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일기 50

음주일기 2012. 2. 29. 00:13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말미암은 세계적 경제 위기만 해도 기가 찰 노릇인데 고집 꺾을 줄 모르는 수구 꼴통들의 갈팡질팡 국정 운영까지 겹치고 나니 이젠 TV고 신문이고 쳐다 볼 맛이 안 난다. 뭐 하나 속 시원히 풀리는 일 없고 즐거울 일도 없는 요즘,
그래도 마음 놓고 활짝 웃을 일이 하나 생겼으니 바로 승미의 딸 진이의 카이스트 수시합격이다.

본인도 물론 기쁘겠지만 우리는 진이의 엄마 승미에게 더 큰 축하를 보낸다. 혼자 몸으로 보모님의 병수발에 수험생 엄마 노릇까지 동시패션으로 치뤄내야 했던 처지였으니 그 몸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 중에서도 유독 기뻐한 친구가 목포에 사는 보영이다. 보영이는 학교 다닐 때부터 승미랑 친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녀 또한 고3 올라가는 아들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이 진학문제에 더 각별한 관심과 응원을 보냈던 것이다.

진이의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그녀가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잔말 말고 빨리 목포로 내려오라’ 는 소집명령이었다. 진이가 합격을 하기만 하면 한턱 크게 쏘겠다고 전부터 다짐을 했던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조상님들의 통찰력 있는 격언도 그녀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성준아, 수요일 저녁에 KTX 예약해 놓을게.”

승미가 전화를 걸어 나에게도 소집명령을 하달한다. 이번 초대의 주인공은 승미와 진이지만 나와 재욱이도 순전히 ‘시간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난 기쁘게 오케이를 외치고 전화를 끊는다. 백수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약속시간에 맞춰 승미네 동네로 갔다. 진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만나서 택시를 타고 용산역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두르느라 진이는 교복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택시에 탄다.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시간은 꽤 넉넉한 편이다.

재욱이는 용산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차가 막힌다. 이상하다. 평일 이른 오후에 사람들은 한꺼번에 어딜 이렇게 급히 가는 걸까. 택시운전사 아저씨는 무사태평이지만 여섯 시 반까지 도착해야 하는 우리들은 속이 바짝바짝 탄다. 벌써 역에 도착했다는 재욱이의 전화가 온다.

출발 오분 전 겨우 역에 도착한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급히 건너 재욱이를 만난 뒤 광장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승미는 표를 찾으러 창구로 뛰어가고 진이와 나는 일단 열차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사람들은 벌써 다 탔다.

“지금 창구에서 표 찾고 있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승무원에게 사정을 한다. 진이도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야, 표 찾았어?” 재욱이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직이란다. 열차 계단에 올라 기다려주던 여승무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죄송해요. 지금 출발해야 돼요.” 문이 닫힌다. 열차가 출발한다. KTX에는 코리안 타임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매표소로 올라가 승미를 만난다. 매표구 앞에 줄이 늘어서 있어서 예약표를 바꾸지 못한 것이다. 할 수 없다. 다음 출발시각은 두 시간 후.너무 늦는다. 재욱이가 열차 시간표를 살펴보더니 새마을호를 타고 가자고 한다. 십분 후에 출발하는데 KTX보다 한 시간 늦는 9시 55분 도착이다. 표를 사고 나니 또 오 분밖에 안 남았다.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없다. 우리는 또다시 개찰구로 뛰어가 가까스로 새마을호에 몸을 싣는다.

밤 기차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학교 다닐 때 기차를 타고 춘천이나 대성리로 놀러 갈 때도 그랬다. 철도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일정하게 들려오는 덜컹덜컹 하는 소리. 제각각 사연을 가지고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창 밖으로 빨려 지나가는 불빛들, 어두운 숲들. 홍익회 아저씨들이 지나다니면서 팔던 찐계란과 음료수들.

열차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진이가 활짝 웃으면서 좌석으로 돌아온다. 내일이 수능 보는 날이라 친구들은 모두 초긴장 상태인데 먼저 합격한 진이만 혼자서 룰루랄라 천하태평이다. 승미는 진이 친구 엄마들에게 휴대폰 문자로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은 진이 모녀가 얼마나 부러울까.

다들 급히 오느라 배고픈 줄 몰랐는데 막상 열차에 몸을 싣고 나니 시장기가 몰려온다. 재욱이가 캐터링 서비스로 음료수와 과자를 좀 산다. 금방 다 먹고 또 입맛을 다시다 식당칸으로 간다. 도시락과 맥주를 사서 나눠먹는다. 식당칸은 메뉴가 형편없다. 대신 불이 굉장히 환해서 독서를 하기엔 좋다. 난 배낭에서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를 꺼내 식당칸에서 읽는다. 승미와 재욱이는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진이는 좌석에서 자고 있다.


목포역에 도착하니 형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니 집으로 가기 전 목포 시내를 한 바퀴 돌자고 한다. 해안 도로를 따라 불 밝힌 목포항과 삼학도를 훓어 내려온다. 길마다 등을 밝혀 거리 전체가 환하다.

삼학도는 섬 전체에 조명시설을 해놔서 흡사 커다란 항공모함이나 놀이공원같다. 형님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목포 시장님을 ‘조명시장님’이라고 부른단다. 곳곳에 조명 시설을 해놨기 때문이다.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목포항의 휘황한 가로등 불빛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아파트에 도착하니 엄마인 보영이를 비롯해 지원이 민정이 민영이 지훈이까지 모든 식구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형님이 만들었다는 책꽂이 등을 구경하는 동안 푸짐한 술상이 준비된다. 합격 축하 의미의 떡과 전복, 낙지 등에 상다리가 휘어질 것만 같다. 특히 이번에 형님이 비법을 배워왔다는 ‘기절낙지’ 는 신기하고 맛도 그만이었다. 살짝 기절시킨 세발낙지들을 무우와 오이를 갈아 만든 소스 위에 얹으면 꿈틀꿈틀 살아난다. 그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먹으면 된다. 입에 달라붙지도 않으면서 산낙지의 느낌은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절묘한 요리다.

다들 소주와 맥주로 축배를 한다. 진이도 맥주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서로 요즘 사는 얘기를 나누고 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도 한다. 우리 곁에서 놀던 아이들은 어느덧 방에 들어가 자고 있고 맏이인 지원이는 열두 시가 다되도록 방에서 영어 과외를 받고 있다. 고달픈 고등학교 시절이다.


“아, 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밤을 새는 거야?”

보영이가 한숨을 내쉰다. 형님은 진작에 들어가 자고 우리끼리 진이 어렸을 때 얘기, 승미랑 보영이 학교 다닐 때 얘기 등을 하며 한 잔 두 잔 술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재욱이는 마루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보영이와 승미는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나도 부엌에 가서 끓고 있는 전복죽을 젓다가 국물이 튀어서 손을 데었다. 그래도 소주를 손에 붓고 마저 설거지를 마친 뒤  마루에 누워 잔다.

“얘들아, 아침 먹어라.” 눈을 붙인지 삼 초도 안 지난 거 같은데 보영이가 우리를 깨운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진이는 물론 일어날 생각조차 안 하고 민정이 민영이만 누운 채 엉덩이를 치켜올리고 괴로워한다.골프를 전공하고 있는 민정이 민영이는 아침마다 아빠와 함께 9Km씩 조깅을 한단다. 대단하다. 민정이 방에 가보면 벽에 ‘하루 구보 9Km, 하루 티샷 1800개’ 라는 무서운 생활신조가 벽에 붙어있다. 운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애들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들어 온 형님이 우리에게 진도에 놀러 가자고 한다. 승미 진이 재욱이 나 지훈이까지 차에 올라탄 뒤 진도를 향해 달린다. 조금 지나자 싱그런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때린다. 공기가 정말 좋다. 진도대교 앞에서 차를 잠깐 세우고 바다 구경을 한다. 놀랍게도 바닷물이 힘차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다. 여기가 바로 명량해협이다. 이순신 장군이 열세 척의 배로 수천의 왜구를 섬멸한 곳이다. 진도대교 밑으로 흐르는 바닷물은 하루에 네 번 조류가 바뀐다고 한다. 과연 물살이 거세서 한 번 빠지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여간해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형님이 진도대교를 지나면서 이 다리가 두 개로 늘어난 사연도 얘기해 준다. DJ정권 시절 진도 출신인 박지원씨가 힘을 써서 쌍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도대교를 넘어가는 길엔 커다랗게 서 있는 충무공의 동상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엄청난 파밭들이 보인다. 파는 진도의 특산물이란다. 파밭과 양배추밭, 무우밭들이 가는 곳마다 펼쳐져 있다. 진도엔 진돗개만 있는 줄 알았던 나는, 바보다.

쌍계사로 들어서니 입구에 국화꽃이 즐비하다. 지금 국화축제 기간이란다. 나와 승미, 진이는 대웅전에 올라가 방석을 깔고 절을 한다.  “삼촌도 불교신자예요?” 절을 하고 있는 내게 진이가 묻는다. “아니.” 내가 대답한다.

절을 나와 운림산방 입구로 간다. 여기는 조선시대 화가인 허소치의 생가 자리다.  형님이 허소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진이와 나는 운림산방 입구에 있는 명판의 글을 읽는다. 한글 옆에 영문 번역판도 있는데 가만 읽어보면 허소치를 'Painter'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영어로 바꿔놓으면 왠지 생경하고 어색한 법이다.

나는 예전에 아리랑TV에서 사극을 봤던 경험담을 얘기한다.아리랑TV는 예전 드라마를 재방송하면서 영어자막을 제작해 내보내는데 '어허,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머물다 가시지요.'라는 대사가 나오면 밑에 'why don't you stay here for several days?'라는 자막이 뜬다. '한양에 볼 일이 있어서요.'라는 대사가 이어지면 'I have a business at Hanyang."이라는 자막이 이어지고. 내 얘기를 듣고 진이가 킥킥 웃는다. 형님도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듣고 껄껄 웃는다.

절에서 나와 '기적의 바다'라고 불리는 곳으로 간다. 여기는 신문 방송에서도 여러번 소개가 된 곳인데 해마다 특정한 시기가 되면 바닷물이 갈라져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지금은 그냥 평범한 바다지만 그래도 관광지로 꾸며놓고 동상도 세우고 해서 사람들이 적잖게 찾는 곳이란다.

"하하, Dragon King이래."

진이가 웃는다. 바닷가에 이 지방 전설의 주인공인 뽕할머니의 동상을 세워놨는데 거기있는 설명문의 번역판엔 뽕할머니를 'Grandmother Ppong', 용왕을 'Dragon King'이라 써놨기 때문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Grandmother Ppong'을 가엾게 여긴 'Dragon King'이 손자를 다시 돌려보내 그 가족을 're-union'시켰다는 내용이다. "야, 드래곤 킹 보다는 포세이돈이나 뭐 그런 게 더 낫지 않냐?" 내가 말하며 진이와 함께 웃는다.


지훈이가 배가 고프다며 기적의 바다 앞에서 파는 라면을 사달라다고 조른다. "지훈아, 가서 점심 먹어야지." 형님이 라면 대신 다슬기를 이천원어치 산다. 내가 얼른 돈을 내려고 했으나 머뭇거리는 사이에 형님이 먼저 돈을 치룬다. 이런 것까지 얻어먹다니.
미안한 마음에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형님은 우리 올라갈 때 주겠다며 말린 김을 또 네 묶음 산다.

형님이 운전을 하며 휴대폰으로 사업상의 전화를 한다. 식당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대회 내용이 꽤나 심란하다. 눈치 없는 우리는 그 와중에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존다. 난 지훈이를 안고 있었는데 잠이 든 지훈이의 머리가 내 팔을 눌러서 팔이 저린다. 진이도 옆에서 "아, 온 삭신이 다 쑤셔." 라는 매우 청소년답지 못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나보기야? 얼른 식당으로 와. 거기서 같이 밥 먹게."

심각한 통화를 하던 형님은 보영이와 통화를 할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의 별명을 부른다. "실장님? 거 생고기 좋은 놈으로 이인분하고 한우삽겹 삼인분만 지금 준비해주세요." 식당으로 전화를 해 점심 메뉴를 미리 부탁하기도 한다. 한산한 도로를 빠르게 달려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생고기가 나왔다. 이건 정말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다.  진이가 특히 환호작약한다. 그녀는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고3 시절 내내 '고기심'으로 버텼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한우삼겹도 정말 맛이 기가 막힌다.  형님은 한우삼겹을 굽는대로 부지런히 진이의 접시에 올려놓는다. 남들은 수능을 보는 날, 이렇게 뱃속에 고기를 차곡차곡 채워넣는 고3도 있단 말인가.

"진이는 참 이쁘고 천진난만한 소녀지만,   참 지랄같이 많이 처먹기도 해.그치?"

내가 우왁스럽게 진이를 놀려대자 다들 와 하고 웃는다. 고기를 다 먹고 마지막은 육회덥밥 2인분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젠 위가 꽉 차서 숨도 쉬기 어려울 지경이다.


형님이 식당에서 남은 작업을 하고있는 동안 우리는 보영이네집으로 간다. 아파트에 남겨두고 온 짐을 챙겨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보영이가 우리에게 줄 빵과 삶은 계란을 챙기는 잠깐 사이에 재욱이가 마루에 대자로 누워 코를 곤다.

이번만은 여유있게 가자. 다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곱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려 다섯시 반에 출발을 한다. 여유있게 역사에 도착을 한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보영과 인사를 나누고 표를 산다. 표값을 계속 승미가 카드로 일괄 계산했기 때문에 내가 돈을 주려고 했더니 웃으며 그만 두라고 한다. "다 니들이 걱정해주고 마음 써줘서 진이 일도 잘 풀린 건데. 다음에 진이 맛있는 거나 사줘." 승미의 고마운 마음 씀씀이에 나는 또 재빨리 빈대로 돌변한다.

화장실에 갔다 나왔더니 재욱이가 보이지 않는다. 형님이 바닷가에서 샀던 김을 깜빡했다며 지금 전해주러 온다고 해서 마중을 나갔다는 것이다. 나도 뛰어나가 재욱이와 형님 차를 기다린다.

그런데 출발 10분 전인데도 차가 도착하지 않는다. 서둘러서 왔는데도 또 아슬아슬하게 떠나게 되고 만다. 밖에서 헤매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형님이 민정이 민영이와 함께 와서 우리에게 김 뭉치를 건내준다. 우리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새도 없이 얼렁뚱땅 작별 인사를 하고 기차를 향해 달린다. 겨우 열차에 오르고 나니 기차가 곧바로 출발한다.

 

난 평소에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엮이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편이다.그러나 이런 식의 학연이라면 얼마든지 엮이고 또 엮여도 흐믓하기만 하다. 형님과 보영이는 밤낮으로 우리를 챙기고 위하고 먹였다. 마흔이 넘어도 철이 없는 우리들은 마냥 받기만 하고 감히 갚을 생각을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가 받은 환대와 고마움을 두 사람에게 갚지는 못할 것이다. 나중에 잘 해야 엉뚱한 놈들에게 뭔가 베풀면서 살지도 모르지. 사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다복한 인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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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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