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결혼이라는 걸 안 하고 살 줄 알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결혼생활이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또 혼자 살아도 별로 외롭거나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게 좋았다. 이게 대인기피증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게, 평소에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거나 노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혼자 소파에 늘어져서 다리 까딱이며 신문을 보거나 멍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지고 이내 그 상태가 몹시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예쁜 여자가 혼자 우리집에 놀러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밤 어찌어찌 잠자리를 가질 때까지는 좋았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근데 쟨 집에 안 가나?’라는 한심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뱃속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이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남들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상대를 만날 때도 나는 여자들에게 객적은 농담이나 픽픽 날리고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리는 한없이 가벼운 연애상대나 그냥 '아는 오빠'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래, 가끔 이렇게 연애나 하며 살지 뭐, 결혼은. 이렇게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름 정리하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몇 개의 우연이 겹치는가 싶더니 마치 교통사고 당하듯 생각지도 않게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무엇에 홀린듯 사귀고 동거하고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상하게 아내와 있으면 힘들거나 지겹지 않고 '혼자 소파에 늘어져서 다리 까딱이며 신문을 보거나 멍때리고 있는 나의 모습'도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한다. 어떤 얘기를 하냐고? 많은 커플이 그렇듯 우리도 '오바마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이나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같은 심오한 얘기는 잘 나누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회사에서 있었던 소소한 얘기나 TV 프로그램 얘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자잘한 뒷담화 등을 나눈다. 그리고 서로 힘든 얘기를 거침없이 나눈다. 이게 중요하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화를 자주 내거나, 무서워하거나, 무감각해지는 등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어딘가에, 또는 누군가에게 표현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심리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걸 모두 말한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멍충한 짓을 했는지, 얼마나 창피한지. 아무리 바보 같은 얘기를 해도(하다못해 출근하다 바지에 똥싼 얘기를 해도)...그녀는 다 받아준다. 다 받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부자로 만든다.


(*사진의 전당포는 총신대입구역 사당우체국 근처에 지금도 실제로 있는 가게입니다. 예전에 침맞으러 갔다가 찍어놨던 사진인데, 이 글과 잘 맞는 거 같아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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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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