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오빠, 뜬금없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몇 권만 추천해 주실 수 있으세요?' 라는 문자가 왔다. 대학 졸업 후에는 별로 연락이 없다가 페북 친구가 된 써클 후배인데 미술 전공자 아닌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아마 내 페이스북 담벼락을 훑어보다가 생각난 김에 혹시나 하고 메시지를 보내온 것 같았다.
내가 대뜸 "어, 그럼 이런이런 책을 읽어봐" 라고 얘기할 만큼 지적 역량이 되지도 않고 순발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 난감하긴 했지만 재미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침 나 혼자 집에 있는 저녁이어서 잠시 책꽂이를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예전에 읽거나 가지고 있던 책은 말고 지금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중에 몇 권만 추천해 보기로 했다. 나 혼자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몇 권 거내 거실 탁자에 놓고 책을 설명하는 메모를 짧게짧게 썼다.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최은영 신작 소설집인데 작품 전체가 다 좋아. 전작 <쇼코의 미소>도 좋고.
여름, 스피드 - 김봉곤
작가가 실제로 게이인데 실려 있는 모든 단편이 게이들의 사랑과 섹스 이야기. 자기 얘기를 용감하고 귀엽게 쓰는 작가. 읽는이에 따라 호오가 엄청 갈릴 것 같긴 하지만. 난 이 책에 실린 데뷔작이 제일 좋았어.
이토록 고고한 연예 - 김탁환
조선 후기 실제 인물인 거지이자 광대였던 달문의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얘기가 술술 흘러넘쳐. 소설가 김탁환이 자기가 만난 최고의 캐릭터라고 하더라.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교수가 쓴 에세이인데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그저 그래.
염소의 축제1,2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노벨문학상을 이걸로 받았다고 하던데 정말 끝내주는 실화소설. 도미니카 독재자였던 투르히요 대통령 암살사건. 후반에 나오는 긴 고문장면들은 압권이야. 잔인한 거 혐오하면 못 읽을 듯. 암튼 재밌어.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참 착한 시를 쓰는 시인. 시가 슬프고 깨끗해.
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내 책 원고 쓰는데 도움 받으려고 산 책. 다 알고 있는 내용 같아도 막상 읽어보면 새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와 사례들. 어쩌면 유시민의 글쓰기 책보더 낫다.
허수경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어디를 펼쳐도 기가 막히고 단정한 산문을 만날 수 있는 책. 시인의 산문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감탄하게 돼.
열두 발자국 - 정재승
요즘 인기 있는 책이라 샀는데 인간 심리와 통찰에 대한 얘기들을 강의식으로 쉽게 풀어놔서 잘 읽혀. 강의할 때 참고할 사례들도 많고.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소설 주인공처럼 작가가 지금도 편의점에서 일을 한대. 아르바이트생으로. 허먼 멜빌의 <바틀비> 같은 느낌인데 작년 말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어.
그녀는 추천 목록 중 읽은 책이 딱 한 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땡기는 책이 딱 한 권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퀴즈 #무슨책이었을까요 #맞춰도상금상품없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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