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회의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혼자 들어간 논현동의 식당엔 채널A가 틀어져 있었다. 북한 김치와 남한 김치를 비교하는 쇼프로였다. 붐비던 손님들이 한 차례 나간 뒤라 식당은 지나치게 한산했다. 마침 리모콘이 내 테이블에 놓여 있길래 나는 혹시 뉴스를 틀어도 되겠냐고 서빙하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 재널을 YTN으로 바꿨다. 개성공단 중단에 관한 뉴스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식당 사장님께서 나이가 지긋한 남자 손님 두 분과 나누는 황당한 대화 때문이었다.


"거, 개성공단 창문마다 폭탄을 설치해서 나올 때 몽땅 폭파를 시켰어야 하는 건데. 그놈들 하나도 못 건지게. 아까워... 애초에 그거 지을 때 몰래 폭탄을 심어놓고 어제 같은 날 청와대에 앉아서 누루기만 하면 다 터지게! 어째 그 생각을 아무도 못했나..."


사장님과 손님 두 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셨다. 남한측에서 사업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관심 없고 오직 초가삼간 다 태우더라도 미운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너무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셔서 감히 끼어들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끔찍하고 무서웠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건 맨날 내 입으로 지껄이는 공자님 같은 소리였지만 막상 같은 땅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은 짐작보다 괴롭고 심란했다. 


문제는 이런 분들도 선거 때마다 우리와 똑같이 한 표씩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분들의 선택은 우리의 짐작대로일 것이며, 그 신념은 앞으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가 얼마나 심각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절망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더욱 더 이번 선거에 관심을 보이고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는 당장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 야권을 생각하면 푹푹 한숨만 나오지만, 그래도 남은 희망의 불씨를 찾아보자. 누구 좋으라고 포기하나. 정신 차리고 투표 하자. 지난 대선에도 우리가 '설마' 하고 있는 동안에 이 분들이 그토록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투표를 독려하며 막판에 그녀에게 몰표를 몰아줄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