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카톡으로 단편소설을 하나 보내왔다. '요즘 2030한테 젤 핫하대'라는 문자와 함께. 창비에서 상을 받은 단편소설인데 장류진이라는 신인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이었다.
첨부된 창비 URL을 눌러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요새 판교 노동자들에게 최고 인기...세 번 읽었다'라는 미다시(라는 말은 쓰면 안 되지만)가 왜 붙었나 했더니 이게 '판교 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기업 얘기라 그런 모양이었다.
"합시다, 스크럼." 이라는 첫 문장부터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했다.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했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단숨에 읽었다.
읽으면서도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 뒷맛까지 상큼했다. 사장이 직원들 이름을 다 영어로 바꿔 부르게 한 이유가 '수평적 일처리' 때문이 아니라 박대식이라는 촌스러운 본명보다 데이빗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의심하는 장면부터 삐져나오는 자잘한 유머들이 작품 전반에 고르게 배어 있다. 그리고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회사 생활이나 업무 처리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압권이다.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우동마켓'이라는 앱 회사를 배경에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어떤 여자 얘기'가 기둥이긴 하지만 그것만 놓고 얘기하면 이 소설을 폄하하는 게 된다. 짧은 분량과 날아갈 듯 가벼운 문체 속에 현대인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이 제대로 살아 있으니까. 엔씨소프트 건물이 만든 네모난 하늘 안으로 용이 지나간다는 상상도 재미 있고 카드 포인트 여자가 기르는 거북이의 이름이 람보(람보르기니의 준말)라는 설정도 재미 있었다. 마지막에 어린 개발자에게 레고를 선물하는 장면과 그의 반응 묘사는 정말 좋았다.
소설보다 먼저 수록된 인터뷰를 읽어보니 장류진은 7년 동안 회사원이었고 한겨레문화센터를 다니면서 처음 소설을 써보았다고 한다. 뭔가 미야베 미유키 아줌마의 데뷔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고 손보미 작가와 권여선 작가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 인터뷰를 읽고 나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손보미의 발랄하고 미국스러운 문체와 권여선의 의뭉스러운 유머가 이 작가의 글에서 한꺼번에 버무려져 있는 느낌도 좀 들었다. 아무튼 아내 덕분에 느닷없이 읽은 단편이지만 꽤 재미 있었다는 얘기. 이른 저녁부터 술약속이 있으니 빨리 독후감 올리고 나가야겠다는 결론.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읽으러 가기 --> http://bit.ly/2Rrje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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