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된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 중에서도 '레슬링' 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 듯하다. 고된 훈련과 연습을 하느라 부상을 당하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링에 오르던 정형돈, 정준하 등의 모습 위로 흐르던 싸이의 노래 <연예인>은 실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줄게요" 라는 노랫말은 연예인들의 고통과 땀과 눈물 속에 들어있던 일말의 진심을 단 몇 초만에 시청자들의 가슴 속으로 전달해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연예인이라는 존재가 맨날 놀고먹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공공재'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이다.

사실 연예인은 예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탁환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 달문을 들어야겠다. 수표교 거지들의 왕초이기도 했고 한때는 기생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조방꾸니 역할도 했으며 소설가 지망생 모독을 도와 동대문에서 인삼 장사를 하기도 했던 달문. 그러나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역시 '광대'가 아닐까 한다. 22년 경력의 소설가 김탁환이 평생 다시 이런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썼다던 18세기에 실존했던 광대 달문의 이야기. 그게 바로 [이토록 고고한 연예]다.

가장 싸우기 힘든 사람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문은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처럼 남을 도와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던 사내. 소설의 화자이자 김탁환의 페르소나 같은 인물 모독의 말에 의하면 달문(達文)이라는 이름은 '세상 이치에 통달했다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한다. 

집도 절도 없고 일자무식인 달문이 어떻게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가진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 재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항상 가난하거니 힘든 이들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산대놀이로 생긴 재산도 다른 이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하지만 저는 지금 엄청나게 부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가지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측은지심의 소유자. 그토록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존재가 김탁환이라는 탁월한 이야기꾼을 만나 황홀한 재주와 예기치 않았던 깨달음들을 페이지 페이지마다 쏟아놓는다.

김탁환은 달문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서도 쉽게 소설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거리에서 함께 촛불을 밝혀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건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사회소설에 가깝고 한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2018년이 다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을 몇 편만 꼽으라고 하면 나는 단연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맨 앞에 놓을 것이다. 지금 책을 펼치시라. 6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내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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