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생 때 저희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현관에 있는 신발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의 숫자를 센 뒤 그걸 반으로 나눠 그 인원만큼 밥을 해놓고 출근을 하셔야 했으니까요. 그 신발들의 주인은 저의 친구일 때도 있고 제 형의 친구일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저의 친구들과 형 친구들이 밤에 집에서 마주쳐 같이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스무 살 무렵의 저와 저의 친구들은 참 무던히도 서로의 집으로 놀러 다녔습니다. 저녁에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가 “오늘은 우리집으로 갈까?”라고 하면 모두 두말없이 일어서 그 친구집으로 이차를 갔습니다. 그게 독산동의 용선이네 집일 때도 있었고 부천의 상혁이네 집일 때도 있었습니다. 구파발에 있던 저희집에도 수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이 다녀갔죠. 다행히 저희 어머니는 “집엔 사람들이 많이 놀러와야 한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집으로 친구들을 끌고 갈 수 있었고 다음날 느즈막히 깨어 식구들이 모두 나간 집안을 활보하다가 친구들이 씼기를 기다려 밥을 잔뜩 퍼먹고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버릇은 독립을 하고 직장생할을 하면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특히 TBWA/Korea라는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2000년도 무렵 제가 살던 강남역 ‘ZOO 002’ 뒤 ‘프레피’라는 커피숍 3층의 원룸은 그 회사 동료들이나 광고회사 친구들이 뻔질나게 놀러와 술을 마시다 가거나 자고 가는 일종의 여인숙 같은 곳이었습니다. 회사가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야근이 많다 보니 어떤 경우엔 술도 안 마시고 밤에 들러 잠만 자고 가는 인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학 때 친구들이 자주 놀러가던 연희동 재섭이네 집 별칭이 ‘재섭장’이었던 것처럼 그때 저의 집 별명도 ‘성준장’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늘 집으로 사람들이 놀러오는 걸 좋아하는 인간형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Y대표와 L피디가 밤 열시 반에 저희 집으로 놀러와 문어와 술을 먹고 갔습니다. 아내가 SNS를 통해 알게 된 분에게 직접 주문한 문어가 도착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아내가 ‘문어번개’를 쳤을 때는 K실장, J실장, 또다른 J실장 등이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면 저랑 같이 일을 하는 Y피디나 우변(변호사가 아닙니다)을 초대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업계 일이 늘 그렇듯이 원래 멤버들은 모두 다른 스케줄이 생겨 줄줄이 취소가 되고 Y피디와 우변도 그날 편집실에서 밤을 새게 되는 바람에 결국 그 시간까지 저와 회의를 하던 Y대표와 L피디가 어부지리로 문어를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부지리 문어회동’은 새벽 두 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역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와 일 얘기가 이어졌고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추억의 인물들이 차례차례 도마 위에 올라와 잘게 부서지는 시간이기도 했죠. 다음날 아침 아내는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게 좋아. 그 사람들이 와서 내가 해주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아.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우리가 이런 데 쓰는 돈을 아까워 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어.”
다행입니다. 저는 지금 같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과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요. 비록 좀 더 편안하게 길게 쓰고 싶은 이 글을 여기서 마감하고 일요일인 오늘밤에도 야근을 해야하는 좀 한심한 처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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