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산 

내가 아직 광고 프로덕션에 다니던 때였다. 화재 예방 공익광고 아이디어로 가져온 카피라이터 박수의 안이 좋았다. 담배꽁초 버리기, 비상구 짐으로 막기, 소방도로에 주차하기 등 대형 화재를 유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화재>라는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 '가짜 예고편'이 광고의 테마였는데 마지막에 "영화에는 예고편이 있지만  화재에는 예고편이 없습니다"라는 카피로 뒤통수를 치는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회의실에서 영화 예고편이니까 진짜 영화배우가 출연하면 당선 확률이 더 높아질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누군가 "실장님, 박호산하고 친하다면서요? 한 번 부탁해 봐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동네 선후배 사이라는 다소 싱거운 인연으로 친하게 된 배우 박호산에게 카톡 메시지를 넣었다. 화재예방 공익광고 아이디어를 냈는데 너를 모델로 해도 되겠냐고. 혹시 우리 시안이 당선되어 광고를 찍게 되면 모델비도 좀 싸게 해 줄 수 있겠냐고. 곧 호산에게서 좋다는 답장이 왔다. 공익광고의 취지에 동감한다는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인데도 선뜻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내가 프리젠터로 나서 설명한 시안은 그 어느 때보다 코바코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결국 당선작으로 결정이 되어버렸다. 나는 퇴근을 하는 길에 기쁜 마음으로 호산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호산은 너무 잘됐다고 하면서 방금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왔다는 말을 했다. 경사가 겹친 것이다. 그런데 호산은 "오늘은 너무 좋은 날이지만 너무 미안한 날이기도 해서 마음 놓고 기뻐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호산이 맡은 역은 원래 다른 배우가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촬영 직전에 '미투 논란'이 터지는 바람에 캐스팅이 전격 취소된 것이었다. 선배에게 생긴 불미스러운 일을 딛고 들어가게 된 자리라 너무 면목이 없다는 호산의 말에 나도 더 이상 흥분할 수는 없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과 송새벽의 형으로 나온 박호산은 어리숙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가진 '박상훈' 역에 딱 맞는 배우였다. 박호산은 정말 '후계동'에서 조기축구를 할 것처럼 생겼고 사업 실패로 이혼을 당하고 '형제청소방'을 운영할 것 같은 표정의 남자가 되었고 저녁이면 동네 술집 '정희네'에 가서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박호산은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드라마 안에서 펄펄 날았다. 촬영 초기에 아이유와 악수를 했다고 인스타그램에 자랑을 하던 박호산은 드라마가 끝난 뒤엔 어느덧 같은 같은 연예인들이 악수를 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되었다. 

박호산은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드라마 안에서 펄펄 날았다.

아이유 

평론가 신형철은 자신의 책 [느낌의 공동체] 서문에 “삶의 어느 법정에서든 김민정 시인을 위해 증언할 것이다”라는 글을 썼다. 자신의 책을 만들어준 편집자이자 문학적 동료 김민정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찬사가 아닐까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가수 아이유, 아니 연기자 이지은을 지켜본 사람들도 아마 이와 비슷한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아이유가 싸가지가 없다고? 없으면 어때?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데!" 물론 그 '싸가지 없음'이라는 게 연예인 특유의 방어기제 덕분에 생긴 아주 편파적인 평판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유의 광팬인 아내는 아마도 이제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아이유가 무슨 잘못을 해도 나는 아이유 편이 될 거야. 저렇게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데, 어떻게 착한 것까지 바라?" 

비록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살인자였다는 과거를 가지고 있고, 자신에게 남은 것은 병든 할머니와 부담스러운 사채빚뿐인 스물한 살의 여자 아이 이지안. 그녀는 건설회사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며 번 돈을 모두 사채업자에게 바치느라 저녁이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또 뛰어야 할 정도로 퍽퍽한 인생을 살아간다. 입사지원서 특기란에 '달리기'라고 쓸 정도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계약직이기에 다른 직원들과 말을 섞지도 않고 같이 밥을 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박동훈이 그녀를 알아보고 손을 내민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잘해준다. 평생 처음으로 사심 없는 친절과 관심을 받게 된 이지안은 어리둥절하다. 빚 갚을 기회를 잡느라 박동훈에게 도청장치를 심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도 그에겐 불온한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다. 대신 무능한 형제들 틈에서 멀쩡한 척해야 하고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학교 후배인 사장 측으로부터 누명을 써 축출당할 위기에 놓인 피곤한 사십 대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었는데 대부분 이지안 때문이었다. 그녀가 "밥 좀 사주죠. 배고픈데."라고 박동훈에게 손을 내밀 때, 자신이 한 짓이 들통난 걸 다 알고 미안하다며 울부짖을 때, 인사평가회에 증인으로 나가서 사람 좋아하는 걸 왜 비웃냐고 따질 때 나는 하릴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유는 열연을 하지 않음으로써 열연을 하는 아이러니를 완성했는데, 이는 그녀가 드라마의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부라능한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냥 대사만 달달 외워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인간의 쓸쓸함에 대하여, 따뜻함이 주는 에너지에 대해여,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어떻게 한 방에 다 알았을까 궁금했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알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지 않고는 그런 억양, 눈빛, 몸짓이 나올 수 없으니까. 노래 잘하고 곡도 잘 만들던 가수 아이유는 그렇게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가 되었다. 

아이유는 열연을 하지 않음으로써 열연을 하는 아이러니를 완성했다.

3

나 

TV의 예고편은 물론 동네 사는 배우 박호산을 통해서도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작가가 [또! 오해영]을 쓴 사람이라 볼 만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회사가 너무 바빴다. 허구한 날 야근을 하느라 TV드라마를 챙길 시간이 없었는데도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지켜보다가 가슴이 철렁하는 대사들이 나올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박호산이 청소하다가 무릎 꿇는 장면에서 울었고 정희가 유라에게 '불행 배틀'엔 자신이 있다고 하며 술잔을 높이 들 때도 눈물이 났고 이지안이 박동훈에게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라고 흐느낄 때도 같이 울었다. 그 중에도 아이유의 무미건조한 대사는 백미였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나의 아저씨 아이유 사이다 대사들'이라 검색하면 그녀가 얼마나 극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연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존댓말을 잘 하지 않는 이지안이 마치 혼잣말로 묻듯 "다들 그렇지 않나...?" 식으로 상대방에게 던지는 대사 처리가 너무 좋았다. 이지안이 가진 총기와 비뚤어짐과 두려움이 동시다발로 느껴지는 이 대사 구사 방식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여직원이 "너 짤리고 싶냐?"라고 묻자 회의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같이 짤리자."고 일갈하고는 여직원의 사내 불륜 사실을 들이미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드라마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 날 배탈이 나서 저녁도 못 먹고 들어온 나를 보고 아내는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는 소주를 한 잔 하며 봐야 하는데 남편이 저 모양이니. 아이고, 내가 못 산다." 라면서 화를 냈다. 그렇게 나의 아저씨가 끝나고 여전힌 나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대책 없이 퇴직을 했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한 달을 혼자 살아보기도 했고, 느닷없이 한옥집을 사서 고치고 이사하느라 몇 달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되었다. 한옥으로 이사를 와 집안 정리를 하고 있던 때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나의 아저씨'가 올라와 뒤늦게 정주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가끔 보면서도 가슴이 뭉클뭉클했는데 이걸 처음부터 다시 보면 또 얼마나 울어야 하나, 하고 망설이고 있다가 이사 비용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심란해하던 어느 날 밤에 '나의 아저씨 정주행'을 시작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아내도 나를 따라 밤을 새 가면서 드라마에 몰두했다. 우리는 넋을 읽고 TV를 들여다보며 웃다가 한숨을 쉬다가 눈물을 글썽이다가 서로를 쳐다보고 멋쩍게 웃었다. 

우리가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당연한 일의 소중함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는데 박동훈과 이지안이 그걸 일깨워주었기 때문 아닐까.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다가도 금방 식을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가슴속에 묻어둔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묻어둔 사람이나 누군가의 가슴에 묻힌 경험이 잇는 사람은 결코 약하지 않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황량한 바람과 먼지가 남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 남은 시간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인생도 내력과 외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라는 박동훈의 대사는 이지안이 아니라 자신에게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내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혼자가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 드라마는 인생의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셸부르의 우산] 이후로 가장 쿨했던 마지막 동훈과 지안의 만남은 이지안 같은 애도 잘 살아가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아서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드라마는 인생의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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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건, '공부 빼고는 뭐든지 잘 해서' 맨날 꼴찌만 하던 덕선이가 딱 일 년 재수하고 너무 쉽게 스튜어디스가 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물론 누구든 실제로 덕선 역을 맡은 혜리 정도의 미모와 귀염성만 있다면 어떤 면접시험이라도 잘 통과했겠지만 말입니다. 근데 그때도 스튜어디스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네, 맞습니다. 응팔 애기입니다. 방금 응팔 마지막회를 보았습니다. 처음엔 지난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너무 ‘추억팔이’에만 매진한다는 반발심에 조금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드라마와 연기자들이 화제가 되고 회가 거듭할수록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저도 어느덧 ‘응팔’의 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가들의 치밀한 구성과 취재, 그리고 연기자들의 노력이나 드라마 자체가 가지는 개연성, 디테일 등이 정말 좋았거든요. 지난 시즌처럼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남편으로 등극하는 어릴 적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대형 낚시바늘도 큰 몫을 했구요. 오죽하면 제 주변에 공중파 드라마는 안 봐도 이 드라마만큼은 챙겨 본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어제 회의 시간에 들은 얘기지만 현재 ‘응팔’에 나오는 배우들이 최근에 찍은 CM이 무려 55개나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 리콜>처럼 한 때 ‘근미래'를 다뤘던 SF영화나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는데, 마친가지로이 드라마도 ‘근과거’를 다뤘기 때문에 유난히 더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는 우리들이 모두 기억하는 시대의 뻔한 모습이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면 새삼 감동하게 되는 단순한 구조가 숨어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아이폰을 썼다고 012나 015로 시작하는 플라스틱 삐삐 소품에 감동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도룡뇽이 차린 식당에 가서 위기철의 <논리야 반갑다>를 읽는다든지, 결혼 전날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있는 신부의 모습 등은 뻔하면서도 ‘맞아, 그땐 다들 저랬지’라는 묘한 반가움과 공범의식이 숨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거기에다 이 드라마 시리즈는 평범한 척 하면서도 모두 특별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덕선이나 도룡뇽 말고는 대부분 공부도 잘 하고 모범생에다 효자 효녀들입니다. 보라처럼 과외 한 번 안 하고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든지 택이처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프로기사가 다닥다닥 옆집에 붙어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그러그러한 이야기 끝에 ‘그래도 그땐 사람들이 순진하고 착한 맛이 있었어’라는 ‘분식회계’가 숨어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자칫 이런 심리가 '과거회귀'로 가지나 않을까 매우 염려됩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은 현실을 잘 모르거나 외면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도피처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나오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은 너무나 전염성이 강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과오가 많은 사람을 ‘열혈 애국자’로 포장할 수도 있고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기회주의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할 수도 있으니까요.


응팔을 지켜보면서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수록 지금 여기서 온몸으로 부딪히려는 굳은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무조건 과거만 추억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곧 총선이 있고 내년엔 대선이 있습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이라 했습니다. 현재만이 현금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사람들은 성보라도 택이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근미래를 책임질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안철수 씨, 문재인 씨, 박원순 씨, 딴 데 쳐다보지 말고 대답해 주십시오. 과연 답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 '응답하라 2016'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분명 당신들 얘기가 제일 먼저 나올 텐데. 제발 정신 차리고 우릴 쳐다보십시오. 싫지만 우리에겐 지금, 당신들이 그나마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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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집에서 쉬면서 느긋하게 TV를 보거나 멍때리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만의 은밀한 기쁨이다. 게으르게 일어난 우리는 오랜만에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게으른 오전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TV동물농장>을 보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조금 더 읽었고 11시가 넘어 브런치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고 성동구민체육센터 맞은편에 있는 비사벌콩나물국밥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방금 밥을 먹고 왔지만 이상하게 또 배가 고프네...나는 식충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커피를 내리고 방금 사 온 식빵을 가져오길래 또 마주 앉아서 따뜻한 빵을 뜯어먹었다. 마침 tvN에서 <치즈 인 더 트랩> 1.2회를 연속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서 TV속으로 빠져들었다. 워낙 tvN에서 자체 홍보를 많이 해서 ‘도대체 뭐길래 저래?’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 영화 <은교>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던(홍보 포인트를 엉뚱하게 잡아서 그렇지 영화 자체도 홀륭했다) 김고은의 연기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2회를 지켜보니 일단 박해진, 김고은의 매력이 대단했고 서강준, 이성경 등 조연들의 역할도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딱 맞을 것 같았다. 잠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제 겨우 2회 방송을 했을 뿐인데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원작 웹툰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 부담도 엄청났을 텐데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주연배우들의 연기. 별로 예쁘지 않은 배우 김고은은 오히려 그래서 전형적인 연기를 벗어나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지는 것 같다. 복학생 선배 역할을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박해진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의 흐름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했던 이윤정PD의 공력이 있다. ‘로맨스 +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웹툰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자칫 드라마 전개에 비약이 심할 수 있다. 그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은 연기자들의 노력도 있지만 플롯의 헛점을 탄탄하게 해주는 극본과 연출의 힘이 절대적이다. 호조의 출발을 보였다는 것은 이들이 젊은 연기자들의 힘만 믿지 않고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러가지 미덕들을 여기저기 잘 숨겨 놓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으면 아마 중국이나 동남아에선 더 난리가 날 것이다. 새로운 스타 탄생이요 한류 콘텐츠의 새로운 방향 제시일 수도 있다. 그냥 예쁘기만 한 드라마가 아니라 볼 때마다 다음 회가 기대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그 덫에 놓인 치즈'를 덥썩 물 수 있도록 계속 성실하게 끌고 가줬으면 하는 게 평범한 시청자로서의 바람이다. 이제 네 시부터는 <응답하라 1988> 재방송을 봐야겠다. 게으른 일요일,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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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동양방송(지금의 JTBC인데 1980년 군사정권 때 KBS로 통폐합 되었죠. 중앙일보가 그때의 억울함 때문에 그리 이를 악물고 종편을 따냈던 것입니다)에 'TBC향연'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어느날 거기에 이은관이라는 불세출의 국악인이 나와 배뱅이굿을 완창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부잣집 딸 배뱅이의 혼을 달래는 굿마당을 지나던 주인공은 공짜술이나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그 집에 들어갔다가 졸지에  박수무당 노릇을 하게 됩니다.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주인공은 마침 배뱅이 할아버지의 갓을 찾는 기발한 꾀를 내는 바람에 '배뱅이의 환생'으로 행세를 하게 되죠. 저와 저희 형은 정말 넔을 잃고 그 프로를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꼬장꼬장하게 완창을 하던 이은관 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 그 후로는 국악이나 마당극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죠. 더구나 저는 대학 때 통기타 동아리를 하는 바람에 국악과는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어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마당극이나 판소리 공연은 보게될 때면 그 때마다 참 신기합니다. 고수와 함께 소리꾼 딱 한 사람이 나와 두어 시간 쉬지 않고 소리도 하고 사설도 늘어놓고 하는데 그 원맨쇼에 관객들은 훌러덩 빠져들어 어느 순간은 깔깔깔 웃고 어느 대목에선 불현듯 눈시울을 붉히곤 하니까요. 서로 아는 처지니까 좀 봐주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소리꾼이 변신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제시하는 캐릭터마다 동화되어 사사건건 기꺼이 그의 마술에 빠집니다.


지난 일요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1인 창극 '눈먼사람'. 소리꾼 김봉영 씨가 극본을 쓰고 직접 출연까지 했습니다. 공연 첫날이라 음향 상태가 간혹 좋지 않았고 소리꾼의 목도 많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심청전을 '조금'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심청이 아버지 심학규를 맹인 이야기꾼으로 만든 뒤 멍석까지 한 장 깔아주니 아주 그럴듯한 무대가 완성되었습니다. 게다가 마당극의 흐름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북은 물론 드럼, 신디싸이저 등으로 풍부한 음향을 만들고 그 위에 아쟁 연주로 방점을 찍으니 객석 여기저기에선 스스로 '고수'를 자처하고 앞다투어 추임새를 넣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비록 목소리는 잠겨 고생을 했고 마지막에 수염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집중력도 떨어지긴 했지만 김봉영은 역시 베테랑 소리꾼이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능수능란하게 소리와 사설을 자유자재로 섞어 스토리텔링을 완성했고 돌발적인 상황이 생길 때마다 특유의 애드립으로 오히려 관객들을 더 즐겁게 했습니다. 특히 이날 공연은 맨 앞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관객 한 분에게 심봉사가 시비를 살짝 걸어봤는데 이 분이 의외로 넉살 좋게 대거리를 척척 잘 해주는 바람에 더 즐거운 공연이 되었습니다. 푸른색 도포와 지팡이 하나만으로도 어찌나 입체적인 공간과 감성을 잘 표현해 내던지 그가 웃을 땐 객석 전체가 동시에 웃음바다였고 그가 눈물을 보일 때면 객석 여기저기서 그렁그렁한 눈망울들이 반짝였습니다.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던 중간까지의 극의 흐름에 비하면 "자, 오늘 내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요. 그러니 이제 다들 돌아가시오..."라고 말하는 마지막은 다소 허탈했죠. 기-승-전-결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기-승-전-허탈'을 선물했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이 극이 탄생하게 된 기획 뒷이야기나 에피소드 등으로 짧게 한 대목만 더 만들어 '매조지'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뭐,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첫 공연이었기도 했고 또 제가 그날 연극을 본 뒤 대학로에서 편안하게 한 잔 하지 못하고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 회의를 하는 바람에 더 그런 심통이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판소리 공연을 한 편 보아 매우 좋았습니다. 더구나 제게 이런 공연을 시시때때로 저렴한 가격에 보여주시는 오준석PD 같은 분이 계시니, 어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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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밀회] 1,2편을 방금 보았다. 사실 나는 요즘 김희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굳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회사 동료인 우변이 며칠 전부터 이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며 “이거, 몰입도가 장난 아닌데요. 오랫만에 우리나라 드라마에 푹 빠져서 보네.”라고 귀뜸을 한 다음부터 그 궁금증이 커졌던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알려진 것처럼 40살 유부녀와 스무 살 청년이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진다는 통속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신물나는 억지설정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시청률이 상승하고 많은 지상파 시청자들까지 이 종편 드라마를 찾아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연출이나 각본, 또는 배우들이 매우 뛰어나거나, 아니면  그 셋 다 골고루 뛰어나서가 아닐까. 



우선 연출 안판석을 보자. 방송국을 튀쳐나가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를  크게 말아먹긴 했지만 안판석은 [아줌마], [현정아 사랑해] 등을 만들 시절 MBC  드라마 왕국의 좌장 노릇을 했던 인물이다. 그 후 나온 [하얀 거탑]은 일본 작품의 리메이크라는 핸디캡에도 치밀하고 입체적인 연출로 감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바 있다. 


그리고 각본의 정성주. 역시 안판석과 함께 [아줌마]와 [장미와 콩나물]이라는 작품을 했고 그 후엔도 많은 드라마 극본을 쓴 베테랑 작가다. 나는 특히 최진실이 광고회사 직원으로 나왔던 [매혹]이라는 작은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정성주는 ‘씨네21’이었던가,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작가는 시키면 뭐든 다 쓰는 사람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드라마 작가란 예술혼을 불태우는 천재라기보다는 경험과 노력으로 당장 계약된 일들을 무슨 일이 있든 쳐내고야 마는 ‘고도의 기능직’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괜히 뭔가 있는 것처럼 폼을 잡는 사람들보다 이처럼 명쾌하고 직선적으로 자신의 일을 표현하는 정성주 작가에게서 짜릿한 신선함과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연봉 일 억짜리’ 예술재단 기획실장인 오혜원은 자신이 근무하는 재단에서 진행하는 클래식 음악회를 진행하다가 퀵서비스 직원인 이선재가 놀라운 피아노 연주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리허설이 끝난 잠깐의 빈 시간에 배달 왔던 이선재가 무대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무심코 연주하는 바람에 공연 진행자들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이건 마치 영화 [굿 윌 헌팅]에서 학교청소부였던 맷 데이먼이 대학 복도 칠판에 써있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던 것과 같은 설정이다. 졸지에 ‘조율된 피아노를 건드린 범인’이 되어버린 선재는 공연장 주변을 맴돌며 쫓기다가 그의 실력을 대번에 알아본 오혜원의 남편 강준형 교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리고 강준형은 그를 자기 제자로 삼을 생각으로 아내인 혜원에게 선재의 연주를 오디션삼아 들어보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등의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 덕분이 아닐까 한다. 우에노 주리가 나왔던 화제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볼 때도 그랬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장면은 늘 박력이 넘치고 새로우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샤인]에서 데이비드 헬프갓이 빗속을 뚫고 술집으로 들어와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 드라마에서도 유아인이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던 김희애는 단숨에 그의 재능에 매료되어 몰래 눈물까지 흘린다.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근육질의 남자가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모습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상한’ 매력까지 있다. 



아직까지는 둘 사이에 연애는 없다. 그냥 순수하게 음악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청자들도 그 느낌을 안다.누군가를 알아보는 기쁨, 누군가에게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뿌듯함… 그 여운. 물론 여러 매체에서 이미 본 ‘화제의 키스신’ 이후로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만만치 않은 속도감을 자랑한다. 콘서트 시작 전의 팽팽한 긴장감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잘 버무려 넣었고 예술재단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이해하기 쉽도록 대사 속에 자연스럽게 잘 녹여낸다. 음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입학비리와 비즈니스적인 이합집산, 암투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잡념 없이 클래식을 연주하는 소년의 순수함이 있다. 게다가 고상한 척하던 심혜진과 김혜은의 ‘화장실 격투신’, 김혜은과 김희애의 ‘사무실에서 집어던지기신’ 등 단도직입적인 묘사들과 ‘전화녹음내용 까발리기’ 등도 통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지상파라고 점수를더 주고 종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밀회]는 연출과 각본, 연기 모두 수준급 이상인 웰메이드 드라마다. 게다가 트렌드로만 따져봐도 꽤나 앞선 감각이다. 다시 말하느니 입만 아프겠지만 역시 문제는 ‘콘텐츠의 질’ 이라는 평범한 결론이다. 언제나 센 놈이 이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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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남은 휴가를 긁어 모아 짧은 유럽 여행을(그것도 배낭여행이 아니라 폼 안 나게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갔다 온 저는 귀국하자마자 호쾌하게(!)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책 없이 그만둔 회사였기 때문에 그 즉시부터 전혀 할 일이 없었고, 시간은 누에똥처럼 펑펑 남아돌기만 했습니다. 이른바 술과 장미의 나날이었죠. 그때 제가 회사를 그만 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고우영 삼국지] 박스세트와 MBC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 DVD 세트 구입이었습니다.


지금은 홍자매나 김도우, 김지우([마왕]과 [부활]을 쓴) 등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작가들이 꽤 많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거짓말]의 노희경과 [넷멋]을 쓴 인정옥 등이 그나마 가장 튀는 작가들이었습니다. 인정옥은 그 동안 잠잠하다가 얼마 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애인으로 밝혀져 다시 화제를 불러모은 적이 있죠.

아무튼 고다르의 데뷔작 제목을 그대로 따온 이 드라마는 처음엔 그리 기대가 가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다니는 소매치기 얘기라니 식상하잖아, 였던 거였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관심과 애정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인정옥의 대사가 신선했습니다. TV 여주인공들이 좀처럼 쓰지 않던 “새끼”를 무심하게 내뱉게 했고, 공효진의 말버릇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돈 버느라 그랬지…’도 “내가 돈 버니라 그랬지” 처럼 입에 붙는 말 그대로를 대사로 쓰는 게 신기하고도 정감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던 양동근의 웅얼거리는 말투도 단점이 아니라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참 가슴이 아픈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양동근이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던 공효진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새로 생긴 애인 이나영에게로 가는 얘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끔은 ‘도파민의 과다분비 현상’으로 오해 받기도 하는 ‘사랑’이라는 이상한 감정의 불가해성이 진정 아프고도 실감나게 드러난 작품이었던 거죠.

그리고 높은 완성도도 이 드라마를 더욱 사랑하고 싶은 작품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대개 시청률로 몰아치는 인기 작가들은 모든 시퀀스를 주인공들과 주요 사건에만 집중시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네멋]은 주변 인물 한 명 한 명이 전부 다 살아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별스런 대사 없이도 사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신구의 연기를 비롯, “그 대가리나 까딱까딱 하는 게 무슨 음악이냐?”고 이나영에게 야멸차게 굴다가도 아내 이해숙만 나타나면 금방 활짝 웃으며 “응, 당신 왔어?”라고 말하며 바보가 되는 조경환. 그리고 “이 아저씨 은근히 느끼하다?”라는 공효진의 대사에 “야, 은근히는 무슨 은근히냐. 나 보는 사람마다 다 느끼하다고 하던데.”라고 맞받아치는 이세창. 마지막 장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변해 공효진에게 봉변을 당하고 “아유, 그 아가씨 참 싸가지 없네.”라고 중얼거리는 윤여정까지 모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균등하게 그 존재감을 부여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방송을 지켜보다가 서서히 [네멋]의 팬이 되었고 DVD를 사서 반복 시청하면서부터는 ‘네멋 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엔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이동건이 이나영을 좋아하는 신문기자로 나왔었고 나중에 [커피 프린스]에 나왔던 김재욱이 양동근의 꼬붕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도 참 오래되었네요. 엊그제 같은데 벌쎄 10년이 지났어요. 근데 지금도 서울 하늘 아래 어디선가 복수와 미래, 경이가 피시피식 웃으며 살고 있을 것만 같으니, 전 이 드라마를 참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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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일’이란 말을 아십니까? 예전엔 토요일을 반공일이라고 불렀죠. 제가 어렸을 땐 토요일에도 학교나 직장에 평일처럼 나가 오전에 공부나 일을 하는 척 하다가 점심 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싱겁기 짝이 없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월차’라는 말은 있어도 ‘반월차’라는 말은 없을 겁니다. 아, 월차란 말도 사라졌나요? 아무튼 저도 직장 다닐 때 홍상수의 데뷔작이 너무 보고 싶어서 ‘반월차’를 내고 종로2가의 ‘씨네코아’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조조로 본 적이 있습니다. 아,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은 주말 2회가 당연하지만 예전엔 토요일은 TV에서 주말연속극을 틀어주지 않았습니다. 즉 일요일 저녁에만 주말연속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규칙을 바꾸고 토/일 방송을 시작한 게 바로 TBC의 주말드라마 [결혼행진곡]부터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재밌어서’였구요.

[결혼행진곡]은 정말 대단한 드라마였습니다. 당시의 청춘 스타였던 장미희, 유지인, 한진희가 모두 출현했고 한진희의 “죽갔네”라는 대사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청춘 스타들만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 이 사람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었던 김세윤이 홍세미와 커플로 나왔고, 잘 기억이 안 나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김동훈과 서우림도 커플로 나왔더군요. 안옥희도 나왔구요. 안옥희라는 이지적인 탤런트는 나중에 소설가인가 극작가로 변신을 하기도 했죠. 김동훈은 안국동에 있던 실험극단과 실험극장의 대표이기도 했었는데요, 저도 어렸을 때 거기서 [에쿠우스]니 [신의 아그네스] 같은 화제작을 보았고 대학생일 때도 [스티밍, 욕탕 속의 여인들] 같은 연극을 보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욕탕 속의 여인들은 번역극이었는데 영화배우 최민식의 전 부인 등 실력 있는 유명 여배우들이 모두 가슴을 벗고 나와서…음.음. 그리고 김동훈은 가수 김세환의 아버지일 걸요 아마.

[결혼행진곡]은 정말 유행어도 많은 드라마였습니다. 한진희의 “죽같네” 말고도 얄개 이승현의 “인생무상” 그리고 김순철의 “바쁘다 바빠”가 있었습니다. 김순철은 투박하게 생겼지만 전천후로 연기를 참 잘 하던 ‘한국의 잭 니콜슨’같은 배우였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했던 [여보 정선달]이란 드라마에선 정선달 역의 김성원과 콤비를 오래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이 장사 해서 떼돈 버는 것도 아니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도 분명 김순철의 유행어였는데 어느 드라마인지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네요. 무슨 호스티스들이 떼로 나오는,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드라마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고인이 된 미남 배우 임성민이 말 더듬는 남자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난데없이 ‘비목’이란 가곡이 전국을 뒤흔든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결혼행진곡]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레스토랑에서 얘기를 하고 일어서려다가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라고 ‘비목’이 흘러나오면 “아! 조금만 더 있다 가자. 내가 좋아하는 곡 나오네.”라고 말하던 장미희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비목’의 유행은 나중에 작가 임성한이 [보고 또보고] 같은 드라마에서 조랭이 떡국이나 유행시키던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게임도 있고 멀티플렉스도 있지만 그 시절엔 오로지 TV뿐이었습니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엔 수돗물 사용량이 줄고 도둑이 들어와도 몰랐다는 전설 같은 우리나라의 TV시청 역사엔 이미 이런 막강한 콘텐츠들이 이미 시범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얘기는 여기서 끝.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얘기들이 떠올라서 주책스럽게 마구 지껄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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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

나의 드라마 연대기 2012. 3. 27. 13:17

 


여친 : 자, 이제 뭐할까?
성준 : 나 오늘 일찍 들어가 봐야 돼.
 
여친 : 왜?
성준 : 얼른 가서 홍길동 봐야 돼. (당시 SBS에서 [홍길동] 방영 중이었음)

여친 : 어휴, 이게 오빠야, 아줌마야?!(퍽퍽퍽-)
성준 : …어흑.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옛날 여친에게 ‘아줌마’라는 별명까지 하사 받았던 접니다. 일요일 아침 늦은 산책길에 나섰다가 문득 ‘드라마와 나’라는 사적 문화 연대기를 조금씩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말이죠. 하긴 전 거의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하긴 합니다만.

 

전 경기도 백마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렸을 때 그 마을엔 ‘봄순이네’라는 집 딱 한 집에만 TV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녁때면 모든 아이들이 그 집으로 몰려갔고, 그 집 아이들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형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TV를 보러 봄순이네 갔다가 발냄샌가 땀냄샌가가 난다고 몇몇 아이들이랑 같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분노하신 울 부친은  당장 다음날 서울로 가서 TV를 사오셨습니다. 긴 다리가 네 개 달리고 잘게 쪼개진 나무 셔터를 좌우로 잡아당기면 화면을 잠글 수도 있는 최신식 흑백TV였습니다. 정말 삐까뻔쩍 했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졸지에 마을에서 두 번째로 TV를 가진 집이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최초로 본 연속극은 TBC의 사극 [연화]였던 것 같습니다. 김창숙 주연이었고 박병호, 김세윤 같은 중견 탤런트들도 나왔습니다. 박병호의 부인이었던 정혜선은 MBC 전속이라서 같이 출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둘은 나중에 이혼했죠) [연화]의 인기는 그 다음 드라마 [윤지경]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선시대 공주의 남편인 ‘부마’를 소재로 한 드라마였는데, 재주는 출중하나 ‘외척 배제의 원칙’에 따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부마(역시 김세윤이 주인공이었고)의 심정이 어린 가슴에도 꽤 답답하게 느껴졌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저녁 때만 되면 저희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인 [여로]를 보기 위해서였죠. 장욱제, 태현실 등이 니왔던 일일연속극이었는데 아마 전국 시청률이 70%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야말로 국민 드라마였습니다. 장욱제가 바보 영구를 나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저거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병원에 주사 맞으러 다닌대잖어. 안 그러면 진짜 바보 된대…” 라고 쑥떡거리며 장욱제의 연기를 칭찬했습니다. 나중에 심형래나 이창훈이 했던 ‘바보 영구’ 캐릭터도 다 이 드라마에서 나온 겁니다. 그리고 ‘난타’로 유명한 탤런트 송승환도 이 드라마로 고등학생 때 데뷔를 했습니다. 장욱제 태현실 사이에서 난 아들로 말이죠... 이런, 벌써 A4 용지 한 장이 넘었군요. 다음에 또 생각날 때 이어서 써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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