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대통령'이라고 대답하고 정말 싱겁게 대통령까지 궤도수정을 한 번도 안 하고 달린 사람은 김영삼 하나로 충분하다. 다들 어렸을 적엔 얼토당토한 꿈을 꾸기 마련이지만 철이 들면서 자신의 능력이나 집안 사정, 사회적인 분위기 등등에 따라 순차적으로 그 꿈을 수정하기 마련이고 그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다. 그런데 여기 사뭇 다른 이유로 어린 아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꿈을 바꿔야 하는 직종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바로 언론인이다. 기자나 앵커 등 정상적인 언론인을 꿈꾸는 건 자유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그 직종의 노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정적 요소가 또아리를 틀게 된 것인데 이름하여 ‘김영란법’이다.
도대체 김영란은 누구더냐. 그는 여성이며 전 대법관 출신의 ‘수퍼 엘리트'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대법관을 지낸 변호사는 3년 안에 100억을 버는 법조재벌이 되는데"(박찬종 변호사의 칼럼) 굳이 그걸 포기하고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지 말라 미친듯이 외치고 있으니 동업자들 사이에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놓은 잔칫상을 같이 엎어버리자는 ‘상 또라이'인 것이다. 법조계를 출입하던 뜻있는 기자들도 입을 모아 이건 아니라고 분연히 들고 일어났으나 아뿔싸, 계속되는 폭염에 잠깐 더위라도 먹은 건지 믿었던 헌재마저도 며칠 전 합헌 결정을 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발의되었던 이 법이 언론계로 불똥이 튀면서 기자 사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8일 한국기자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함께 제기한 ‘김영란법’ 헌법소원심판 합헌 결정에 대해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악용 안 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무엇보다도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고위층이 힘 대신 ‘신고나 고발조치'를 통해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릴 것이라는 기발한 착상이다.
그들은 말한다. "엄연히 민간영역에 속하는 언론이 공공성이 크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공직자’로 규정되고 언론활동 전반이 부정청탁 근절을 위한 감시와 규제 대상이 되는 상황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라. 언론고시를 통해 사회에 나왔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졸지에 공직자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니 열 받을 만하지 않는가. 더구나 감시자에서 감시를 당하는 사람으로 입장이 뒤바뀐 기자들로서는 당연한 권리 주장인 것이다.
큰일이다. 원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김영란법이 우리 기자들의 취재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고 말았으니. 당장 기자들은 이제 어디 가서 점심을 먹으며 친한 소식통들과 얘기를 나눌 것인가. 더구나 '어디 가면 무슨무슨 식당이 맛있고 거긴 좀 비싸지만 어차피 우리가 돈 내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것 없이 골고루 시켜 천천히 맛을 음미하라’는 식으로 후배들에게 전수하던 취재요령조차 사라지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란 말인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2016년 7월 29일 jtbc ‘뉴스현장’에 출연해 “기자가 취재원 등 업무관련자와 식사할 때 접대비용 3만 원의 상한선을 두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라며 “정치인과 언론인, 정치인과 민원인 등 이해관계인들이 방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할 얘기가 있는데 3만 원으로 식사하려면 별도 방에선 거의 불가능하고 다중이 쳐다보는 홀에서 먹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5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논설위원이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구체적인 설명이라 좀 쪼잔한 감이 없지 않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다. 도대체 일반 홀에 앉아 사람들이 쳐다보는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나 기업 입원들일 게 뻔한 취재원들이 어찌 기자들과 서로 깊은 속내를 털어놓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에겐 ‘파티션(칸막이)’은 기본이다. 예쁜 여종업원들이 서빙을 하느라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 점잖게 불러서 만 원짜리 두세 장을 손에 꼭 쥐어주고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 잠깐 자리를 비켜달라’고 쉴드를 쳐야 대화 분위기가 잡히는 법이다. 이런 걸 그들은 하나도 모른단 말인가.
농민들도 걱정이다. 그동안 5만 원 넘는 뇌물용 농산물을 양산해 옴으로써 생계를 유지해 온 대한민국의 특산물 농가들은 이제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한미FTA로 망해, 김영란법으로 망해, 정말 살 수가 없다. 김진 위원은 3만 원 이상 식사를 해도 ‘더치페이’하면 되지 않느냐는 앵커의 물음에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부 다 영수증 처리한다면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 다 적어내야 할 것 아니냐”며 “5만 원 정도에서 공무원들의 자유재량을 확보해 줘야 세상일이 돌아간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훤히 볼 수 있는 홀 테이블에 앉아 전에부터 잘 알던 고위공직자와 만나 “형님, 잘 지내셨어요?” “응, 니 덕분에 변비가 좀 나았어.” 같은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김진 논설위원을 상상하고 있자니 가슴이 아파 온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4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직 더 부패할 여유가 남아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취임 당시 언급했던 ‘지하 경제’ 측면에서 보더라도 언론계의 공짜 점심은 그 방면의 금맥이다. 철모르는 대법관 출신의 망발로 인해 대한민국의 언론계가 위축되고 한 해 10조 원이 넘는다는 재계의 접대비 문화가 사라지는 꼴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 나 혼자라도 김영란법 퇴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순간이다.
정부는 연 10조 원 규모의 접대문화를 훼손하는 김영란법을 당장 폐지하라!!
정재계는 기자들의 복지를 위협하는 '반김영란법 펀드'를 당장 조성하라!!
김영란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당장 변호사를 개업해서 전관예우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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