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아내가 바람이 났는데 그 상대가 내가 쫓아다니던 여자였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런 도발적이면서도 발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흥미로운 독립영화를 보았다. 김재식 감독의 [이, 기적인 남자]다. 부산의 한 대학 연극영화과 교수가 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예쁘장한 조교 여자애를 좀 어떻게 해보려고 쫓아다니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녀가 자기 아내의 새 애인이더라는 얘기다. 예전에 시트콤 [프랜즈]에서 로스의 전부인이 레즈비언이라서 헤어졌다는 히든 에피소드가 있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역전적인 성역할 설정은 도발적이고 새롭다.
영화는 바다가 보이는 부산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마치 닐 사이먼이 쓴 것처럼 경쾌한 실내극을 가져다가 영화로 만든 느낌이었고 시종일관 카메라를 장악하는 주연배우 박호산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그는 이 영화로 작년에 부산독립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GV 시간에 감독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착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원제도 남자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안개'였는데 마주치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고 또 결정적으로 시나리오 대로 첫 장면에 안개를 만들어 넣을 예산도 부족해 고심한 끝에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고 했다. 난 안개보다 '이, 기적인 남자'가 백 배 나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퀴어영화냐'라는 논란까지 있었지만 박호산이 얘기한대로 이 영화는 한 찌질한 남자의 변화를 보여주는 '성장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억 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제작했다는 하이컨셉의 영화 [이, 기적인 남자]를 추천한다. 극장에서 만나시길 바란다. 블록버스터든 인디영화든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게 제일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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