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맨체스터 그라나다 방송국에서 송출감독으로 20여 년간 일했던 리 차일드라는 사내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난다. IMF가 기승를 부리던 시절,구조조정에 휩쓸린 것이다. 퇴직 소식을 들은 그는 밖으로 나가 곧장 '6달러짜리 펜과 노트'를 산 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 머리 좋은 람보 - '잭 리처' 시리즈의 첫 권이었다.
근대 이후 어떤 시대든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는 가장 크고도 지속적인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일 것이다. 존재론과 맞닿는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옮겨가기 일쑤인데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가지 질문에 힌트를 주는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홍순성의 [나는 1인 기업가다]이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위에서 예를 든 리 차일드 같은 경우는 정말 꿈 같은 얘기다. 직장을 그만 두고 이렇게 대중소설을 써서 단박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분명한 건 싫든 좋든 누구에게나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 이제 우리는 거의 80세까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 소개한대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나 [쿨하게 생존하라]의 저자 김호 씨는 '직장과 직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직업은 직장과 관련은 있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직장'보다 중요한 '평생 직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모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홍순성은 블로그 필명 '혜민 아빠'로 잘 알려진 1인 기업가다. 그도 한 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직장을 버리고 독립을 결심했다. 그의 전공은 IT와 스마트 워킹이었지만 점점 작업과 공부의 지평을 넓혀 지금은 스마트워킹 컨설턴트, 전문 인터뷰어(팟캐스트 운영), 1인 기업 매니저(액셀러레이터), 그리고 8권의 책을 쓴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무엇이 그를 ‘1인 기업가’로 변신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우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다’고 말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 한 번 하고 서류 작업 좀 하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면 시간이 훌쩍 간다. 자기 일만 해도 모자랄 판에 단체 생활을 위한 ‘쓸데 없는 일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독립을 하면 최소한 그런 일들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좋아서 하는 일보다 시켜서 하는 일이 더 많다. 물론 전문적인 일일 순 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서도 그 전문성이 나를 따라다니며 계속 아이덴티티를 지켜줄까? 뭔가 나만의 컨텐츠를 개발해야 했다. 그는 그 길을 ‘온라인’에서 찾았다.
그전까지는 일단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 책상 앞에 앉아야만 사무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거의 모든 게 온라인과 모바일 디바이스로 해결 가능해졌다. 홍순성은 아침에 커피숍으로 출근을 할 때가 많다. 거기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혼자 생각한 것들을 노트북에 정리하고 자료도 서치한다. 강의 준비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한다. 뭔가 생각한 것을 남기는 곳은 우선 블로그다. 1인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일단 남과 다른 생각이 필요한데 그 생각은 글로 증명되어야 하고 어딘가에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여기 저기서 ‘글쓰기와 블로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블로깅, 또는 SNS를 하기 때문에 글쓰기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졌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누차 말한다.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라고.
이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1인 기업가’가 되라는 허무맹랑한 강요를 하진 않는다. 대신 직장에 있을 때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차근차근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는 일에 더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 없으면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 해도 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세 가지를 버렸다는데 그 첫 째는 운전대다.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다니며 시간적 여유도 즐기고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고 무거운 가방과 조급한 마음도 버렸다. 새처럼 가볍게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 뿐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들도 알려준다. 새로운 생각은 수첩에 적기도 하고 마인드맵이나 워크 플로위, 에버노트 등에 수집, 기록한다. 구글 알리미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다고도 알려 준다(난 아직 쓰지 않고 있지 않지만). 그는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다 알았을까. 아마도 스마트 워킹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 노하우들은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나도 홍순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에버노트 전문가’ 로서였다.
예전에는 10년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10년 일하면 감각이 다하고 진이 빠져 물러나야 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의 특별한 가치와 ‘즐겁게 일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말한다. 초기엔 하고싶은 것만 하는 만용을 부리기 쉬운데 그것은 ‘예술가 마인드’다. 이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장사꾼 마인드’도 있다. 예술가에서 장사꾼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사람만이 ‘1인 기업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고 남의 사업을 다 성공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업 관련 전문가라고 해서 창업 상담할 때마다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홍순성은 좀 믿을 만하다. 일단 남들보다 먼저 바람 부는 벌판에 나와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1인기업’을 몸소 일구어봤고 지금도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하우를 축적, 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경험은 여전히 블로그, SNS, 팟캐스트 등 다양한 채널로 업데이트 되며 누구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여러번 주장했듯이 책만큼 생각이 잘 정리되고 집약적으로 전파되는 매체도 드물다.
이 책은 당장 ‘1인 기업’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고마운 선물이 되겠지만 나는 그보다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독립이 필요한 사람에겐 그대로 따라해야하는 메뉴얼일지 몰라도 아직 약간의 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 ‘인문학적’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늘 새로운 생각을 위해 백지로 비워져 있다고 했던가.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마음의 불씨는 홍순성이라는 저자가 피웠을지 몰라도 그 불을 가꾸어 가는 것은 오직 독자인 당신의 몫이다. 정답은 없고 이미 경험한 자의 진솔한 충고만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 충고는 매우 유용하고도 구체적인 듯하다.
(*사족 : 내가 읽은 책은 초판1쇄인데, 218페이지 셋째 줄에 이원태 작가를 ‘이원탁’ 이라고 썼다. 아마도 같은 문장에 나오는 김탁환 작가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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