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집에서 쉬면서 느긋하게 TV를 보거나 멍때리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만의 은밀한 기쁨이다. 게으르게 일어난 우리는 오랜만에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게으른 오전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TV동물농장>을 보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조금 더 읽었고 11시가 넘어 브런치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고 성동구민체육센터 맞은편에 있는 ‘비사벌콩나물국밥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방금 밥을 먹고 왔지만 이상하게 또 배가 고프네...나는 식충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커피를 내리고 방금 사 온 식빵을 가져오길래 또 마주 앉아서 따뜻한 빵을 뜯어먹었다. 마침 tvN에서 <치즈 인 더 트랩> 1.2회를 연속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서 TV속으로 빠져들었다. 워낙 tvN에서 자체 홍보를 많이 해서 ‘도대체 뭐길래 저래?’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 영화 <은교>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던(홍보 포인트를 엉뚱하게 잡아서 그렇지 영화 자체도 홀륭했다) 김고은의 연기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2회를 지켜보니 일단 박해진, 김고은의 매력이 대단했고 서강준, 이성경 등 조연들의 역할도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딱 맞을 것 같았다. 잠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제 겨우 2회 방송을 했을 뿐인데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원작 웹툰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 부담도 엄청났을 텐데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주연배우들의 연기. 별로 예쁘지 않은 배우 김고은은 오히려 그래서 전형적인 연기를 벗어나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지는 것 같다. 복학생 선배 역할을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박해진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의 흐름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했던 이윤정PD의 공력이 있다. ‘로맨스 +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웹툰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자칫 드라마 전개에 비약이 심할 수 있다. 그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은 연기자들의 노력도 있지만 플롯의 헛점을 탄탄하게 해주는 극본과 연출의 힘이 절대적이다. 호조의 출발을 보였다는 것은 이들이 젊은 연기자들의 힘만 믿지 않고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러가지 미덕들을 여기저기 잘 숨겨 놓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으면 아마 중국이나 동남아에선 더 난리가 날 것이다. 새로운 스타 탄생이요 한류 콘텐츠의 새로운 방향 제시일 수도 있다. 그냥 예쁘기만 한 드라마가 아니라 볼 때마다 다음 회가 기대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그 덫에 놓인 치즈'를 덥썩 물 수 있도록 계속 성실하게 끌고 가줬으면 하는 게 평범한 시청자로서의 바람이다. 이제 네 시부터는 <응답하라 1988> 재방송을 봐야겠다. 게으른 일요일,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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