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라고 불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항쟁’이라는 명예를 회복했는데 아직도 '그건 불순세력의 폭동이었다'고 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518기념일에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바로 얼마 전까지 논란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그만큼 상흔이 짙은 역사적 사건이었고, 그 강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참살극이었으며, 37년이 지난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나는 518계엄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박정희가 믿었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서울의 봄’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듣다가 몇 달 후 갑자기 MBC뉴스데스크에서 이득렬 앵커가 “지금 이 시각, 광화문에선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입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를 들을 때도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 해에 존 레논이 암살당했고, 그래서 그의 유작 앨범 [Starting Over>를 라디오에서 매일 들었다든지 하는 건 잘 기억나도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라 나처럼 어린 놈은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518의 참상을 사진이나 필름으로 목격하고 뒤늦게 치를 떨어야 했다.

대학 1학년 5월 축제기간에 학생회관에서 틀어준 광주 관련 기록물들은 대부분 독일 방송국에서 온 것들이라 해서 약간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 의문이 풀린 셈이다. 이 영화는 518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어떻게 화자를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한 점이 가장 큰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인 기자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광주까지 태워다주면 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얼떨결에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 택시기사 만섭. 평범한 속물이었던 그가 뜻하지 않게 독일 기자 피터와 동행하면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은 송강호라는 괴물 연기자의 대사와 눈빛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아니,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마음과 목소리였기에 관객들을 그대로 1980년 광주 현장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뒤덮었던 [군함도]의 흥행을 [택시운전사]가 꺾었다고 한다. 만약 거창한 역사의식이나 직업의식에 불타는 주인공이 열변을 토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 송강호.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그러나 송강호의 위대함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연기만 잘 하는 기계'들은 많다. 케빈 코스트너처럼 자유롭고 진보적인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가 알고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송강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셀럽이다. 비록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민주 투사요’ 하는 오버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묵묵히 신념을 지켜내면서 예술적인 성과까지 이루어 내는 것. 이건 정말 어렵고 소중한 능력이다. 그래서 난 송강호라는 배우를 이 시대의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