂이에서 진득하게 기다려 준다니까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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